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東武) 이제마(1837~1899) 선생이 쓴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동의보감(東醫寶鑑)>과 함께 우리 한의학계가 세계 의학계에 자신 있게 내놓는 독창적 이론서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이라는 학문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사상의학이라는 큰 줄기는 현대에 이르러 여러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체형사상의학회도 여러 가지 중 하나다. 체형(體形)에 의거해 체질(體質·사상체질)을 나눈 뒤 치료하는 체형사상의학은 최근 여러 임상에 쓰이고 있다. 부친에 이어 2대째 체형사상의학을 연구하고 있는 허만회(許萬會) 제원한의원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허만회 제원한의원 원장은 동무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체형측정과 접목시켜 환자를 치료한다.
- 허만회 제원한의원 원장은 동무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을 체형측정과 접목시켜 환자를 치료한다.

체형사상의학의 학문적 뿌리는 사상의학에 있다. 때문에 체형사상의학을 알기 위해서는 사상의학부터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상의학은 동무 이제마 선생이 주창(主唱)한 독창적인 의학 이론이다. 동무 선생은 의료인이기 전에 철학자이자 무인이었다. 1837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39세 때 무과에 합격, 40세에 무위별선 군관에 올랐다. 그리고 64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 무인의 길을 걸었다.

동무 선생의 사상적 배경은 맹자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맹자가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사단(四端)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려고 한 것처럼, 동무 선생은 사람을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인으로 나누고, 체질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봤다.

동무 선생의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1897년에 쓴 <격치고(格致藁)>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여기서 격치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1년 뒤 펴낸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사상의학을 좀 더 체계화시켰다.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광제설(廣濟說),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으로 구성된 <동의수세보원>은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두고 있다.


체간측정법 활용해 체형사상의학 개발

사상의학이 사람의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눠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치료한 것처럼, 체형사상의학 역시 체질을 치료 기준으로 삼는다. 체형사상의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2년 8월 허연 제원한의원 원장이 전병순, 이병행, 홍순용 등 6명의 한의사와 함께 화요한의학연구회를 세우면서부터다. 연구회를 설립하는 데 허연 원장의 역할은 대단했다. 아호가 고송(古松)인 허연 원장은 서울에 사는 충남지역 출신 한의사들을 주축으로 연구회를 키워나갔으며, 1993년 아들 허만회 원장이 이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회 명칭은 화요한의학연구회→화요사상학회→고송학회→체형사상의학회로 바뀌었지만, 체형을 토대로 체질과 질병 치료를 연구해 나간 동무 선생의 전통은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 체형사상학회에는 100여 명의 한의사가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허연 원장이 체형사상의학의 시작을 열었다면 아들 허만회 원장(이하 허 원장)은 학문적 기틀을 잡는 역할을 했다.

특히 허 원장은 체형사상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체간측정법을 계량화, 체계화시켰다. 체간측정법은 허 원장이 지난 1988년 사상의학회지에 실은 석사 중간논문 ‘사상인의 형태학적 도식화’에서 처음 소개됐다. 당시 허 원장은 체간 측정을 통한 체질 구분을 ‘형태학적 도식화’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8년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 박사논문(체간측정법에 의한 두면부에 관한 연구)에서 그는 체형을 통한 체질 정확도가 90%에 이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허 원장이 개발한 체간측정법에 의한 체질진단 및 사상 체질진단기 개발은 지난 2011년 2월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

“아버님(허연 원장)은 체형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환자가 어떤 체질인지를 아셨다면 저는 이를 정확하게 측정해서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체형사상의학에서 음양(陰陽)은 명치(사람의 복장뼈 아래 한가운데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를 기준으로 나누죠. 양은 위쪽이고 음은 아래쪽이거든요. 발달된 모양이나 형태가 장대(壯大)하다면 태(太), 그렇지 않으면 소(少)라고 본 거죠.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위쪽 상체가 잘 발달돼 있다면 태양인, 아래쪽보다는 발달돼 있지만 태양인처럼 크지 않으면 소양인이라고 본 겁니다. 반대로 골반을 중심으로 명치 아랫부분이 크고 넓으면 태음인이고, 골반은 크면서 허리는 개미처럼 가늘다면 소음인인 거죠. 그럼 동무(이제마) 선생은 이를 어떻게 아셨느냐. 무관(武官)이다보니 여름철 군인들이 윗옷을 벗고 훈련받는 장면을 자주 보셨나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마다 상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아셨고, 이를 4가지로 나눠 진단하신 겁니다. 체형사상의학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죠.”

다음은 동무 선생이 <동의수세보원>에서 밝힌 내용이다.

“태양인의 체형은 장대한데 간 부위인 옆구리가 작고 좁다. 소양인의 체형은 위가 성하고 아래가 부족하고 흉부가 실하고 발이 가볍다. 소음인 체형은 왜소하고 작은 게 기본이지만 크고 우람한 사람도 많다. 태음인의 체형은 장대한데 가끔 작고 왜소한 사람도 있다.”

체형사상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통이다. 머리와 팔다리, 하체의 길이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상체는 가슴이 시작되는 지점(1선), 유두(젖꼭지·2선), 명치끝(3선), 배꼽(4선), 골반 끝(5선) 등 다섯 선이 기준이 된다. 가슴 시작점부터 유두까지가 상초(上焦), 유두부터 명치끝까지가 중상초, 명치끝부터 배꼽이 중하초, 배꼽부터 골반 끝이 하초(下焦)다.

