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풍운아’, ‘비운의 IT황태자’. 전제완 에어라이브코리아 대표는 소위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IT(정보기술)기업인이다. 시장 변화를 빨리 내다보고 감행하는 실행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결과는 늘 미완(未完)으로 끝났다. 전 대표 이름 앞에 ‘풍운아’ 내지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그랬던 그가 신개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들고 돌아왔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에다 인터넷 화상전화 서비스 ‘스카이프’까지 모은 ‘에어라이브’는 전 대표의 야심찬 신무기다. ‘될성부른 나무’라고 여겼는지 에어라이브는 IT 본고장 미국에서 먼저 알아보고 투자 제안이 줄을 잇고 있다. ‘프리챌 영광 재현’을 꿈꾸는 전 대표에게 에어라이브는 새로운 희망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과 소통을 꿈꾼다. 말 그대로 ‘라이브’로 말이다.
- 전제완 에어라이브코리아 대표는 “비디오SNS라는 신개념 서비스로 연내 1억명 회원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제완 에어라이브코리아 대표는 “비디오SNS라는 신개념 서비스로 연내 1억명 회원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1막
강릉 소년의 부푼 꿈

풍경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강원도 강릉 옥계에서 태어난 소년은 어릴 때부터 영민(英敏)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좋은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굳게 믿은 소년의 부모는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비록 한 번의 실패를 맛봐야 했지만, 재수 끝에 1983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소년은 당시 엘리트의 상당수가 꿈꾸는 삼성그룹에 들어갔다. 중요 계열사인 삼성물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룹 내 최고두뇌들이 모인 비서실로 자리를 옮겨 인사팀에서 근무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그는 인사팀에서 삼성그룹 인사정보 시스템인  ‘PDSS’와 인트라넷 솔루션 ‘SPIMS’,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이지베이스(Easybase)’ 개발을 주관했다. 이 때 경험을 살려 초보자를 위한 컴퓨터 입문서

를 펴냈다.

이후 다른 동기들보다 빠른 승진을 거듭한 소년은 삼성그룹이 처음 만든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이대로라면 샐러리맨의 꿈인 별(임원 승진)을 다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졌다. 그러고는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강릉에서 서울로 유학 올 때 심정처럼 말이다.


2막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미래 삼성을 책임질 재목(材木)으로 평가받던 청년 전제완이 창업의 길을 결심한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닷컴 열풍이 불던 1999년 무렵이다. 당시 그의 손에는 5000만원이 전부였다. 학창시절부터 ‘자유와 도전’을 삶의 신조로 여기고 살아왔기에 회사 이름도 ㈜자유와 도전으로 정했다. 그러고는 몇 해 뒤 자유를 뜻하는 단어 ‘프리덤’과 도전을 의미하는 ‘챌린지’를 합쳐 ‘프리챌’로 바꿨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정부가 벤처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그야말로 벤처업계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급성장세를 기록했다. 초고속인터넷망이 가정마다 보급되면서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된 것도 그 때다. 동시에 다음, 네이버, 한미르, 엠파스, 네띠앙 등 토종 포털사이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전 대표가 개발한 프리챌은 여타 포털 사이트와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전 대표가 꿈꾼 프리챌은 ‘대중이,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잡다한 정보가 잔뜩 담긴 포털보다는 다수가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웹을 기반으로 했지만 오늘날 소셜커뮤니티와 가장 유사한 형태였다.

그만큼 프리챌의 구성 방식은 특별했다. 그러다보니 사용자들의 참여도 대단했다. 설립 2년 만인 2001년 회원수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네이버, 다음을 뛰어넘을 기세를 보였다. 전 대표의 말이다.

“당시 KT, SK텔레콤 등 통신사들과 M&A(인수·합병)를 준비 중이었어요. KT는 한미르, SK텔레콤은 네이트닷컴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와 합칠 경우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꽤 구체적인 수준까지 진행됐는데, 결과적으로 9·11이 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어요.”

2001년 9월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테러는 닷컴 기업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 일로 전 대표가 진행해오던 모든 매각 협상도 중단됐다. 벤처거품이 빠르게 꺼지면서 자금난 우려도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전 대표는 2002년 하반기 프리챌의 운명을 가르는 ‘유료화 카드’를 던졌다. 그는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소수에게만 그것도 소액을 내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터넷 서비스를 돈 내고 한다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반응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식자본은 창조적 자본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유료화를 심도 있게 논의해 볼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2002년 12월 주식대금 가장납입 혐의로 전격 체포된다.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프리챌은 전 대표에게 250억 원 부채만을 남기고 공중분해됐다.


- 에어라이브 홈페이지 초기화면
- 에어라이브 홈페이지 초기화면

3막
쉽지 않은 재기의 길

2007년 출소 후 그의 눈앞에 놓인 IT환경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천지가 개벽하고 나서 몇 번은 바뀌었을 정도로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웹에서 모바일로 중심축이 바뀐 데다 SNS를 활용한 IT기업들이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거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IT 종사자에게 5년은 일반인에게는 50년과 같은 긴 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이도 어느새 40대 후반을 향해 치달으면서 재기는 불가능해보였다.

