지난해 12월부터 연말연시 극장가의 화제는 ‘국제시장’이었다. 개봉 전에 신문에 게재되는 영화소개를 읽으면서 어쨌든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산 국제시장 근방에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시장풍경만이라도 영화에서 보고 싶었다.

공감되는 영화의 시공간(時空間)
책,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깊이 공감할 때는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다. 스토리와 함께 시간과 공간에 교감할 때 공감의 폭은 더욱 커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수천년 전보다는 직접 겪은 시대가, 서양보다는 동양이, 나아가 우리나라 이야기가 더욱 울림이 있다.
필자에게는 ‘친구’가 그랬다. 영화의 배경이 1980년대 초반 부산의 고등학교인데다 1960년대 중반생인 곽경택 감독이 동생의 절친한 고등학교 동기다. 거기다 곽 감독의 동생은 안면이 있는 필자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에서 피난 나와 부산에서 정착하고 나의 부친은 평안도에서 피난 나와 부산에서 정착했다. 두 분 또한 동년배로 과거 피난민촌에서 생활했던 친구였다.
‘친구’에 나온 고등학교의 교사들, 학생들, 놈상들(부산식 표현이다), 줄빳다 맞는 수업시간 등은 그야말로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동조율(Sync)이 아주 높았다. 그러니 장면 장면이 더욱 리얼했고 흥미로웠다.
이번에 ‘국제시장’은 더욱 넓은 의미에서 동조율이 높았다. 먼저 국제시장이라는 공간이다. 나는 국제시장 근방에서,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 언저리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국제시장에서 장을 봐 밥상을 차리셨고, 소풍갈 때 과자라도 하나 사려면 국제시장에 나갔다. 이북에서 피난 나온 멀고 가까운 친인척과 지인 중에서 국제시장에 삶터를 꾸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가끔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함께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구경하면서 뛰어다니곤 했다.
‘국제시장’에서 야외촬영 장면은 거의 모두 어디서 어떤 각도로 찍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미동 언덕배기, 자갈치 어시장, 용두산 공원, 태종대 주전자 섬 근처, 국제시장 골목 등.

내 부모님 세대와 비슷한 주인공의 삶
윤제균 감독은 부모님 성함인 ‘덕수’, ‘영자’를 주인공 이름으로 사용했다. 일종의 부모님께 대한 오마주(hommage), 존경과 경의 표시인 것이다. 대략 계산해 보니 영화 주인공들보다 내 부모님들은 나이가 7~8세 더 많지만, 그 세대의 삶의 맥락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 한국전쟁, 남한으로의 탈출, 고단한 피난살이, 부산에 정착해 결혼하고 살아온 과정이 모두 그랬을 거다. 특히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 당시 아버지께서 늦은 밤에도 TV를 끄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던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맥아더 장군은 괴멸된 북한군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평안도 북진과 함경도 북진을 동시에 실행한다. 하지만 이미 중공군이 은밀히 한반도에 전개돼 있었고, 함경도 장진호 근처에서 미(美) 해병 1사단 1만2000명이 포위되면서 동부전선 미 10군단, 한국군 3개 사단을 포함해 총 10만5000명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상황에 몰린다. 하지만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미 해병 1사단이 포위를 뚫고 흥남까지 후퇴해 병력 10만명, 민간인 10만명이 바다를 통해 성공적으로 철수한다.
영화 속에 군함 갑판에서 젊은 한국인이 미군 장군을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함경도 성진 출신으로 해방 후 월남해 미국 의과대학에 유학했던 통역관 현봉학 박사와 미 10군단장 알몬드 장군간의 실제상황이다.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도 “만약 미군이 구출하지 않으면 한국군 독자적으로 육로로 데리고 가겠다”고 압박 겸 설득을 한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탈출하는 피난민’들을 구출해야겠다고 알몬드 군단장은 결심하고, 군수물자 수십만 톤을 포기하고 배도 더 투입해 피난민 10만명을 태운다. 영화에서 덕수가 탔던 메레디스 빅토리 화물선은 1만4000명이 탄다. 혹한의 겨울바다 위를 3일간 음식도 물도 화장실도 없이 항해하면서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서 거제도에 도착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오히려 도중에 5명의 아기가 태어난다. 미군들은 아기들에게 김치 1, 김치 2 ~ 김치 5로 임시로 이름을 지어준다. 김치 5가 지금 거제도에서 예순 노인이 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당시 흥남철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혹한의 갑판과 화물칸에서 3일간 물 한 모금 못 먹고, 움직일 자리도 전혀 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대소변도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모두가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메레디스 빅토리는 역사상 한 번에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라루 선장은 후일 베네딕트회 수사(修士)가 됐다.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이북에서 온 사람들은 어차피 타향이니 부산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국제시장은 ‘사람 말고는 모두 외제’라서 붙은 이름이다. 군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들이 주로 거래되면서 물들인 군복, 군화, 군용식량을 사고팔던 노천 장터로 시작돼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원조물품에 일본 밀수품이 유입돼 거래되면서 자연히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2. ‘국제시장’이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 덕수가 운영한 가게 ‘꽃분이네’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3. 사진작가 최민식
(사진: 조선일보 DB)
사람 말고는 모두 외제라서 국제시장
1970년대 초반까지 부산 집값이 서울보다 비쌌다고 하던데, 당시까지도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 엄청나게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앙시장은 인근에 있는 광복동, 남포동, 자갈치와 연결돼 1980년대 초반까지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부산의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가서 많이 퇴색됐지만, 그래도 아직 예전의 명소들이 남아서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미군 군용 통조림식량을 팔던 깡통시장은 지금도 깡통시장이라고 불리며 외국산 과자들이 풍부하다. 깡통골목 옆 부평동 시장 돼지국밥 골목도 아직 전통의 맛집이 많이 남아 성업 중이다. 타지인들은 돼지국밥 하면 일단 거부감을 느끼는데, 실제로 먹어보면 아주 담백하다. 부산오뎅 집들도 즐비한 거리다.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가 아직 살아 있는 부산의 명소다.
영화 속 전쟁 당시 국제시장의 풍경이 잠깐 지나간다. 그 중에서 마치 유명배우의 카메오 출연처럼 최민식 사진작가의 대표작 2장의 구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바닥에 그릇을 놓고 국수를 먹는 소녀의 모습과 한쪽 다리와 팔이 없는 사람이 신문을 파는 모습이다. 사진작가에 대한 경의 표시로 여겨지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1928~2013)은 부산에 살면서 주로 자갈치와 국제시장 사람들을 찍었다. 그 역시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실향민이었고, 1964년 <인간> 1권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총 14권의 <인간>을 발표했다.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팔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 거리의 행상 등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작품으로 남겨,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진실하게 담아내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건강한 삶의 생명력을 바탕에 깔았던 그의 사진은 한 시대가 압축된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다. 최 작가는 2013년 2월12일 향년 85세로 타계했다.
‘앉아서 국수 먹는 소녀’는 한국전쟁 직후 사진이지만, ‘몸이 불편한 신문팔이’는 1982년 부산 남포동 대영극장 근처에서 찍었다고 한다. 사진의 표정과 눈빛은 처연하면서도 맑다. 필자는 그를 당시 길거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다.
흥남철수와 국제시장의 연관성을 잘 나타내는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다. 흥남철수에서 가족과 헤어져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로 생계를 꾸리는 오빠가 영도다리 난간에 기대어 초승달을 보면서 헤어진 금순이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한 노래다. 리듬은 의외로 경쾌한 트로트라서 전체 분위기는 활발하기에 ‘나도 열심히 살 테니, 금순아 너도 열심히 살아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 함경도에서 가족과 헤어져 흥남에서 피난 나온 동네 할아버지께서 이 노래만 들으면 목이 멘다고 하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후일 흥남철수의 비극을 자세히 알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됐다. 흥남철수에서 피난 온 이들에게 이 노래가사는 자신의 이야기 그 자체였을 거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나서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니 그 가사가 더욱 와 닿았다.
영화 말미에 가족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니 자식들이 할아버지가 촌스러운 노래 가르쳤다고 면박을 준다. 멋쩍어서 자리를 비켜 옆방으로 간 주인공이 홀로 아버지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아버지, 저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참 힘들었습니다”며 흐느낀다. 그 옆방에서 자식들과 손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영화의 정점(頂點)이다.
손녀가 뜻 모르고 부르는 ‘굳세어라 금순아’를 주인공 인생을 압축하는 클라이맥스의 장면에 대비시킨 의미는 깊다. 오늘의 풍요를 있게 한 앞 세대의 고난과 헌신을 받아들이는 현 세대의 기본자세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국의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이란 존재는 가난을 이기는 이가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이는 1명도 안 된다”고 했다.

