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은 무게감 속에 가득 담긴 강렬한 비트. 선 굵은 멜로디를 관통하는 서정적 노랫말. 대대로 평판이 높은 보컬의 탁월한 표현.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는 록밴드 ‘부활’의 음악이다.

록밴드 ‘부활’의 활동은 1985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로 꼭 30년째다. 30년을 변함없이 최고의 록밴드로 인정받으며 활동을 해올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변화무상한 요즘 한국 사회에선 진기록에 가까운 기록이다. 현존하는 한국 대표 록밴드라고 할 만하다.

지난 1월9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이자카야에서 부활의 리더 김태원(50·부활엔터테인먼트 대표)씨와 마주했다. 검은 비니, 짙은 선글라스, 긴 머리, 검은 가죽 재킷에 라이더 부츠….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 처음 본 그의 겉모습은 전형적인 로커였다. 그 특유의 목소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친숙해져 있긴 했지만, 인터뷰 도중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솔리드 로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인상을 줬다. TV 예능을 통해 얻은 ‘국민 할매’라는 그의 애칭이 긴 머리와 목소리에서만 나왔던 건 아닌 것 같았다.


“음악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미쳤기 때문”

“뜨는 노래가 있고 안 뜨는 노래가 있죠. 근데 전 지금 뜨지 않는 노래라도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뜨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모든 곡을 그만큼의 열정과 헌신을 다해 세월을 두고 다듬어 왔습니다.”

자칫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아주 당연한 사실처럼 들렸다. 맺히고 꺾인 데가 없는 그의 진솔한 인간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그의 곡들은 대중적인 인기와 상관없이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부활의 앨범은 김태원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셀프’ 작사·작곡은 그의 밴드 운영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밴드의 색깔은 밴드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밴드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보컬의 음색 못지않게 밴드의 구성원이 직접 곡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나기’, ‘사랑할수록’, ‘천국에서’, ‘네버엔딩 스토리’, ‘비와 당신의 이야기’, ‘희야’, ‘회상 1,2,3’, ‘백야’…. 간단하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명곡들이 13회에 걸쳐 발매된 부활의 정규 앨범 및 기타 총 65회 발매된 앨범들을 통해 대중에게 전해졌다. 록 음악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들어 보면 귀에 익었다고 할 만한 곡들도 많다.

“어렸을 때 처음 큰형의 기타를 발견한 이후로, 전 음악에 빠져 살아왔습니다. 음악에 미쳤기 때문에 주변 여건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죠.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온 몸을 묶어도 음악을 하거든요.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부활이란 이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왔다. 록 음악으로서는 풍토가 척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 김태원씨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교체되기도 하고, 김태원 스스로도 여러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3년 나온 부활 3집은 겨우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부활 3대 보컬인 김재기를 영입하고 돈 없고 힘든 가운데 어렵게 첫 녹음을 했지만 그날 밤 귀가하던 김재기는 교통사고로 영영 세상을 떠났다. 그가 초벌 녹음한 ‘사랑할수록’을 포함한 정규 3집은 공전(空前)의 히트를 치면서 부활은 말 그대로 ‘부활’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대중의 인기몰이가 시작된 것은 2009년 김태원씨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라는 그의 ‘외도’에 대해선 사람들의 평이 엇갈렸다. “독특한 입담과 진솔하고 성실한 사람됨으로 ‘4차원’, ‘국민 할매’라는 애칭과 함께 KBS2TV <남자의 자격> 등에서 보여준 예술가로서의 실력과 카리스마는 록 음악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TV 속 바보 이미지 때문에 좋아하던 부활의 음악에 몰입이 안 된다.” 당시만 해도 음악인과 예능인의 구분이 지금보다 뚜렷했기에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만큼 혹평에도 시달려야 했다.

분명한 사실은 그의 예능 활동이 부활의 대중적 인지도를 확실히 견인했다는 점이었다. TV 예능과 라디오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는 그의 인간미와 9대 보컬 정동하의 목소리로 부활은 출범 25년 만에 대중들 사이에 광범위한 호감을 얻게 됐다. 일부 평단은 지난 5~6년 간 부활의 인기는 인간 김태원과 보컬 정동하의 인기로 요약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2009년 여름 25주년 기념 정규 앨범이 나온 이래 부활은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말까지 3년 남짓한 기간 중 부활의 정규 및 비정규 앨범만 12권 나왔다. 다양한 퍼포먼스 속에 노래하는 정동하의 모습도 자주 공중파를 탔고, 콘서트는 성황이었다.


