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정부의 수능영어 절대평가제 도입 발표가 화제였다. 대입 영어 사교육시장을 축소하겠다는 취지의 정책이었는데, 이는 그만큼 대입 영어 사교육시장이 거대하다는 방증이다. 대학 입시를 마친 대학생이라고 영어 사교육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학생의 영어 사교육시장 또한 이에 못지않게 크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보고서(2012년)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영어공부에 3.94시간을, 전공공부에 2시간을 투자했고, 1년 동안 영어공부에 10만2000원을, 전공공부에 4만8000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학생들이 전공공부보다 영어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는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했던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서도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명 어학원인 P어학원의 연간 수강인원은 약 60만 명 정도인데, 그 중 대학생이 60%에 달한다. 홍보팀은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듣는 수업이 다르지만 기업들이 원하는 것이 공인인증점수이니만큼 대학생들은 주로 토익(TOEIC), 토스(토익 스피킹 & 라이팅), 오픽(OPIc) 같은 시험대비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대입 영어 사교육이 더 좋은 수능 영어점수를 위한 것이었다면 대학생 영어 사교육도 결국 취업에 유리한 높은 영어 공인인증점수를 받기 위함이다. 영어 사교육이 실질적인 영어실력 향상보다는 취업 스펙 향상을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유명 어학원 수강생 중 60%가 대학생
토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J씨(21)는 “대부분의 기업 신입사원 채용 절차는 서류전형, 인적성 그리고 면접 전형으로 이루어진다. 인적성과 면접 전형에서 전공과 관련된 지식을 묻기는 하지만, 이는 일단 서류전형에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 전형에 중요한 영어공인인증점수 취득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따는 팁을 배우러 학원 수업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H어학원에서 토익 실전반을 수강하는 대학생 K양(23)도 “학문적인 목적보다는 취업을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을 가는 현실이 영어 사교육시장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순수한 목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취업 수단으로 영어 사교육을 받는 것이 기형적이기는 하지만 당장 취업이 급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답했다. 즉 영어 사교육을 받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취업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업들이 요구하는 영어 점수를 따는 것을 목표로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학 가서도 취업 영어 위한 사교육 필요
교육목적의 변질 외에도 대학생 영어 사교육에 대한 다른 우려도 있다. 바로 비용문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또 다른 보고서(2012년)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의 65.6%가 사교육비를 부모나 가족이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이 사교육비를 부담하는 비율은 25.9%였다.
일반적인 학원 수강료가 20만~30만 원 정도인데, 이는 대학생 한 달 평균 생활비가 40만5000원인 것을 감안할 때 꽤 많은 비용이다. 즉 생활이 빠듯한 저소득가구 학생은 영어 사교육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이 취업과 직결된 만큼 사교육에 투자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취업시장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대학 커리큘럼으로는 대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영어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을까? 대학에서 영어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진다면 사교육 의존도가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연세대 재학생 R양(21)은 “대학교 영어교육은 영어로 된 전공서적을 읽거나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는 방식인데, 당장 필요한 것이 점수이다 보니 학원을 다니게 되는 것”이라며 대학에서 진행되는 영어교육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영어교육의 방향성 차이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가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하는 과목이다 보니 대학 교육으로만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학에서 영어수업 학점을 늘려봤자 한 학기에 40시간 늘리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미미하다. 수업 외의 영어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거나 교환학생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영어 라운지를 설치해 영어 쓰는 기회를 늘리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영어 시험에서 1~2점이라도 더 올리려는 대학생들의 발버둥도 심해지고 있다. 대학만 가면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 입시 시절을 버텼지만, 대학생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학원에 매달 꼬박꼬박 학원비를 갖다 바친다는 속설이 우스갯소리로만은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