(사진 :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서독의 광부, 서독의 간호사
서독에 광부로 간 덕수와 간호사로 간 영자가 만나는 장면이 있다. 당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80달러에, 변변한 일자리는 아예 없던 시절 서독 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어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광부 1진이 출발한 1963년 12월21일은 필자가 태어난 직후다. 아저씨, 아주머니뻘 되는 주변분들 중에서 서독 광부와 간호사로 갔던 분들이 있다. 영화 속 대사 그대로다. 못 사는 나라의 못 사는 집안 장남과 장녀들이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험한 일을 해서 고국에 돈을 보내 동생들 공부시키고,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는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을 잘 나타내는 리얼 스토리다.
당시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열심히 일하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독일 언론이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 계기가 돼 1964년 독일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12월10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했다. 대통령 연설 도중 서러움이 북받친 광부와 간호사 수백 명이 울음바다가 돼 연설을 채 마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 대통령 연설문 내용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구절 ‘힘든 세월에 태어나서 힘든 세상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이라 우리가 겪는기 참 다행이라꼬...’에 압축돼 있다.
중간 중간 웃음 만드는 활력소, 명품 조연 오달수
‘국제시장’은 명품 조연 오달수가 돋보이는 영화다. 아버지 세대의 고생담이란 게 자칫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의 재미없는 딱딱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오달수가 분위기를 경쾌하게 바꿔주고, 중간 중간 웃음 짓게 만드는 활력소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오달수가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점도 뿌듯했다. 필자는 부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영화배우 김윤석도 동문이다. 두 사람과 일면식도 없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주변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많았다. 김윤석이 오달수보다 1년 선배인데, 부산에 있는 같은 대학에 진학해서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대학 동문에 1년 차이로 같은 길을 걷는 절친이라고 한다.
도회적인 분위기의 김윤석보다는 자갈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달수가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어차피 뺑뺑이로 고등학교 간 세대라서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공교롭게 혜광고는 함경도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분이 설립한 학교다.
필자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이북에서 피난 온 세대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한 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집안의 여자 어른이 돌아가시면 집안 음식이 사라지고, 남자 어른이 돌아가시면 집안 역사가 사라진다.”
아버지께서는 살아오신 이야기를 소박한 자서전에 담아 후손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당신 삶의 막바지에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서는 손자, 손녀들이 후일 성인이 돼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 거다. 연전에 청년이 된 작은 아들이 멀리 공부하러 가면서, 책은 할아버지의 자서전 1권만 챙겨 떠나는 모습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흐뭇해하실 거라고 느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남겨준 자서전이 세월을 뛰어넘어 하늘의 할아버지와 땅의 손자가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됐던 것처럼 영화 ‘국제시장’은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현재의 자식과 미래의 손자 세대가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