허 원장에 따르면 기세가 크면 태양인이다. 가슴 부위, 그 중에서도 유두선 부위가 넓으면 소양인이다. 골반이 크되 허리가 잘록하고 앉았을 때 엉덩이가 펑퍼짐하면 소음인으로 분류된다. 또 소음인은 늑골 각이 직각보다 작은 예각(銳角)이다. 마지막으로 태음인은 골반 주변 허리 살이 두툼하다.


- 허만회 원장은 환자의 체질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성을 체형사상의학의 장점으로 꼽았다.
- 허만회 원장은 환자의 체질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성을 체형사상의학의 장점으로 꼽았다.

모든 치료는 정확한 체형 측정부터

허 원장은 환자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체형(體形)부터 측정한다. 침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체 크기를 측정하는 것과 동시에 네 부위별 길이를 재서 체질을 구분한다. 사상체질분류검사지에 의거, 설문조사도 벌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혈액검사와 같은 생화학적인 방법도 사용하며, 체질별 특이유전자를 파악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방법도 동원한다. 얼굴모습이나 말투 등은 사상체질음성분석기 등을 사용해 구분한다. 

그렇다면 사상의학에서 유전은 어떻게 볼까. 허 원장은 양쪽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체형이 유전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체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100% 한 가지 체질로 체형이 이뤄졌을 수도 있지만, 간혹 두 가지 체질이 중복돼 있을 수도 있다. 주로 소음인과 소양인 체질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는 열(熱)과 한(寒)을 앞에 붙여 체질을 나눈다. 가령 소음인과 태음인의 성향이 함께 존재하는 체질은 한(寒)태음인이라고 구분한다. 반대로 열(熱)태음인은 소양인(열)과 태음인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사람을 가리킨다. 허 원장은 “이럴 때는 몸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체형을 기준으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면서 “복합적 기질까지 포함할 경우 체질은 최대 8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원장은 “체형사상의학적 치료법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원한의원은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2대째 운영되고 있어, 대를 이어 찾아오는 환자들이 꽤 많다. 특히 체형사상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법은 소화기 계통 질환은 물론 비염, 알레르기, 신경정신과 질환 치료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 성장이 다 끝나지 않은 유아 및 청소년들은 어떻게 체형을 구분할까. 이에 대해 허 원장은 “2차 성징(性徵)이 나타나지 않은 소아 체형은 성인에 비해서는 뚜렷하지 않아 체질 판명이 쉽지는 않지만 보통 6~7세가 되면 어느 정도 체질 구별이 가능해진다”면서 “생활 태도 등의 이유로 복부비만이 생길 수 있지만 태양인의 복부비만은 맨 아랫부분이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달한 태음인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무 선생은 평소 “사람의 형용(形容)을 자세히 관찰해 재삼 연구하되 만약 의혹되는 점이 있으면 병증을 참작하여 똑똑히 보아 의심이 없는 연후에 약을 쓸 것이고 결코 경솔하게 한 첩의 약이라도 투약하지 말 것이다. 중병 위증에는 잘못 투약하면 한 첩의 약이라도 반드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체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환자 치료에 있어 중요한 점이다. 정확한 체질 분석은 허 원장 역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다.


- 허만회 원장(오른쪽)이 체형사상의학을 주제로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허만회 원장(오른쪽)이 체형사상의학을 주제로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국인도 四象에 근거해 체질 측정

지난 2002년부터 임상 경험집을 펴내는 등, 실제적인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허 원장은 해외에 체형사상의학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 나서왔다. 허 원장이 밝힌 사상의학의 가장 큰 장점은 체질 분석이 수치화돼 있는 등 객관성이 높다는 데 있다. 때문에 체질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시간이 짧다. 어느 한의원에 가도 진단 후 내리는 체질결과는 객관적이다. 이는 다시 말해 환자의 심리 상태나 병증에 따라 오진(誤診)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준다. 아울러 환자에게 질환과 치료법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주기 쉬우며 복잡한 장비 없이 간단한 도구로만 진단과 진찰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앞으로 체형사상의학을 세계화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진단해도 진단과 해법이 동일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임상 경험집 1~6권에는 미국에서 보내 준 수많은 임상 사례가 들어가 있는데 외국인의 경우도 우리와 똑같이 나타났죠. 미국 사람들 중에도 체질적으로 육류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우유를 잘 못 마시는 사람이 있거든요. 우리랑 식단이 많이 달라도 사람 체질은 어디나 비슷하더군요.”

체질을 네 가지로 나눈다는 이유로 동무 선생의 사상의학은 황제내경(黃帝內經)식 접근방법과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황제내경이 기초인 동의보감식 연구와도 분명 다르다. 황제내경이 사람의 장기(臟器)를 폐비간신심(肺脾肝腎心)으로 봤다면 사상의학에서 장기는 폐비간신(肺脾肝腎) 등 4가지뿐이며, 심장은 몸이 아닌 정신으로 봤다. 실제로 동무 선생은 <동의수세보원>에서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은 태양인,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사람은 태음인이며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사람은 소양인,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사람은 소음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일까. 허 원장은 “동의보감이 병증에 따라 약을 투여하는 방식이라면 사상의학은 타고난 체질을 기반으로 병을 치료하는 근원적인 치료”라고 차이점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는 “체형사상의학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 허만회 원장은…
서울고, 경희대 한의과대 졸업, 同 대학원 한의학 박사, 現 제원한의원 원장, 체형사상의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