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8일 인천시 삼산동 삼산월드체육관에서 ‘2014 인천 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날 예정된 2라운드 E조 경기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대한민국과의 한판 승부였다. ‘한·일전’이라서 그런지 경기장 안팎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양 팀 선수는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컸지만, 객관적으로 양 팀 전력을 비교하면 결과는 뻔해 보였다.
우선 일본과 우리나라는 휠체어농구 시장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일본의 경우 실업팀이 100여개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고작 서울시청 한 곳이다. 전용경기장 수나 규모까지 더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팽팽한 일진일퇴(一進一退)를 이어갔다.
마지막 4쿼터, 남은 시간은 1분2초. 58대 58로 양 팀이 동점을 이룬 상태에서 종료 직전 조승현이 회심의 슛을 날렸다. 공이 림(Rim)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1군 공식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꺾는 쾌거를 이뤄냈다.
실업팀 1개…변변한 연습시설도 없어
경기를 지켜보던 변효철 한국휠체어농구연맹 총재(당시 2014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 집행위원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내 휠체어농구계의 척박한 현실을 잘 알기에 그는 우리 팀의 승리를 누구보다 기뻐했다.
당시의 감동이 가시지 않아서였을까. 대회 폐막 후 6개월 뒤 만난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경기 자체가 박진감이 넘치지만 휠체어농구는 지켜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감동스토리예요. 우리보다 체력이 월등히 큰 중동,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다보면 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가 다반사죠. 그래도 누구하나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지 않아요. 스스로 일어나는 게 그들만의 룰(Rule)이죠. 누구는 그러더군요. 우리 대표팀은 체격은 열세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근성만큼은 세계 최고라고요.”
휠체어농구는 ‘장애인스포츠의 꽃’으로 불린다. 유럽에서는 상당히 두터운 선수층과 관중을 확보한 인기스포츠다. 일반농구 경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휠체어농구는 전체적인 규칙이 일반 농구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 점프 하지 않고 순전히 팔 힘으로만 슛을 던진다는 것과 뛰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는 것만 다를 뿐 골대 높이, 코트 크기, 경기시간 등은 일반 농구경기와 똑같다. 대신 몸싸움은 일반 농구보다 훨씬 격렬하다. 휠체어끼리 부딪쳐 넘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휠체어농구가 장애인올림픽 등 주요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도 장애인 스포츠 종목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서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실업팀 수는 고작 1개. 대표팀 선수들은 제대로 된 전용경기장도 없어 경기도 고양시 홀트학교 체육관 등을 전전하며 훈련한다. 선수 대부분은 낮동안 각자 생업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밤에서야 한데 모여 호흡을 맞춘다.
이토록 열악한 가운데서 치른 지난해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는 세계 장애인체육계로부터 성공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세계휠체어농구연맹(IWBF) 관계자는 경기 때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멋진(Perfect and Fantastic), 역대 최고의 대회”라는 찬사를 보냈다. 우리 대표팀도 세계대회 6위라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휠체어농구대회는 일반스포츠에 비해 대회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이 많아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장차도 있어야 하고, 숙박시설도 호텔급 수준으로 제공해야 하죠.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니 그럴 수밖에요.”
변 총재는 지난해 인천에서 대회가 열리는 데 산파(産婆)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가보조금으로만 대회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 관계자를 찾아가 애원하다시피 부탁하며 후원을 이끌어냈다. 오비맥주가 3억원, 포스코가 1억9000만원의 거금을 낸 것은 사실상 변 총재와 김장실 대한장애인농구협회 회장(새누리당 의원)의 공이 절대적으로 컸다.
대회를 치르고 난 뒤 변 총재는 달라진 휠체어농구의 위상을 실감한다.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에서의 선전(善戰)이 이어진 결과, 우리 대표팀은 지난해 10월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장애인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적인 스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휠체어농구계의 서장훈’으로 불리는 김동현은 지난 2012년부터 이탈리아 휠체어농구 프로팀 산토스테파노에서 활약하고 있다. 농구스타 김승현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가드 오동석 등 일부 선수는 최근 열성 팬(Fan)까지 생겨나고 있다.
“해외 프로리그에는 연봉이 100만 달러가 넘는 선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만큼 인기가 대단하다는 뜻이죠. 해외에서 휠체어농구는 장애인들만의 경기가 아니라 당당한 스포츠게임이에요. 현재 김동현 선수가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력만 내면 수년 내 추가로 해외 진출하는 선수가 분명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선수, 경기 인프라가 아시아 다른 국가로 확산되지 말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휠체어농구의 한류는 꿈이 아니죠.”
휠체어농구는 보는 것 자체가 감동의 드라마
대한장애인농구협회(회장 김장실)는 국내 휠체어농구의 저변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12월24일 리그제 운영을 주관할 한국휠체어농구연맹(KWBL)을 발족시켰다. 그리고 연맹 초대 총재에 변효철씨를 추대했다. 한국 장애인체육 종목으로는 처음으로 리그제 방식으로 운영되며 올 11월부터 3개월간 펼쳐진다. 하지만 난관은 아직도 많다. 리그제라는 명칭에 맞게 여러 농구팀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안정적인 대회 운영을 위해 운영기금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요 대기업들이 인기 스포츠에만 스폰서를 대고, 비인기 종목에는 경제적인 잣대만 들이대고 있는데요. 휠체어농구는 그 어떤 장애인스포츠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최근 일반프로농구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휠체어농구 시범경기가 열리는데 관중들이 꽤 흥미롭게 보고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 개인이 열심히 뛰는 것도 중요하죠. 제가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그럽니다. 벽도 뚫으면 문이 된다고. 알은 스스로 깨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면 요리감밖에 더 됩니까. 저는 우리의 희망을 향한 발걸음 하나가 분명 거대한 변화의 태풍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 변효철 총재는 …
경북 경주 생, 한양대 공과대 졸업, 한화 대표이사, 한국지역난방기술 전무이사, 에너지자원환경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한국국제대 대외부총장, 2014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現 한국휠체어농구연맹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