- 부활의 멤버. 서재혁, 채제민,  김동명, 김태원.(왼쪽부터). 사진 : 부활엔터테인먼트
- 부활의 멤버. 서재혁, 채제민,  김동명, 김태원.(왼쪽부터). 사진 : 부활엔터테인먼트

지난해 일시정지, 올해 다시 ‘부활’

김태원씨는 좀 더 폭넓은 세팅 속에서도 종종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뮤지션으로서, 더 넓은 의미의 엔터테이너로서 인지도도 높아졌지만 도박 중독 방지, 지적재산권 홍보, 작은 학교 돕기, 지적장애인의 재능 발굴 지원 등 뜻있는 사회적 사업에 깊숙이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는 법이다. “작년, 2014년이 저희 부활에 있어 일종의 침체기였죠. 밴드로서도 그렇고 저를 포함한 멤버들도 그렇고요. 공식적으로 봤을 때 일시정지 상태였습니다.” 9대 보컬 정동하가 지난해 1월 탈퇴를 하면서 팀에 또 한번 위기가 온 것이다. 갑작스럽게 보컬을 잃어버린 밴드는 갈 곳을 잃었다.

지난해 연이어 들려온 지인들의 갑작스런 사망소식도 그에게 시련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많은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마왕’ 신해철이 사망했고, 그의 30년 지기 친구였던 록밴드 ‘포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지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 김지훈씨, 고 신해철씨, 그리고 93년에 떠나보내야 했던 고 김재기씨까지, 공교롭게도 모두 68년생 동생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는데, 죽음에 관해서 또는 삶에 관해서 뭔가 생각의 변화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한 해 동안 칩거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1년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럴 때 집에서 제가 뭘 했겠습니까. 제가 작곡가 아닙니까. 곡을 썼죠.” 특유의 화법으로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정동하씨가 작년에 팀을 나가고 8개월 간 보컬을 구하기까지 사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다 제 음악의 자양분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써내려간 곡들이 지난해 여름 발표한 미니앨범 ‘사랑하고 있다’와 가을에 발표한 ‘투 비 원(To be one)’이다. 두 곡 모두 새로운 보컬 김동명(32)씨의 목소리를 입고 나왔다. 부활의 10대 보컬이다. 최근 한 TV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부른 뒤 울먹이며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동명은 김태원이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서 직접 발견한 보컬로 알려져 있다.

김동명의 데뷔 스토리는 이미 매스컴에 잘 알려져 있는 대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회사의 직원으로 7년간 일하면서,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 그리고 주말에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곤 하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인터넷을 뒤지던 김태원의 눈에 그 동영상이 들어왔고, 그렇게 해서 그는 부활의 10대 보컬이 됐다는 얘기다. 매스컴엔 거침없는 고음이 장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김태원씨는 “김동명은 중음대의 음색이 더 뛰어나다. 신선하고 새롭다”며 새 보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가 있었던 이날은 부활의 신년회가 있는 날이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쯤 베이시스트 서재혁씨가, 이어서 보컬 김동명씨가 나타났다. 지난해 연말 공연 이후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고 한다.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건강 상태를 묻는 이들에게서 오래된 ‘팀워크’가 묻어나왔다.




올해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낼 것

“2015년은 부활이 다시 한 번 ‘부활’할 것입니다. 새로운 보컬도 들어왔고 올해 안으로 ‘3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할 것입니다. 지난해까진 위기라면 위기였죠. 하지만 위기라고 뭐 어쩌겠습니까. 그냥 겪어내는 거죠. 위기란 게 일단 겪고 나면 위기를 겪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죠. 저는 음악을 하니까 그게 좀 되겠지요.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거니까요. 인류가 음악을 발견했다는 건 최고로 황홀한 발견이고 최상의 가치예요. 바하, 너바나…. 어떤 장르든 뛰어난 음악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잖습니까.”

그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그 스스로도 ‘음악으로부터 구원받은’ 존재로, 음악적 재능이 발굴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폴 제페토’ 생산·판매 라인을 구축한 것도 이 같은 신념 때문이다. ‘폴 제페토’에선 수익의 70%를 악기로 사회에 기부한다. 주로 오지(奧地) 지역의 아이들에게 보낸다.

그는 “집에 악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게 제 평소 철학”이라며 “집에 영어 교재 한 권을 놓는 것보다 기타 하나를 놓는 게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가 기타를 기부함으로 인해 1000명의 아이 중 한 명이라도 정경화 같은 훌륭한 문화인이 탄생할 수 있다면, 음악인으로서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더 있을까요.”

그는 모두가 삶의 밑바닥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음악에 몰두해왔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죠. 우리 힘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순간순간 성실히 살아가고 열심히 하다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는 거, 그게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리고 부활을 30년 지켜오면서 배운 겁니다.”


김경민이 만난 사람들②
1986년 생. 2010년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조선>에 입사해 2014년까지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탈북자 문제 전문기자로서 <주간조선>에 탈북자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고, 다방면의 문화계 인사 인터뷰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