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IMF(국제통화기금)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는 대우그룹과 김 전 회장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줬다. 한국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압축 성장가도를 달리던 대우그룹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체의 길을 걸으며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샐러리맨의 신화’, ‘한국경제 성장의 주역’이라며 찬사를 보내던 여론이 돌아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장기 해외체류와 귀국, 구속, 사면을 거치면서 김 전 회장은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일반인 같았으면 수십 번 쓰러졌겠지만, 그는 재기(再起)를 모색했다. 김 전 회장은 다시 기업을 세울 거라는 세간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2012년 김 전 회장이 택한 것은 자신의 경영철학인 세계경영과 한국 제조업의 부활을 이끌 인재양성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리틀 김우중’이라고 불리는 글로벌YBM(Young Business Manager·청년사업가) 학생들은 베트남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대우식(式) 세계경영의 힘찬 시동을 걸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옛 대우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글이 그대로 적혀 있는 대우 중고버스가 시내 곳곳을 활보하는 가운데 대우자동차의 후신(後身)인 한국GM이 만든 쉐보레 캡티바(옛 윈스톰)와 스파크는 여전히 하노이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베트남을 찾는 외국 정상들의 단골 숙소로 애용되던 하노이대우호텔은 지금도 하노이 시민들의 자랑거리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김 전 회장과 대우는 국민기업이나 다름이 없다. 지난 1986년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된 이후 발전가능성만 보고 가장 먼저 찾은 기업과 기업인이 바로 대우와 김 전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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