“뒤처진 시간을 만회하는 방법이라는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수밖에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IT관련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딱히 뒤처졌던 시간을 따라잡는 길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2008년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면책 선고를 받은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재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법인명은 유아짱으로 정했다. ‘너는 최고(You are Best)’에서 힌트를 얻은 유아짱에서 전 대표는 2011년 짱라이브라는 신개념 SNS를 선보였다. 짱라이브는 사진이나 텍스트를 주고받는 기존 SNS와는 달리 개인방송 서비스를 집어넣어 서비스 오픈 1년 만에 200만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동영상을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러는 사이 수익모델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자금 유입이 중단된 데 이어 2012년 3월에는 KT가 회선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짱라이브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던 전 대표의 꿈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2년 9월12일 유아짱은 오후 6시부터 짱라이브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당시 그가 손수 쓴 공지(公知)다.

 “2008년 10월1일 창업 이후, 지난 4년간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영상 SNS를 개발해 왔습니다. …(중략)… 지난 3개월간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만,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지 못하였고 KT와 LG측 회선사용료 미납으로 인해 더 이상 서비스 유지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 전 대표는 “여러 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에어라이브의 최대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 전 대표는 “여러 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에어라이브의 최대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4막
다기능 SNS로 화려한 비상 꿈꿔

“정말 열통이 터져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사업모델이나 방향이 틀린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니 정말 미치겠더군요.”

전 대표에게 짱라이브의 쓰라림은 상당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을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재기는 더욱 힘들어 보였다.

그는 다시 한 번 기회를 모색했다. 자금이 바닥나고 직원들이 뿔뿔이 떠나면서 회사가 공중 분해됐지만 서비스는 살아 있었다. 문제는 역시 자금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수소문한 끝에 그는 지난해 5월 코스닥상장사인 K사에서 3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기존 짱라이브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해외투자를 위해 그보다 앞선 지난해 1월 에어(Aire)라는 법인을 미국에 세웠다. 대신 한국법인 유아짱은 에어라이브코리아로 바꿨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에어라이브코리아는 동영상 채팅과 화상대화가 동시에 가능한 모바일 SNS ‘에어라이브(Airelive)’ 안드로이드 버전을 공식 출시했다. 애플의 i-OS버전은 지난해 12월 선보였다.

 ‘에어라이브’는 글이나 사진, 영상 콘텐츠를 모바일과 웹을 통해 확산시킬 수 있는 SNS 기반 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다. 현재 한국어, 영어, 일본어 버전으로 출시됐다. 특히 여러 명과 동시에 화상대화를 할 수 있는 ‘페이스채팅’ 기능이 눈에 띈다. 실시간 화상 채팅은 최대 4명까지 동시에 가능하다. 유튜브처럼 영상을 편집해 올릴 수도 있다. 유아짱과 마찬가지로 실시간 동영상 중계 서비스도 제공한다.

“최근 미국 SNS 기업들의 흐름을 보면 통합서비스가 대세예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능들이 복합된 컨버전스(Convergence) 구조죠. 그런데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따져볼 것이 가령 유튜브는 왜 VOD 영상만 보여줄까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 라이브 영상도, SNS도 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야 고객이 편리하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유튜브는 현실적으로 VOD와 라이브 영상을 결합할 수 없습니다. 그걸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또 결합시키다보면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왜 페이스북도 채팅하려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바로 컨버전스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제 생각이 정답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SNS는 주택으로 치면 주상복합 시대가 대세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현대 IT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합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습관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있다. 1위와 나머지 업체들 간 시장점유율이 점차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아무리 복합적인 기능을 갖췄다고 해도 기존 서비스에 익숙한 사용자의 습관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해 전 대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우리가 유저(사용자)의 습관을 바꾸려면 뭔가 차별화된 서비스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우리의 라이브 영상이라고 봅니다. SNS나 VOD는 이미 다른 업체들도 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비디오SNS’라는 개념이에요. 한마디로 말해 영상으로 소통해보자는 거죠. 기존 카톡이 문자로 소통을 했다면, 우리는 영상으로 소통해보자는 거죠. 기존 3G시대에는 불가능했지만 LTE(롱텀에볼루션) 환경으로 바뀌면서 가능해졌거든요. 앞으로 시대는 영상입니다. 개인간 소통의 도구는 문자에서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그런 흐름을 누가 먼저 선점했느냐에 따라 유저의 습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영상을 활용한 SNS 시장은 우리 한국이 주도할 수 있습니다.” 

에어라이브는 개통한 지 두 달 만에 국내 사용자 수가 230만 명을 넘어섰다. 에어라이브코리아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 회원 1억 명 돌파를 1차 목표로 정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한결 달라졌다. 무엇보다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당하다. 전 대표는 “현재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받고 있는 상태며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 전제완 대표는…

1963년 강원도 강릉 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9년 삼성물산 입사, 97년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 99년 (주)자유와 도전 설립, 2001년 프리챌홀딩스 사장, 현 에어라이브코리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