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랜드마크(Land Mark)는 이론적으로 한 나라나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세계 각국 정부는 보다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랜드마크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이 지나치게 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높이 555m의 제2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지고 있고, 강남구 삼성동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이보다 16m 높은 571m의 건물을 계획하고 있다.
높이를 주제로 한 랜드마크 다툼은 경쟁력의 지속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2~3년 정도가 고작이다. 따라서 이제는 관점이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특히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파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초고층빌딩이 많지만, 단연 랜드마크는 9만9000㎡ 부지에 자리 잡은 밀레니엄파크를 포함한 문화시설물이다.
밀레니엄파크는 2000년 개장을 목표로 진행됐지만, 공사가 지연돼 지난 2004년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세계적인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개장 6개월 만에 150만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는 등 시카고 최고의 명소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은 전시물들이 단순히 볼거리를 넘어 ‘상호작용적인(Interactive)’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와 ‘크라운 파운틴’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표적인 상징물인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콩 모양의 대형 스테인리스 조형물로, 높이 10m, 무게 100톤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 볼록한 표면이 거울처럼 주변 환경을 비추고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과 주변 건축물들을 담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몸과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기도 해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전한다.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는 광장의 양쪽에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15m 높이의 쌍둥이 기둥이다. 기둥에 설치된 대형 LED스크린에서는 시카고 시민 1000여명의 얼굴을 담은 영상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여름에는 화면 속 사람들의 입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서 어린이들로 북적이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서울시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랜드마크는 아직까지 남산(39%), 한강(29%) 등 자연경관을 꼽는 의견이 많다. 건축물로는 남산 N서울타워와 63빌딩 정도를 랜드마크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3월 문을 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는 의미 있는 건물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건축물로, 우주선으로 보이는 독특한 자태로 눈에 확 띈다. 건축학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실내 기둥으로 안전하면서도 마치 우주 공간과 같은 대규모 공간감을 전달하는 의미를 가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동대문의 역사적 배경 및 주변과의 조화에 대한 일각의 의문 제기, 동대문운동장을 없애고 세웠다는 점, 사용계획 검토가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개관 후인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에 쌓여있다.
그러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이나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그바타워’ 등 현재 각국을 대표하고 있는 랜드마크들도 초기 강력한 반대를 겪은 것을 보면 앞으로는 평가가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선 DDP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가 좋은 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도시재생 사업은 문화관광시설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한 곳이다. 마리나 베이는 대표적인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 외에 수변(水邊)에 가든스 바이 베이, 마리나 바라지, 싱가포르 스포츠 스타디움 등과 산책로를 연결해 조명, 음향 등을 이용한 색다른 공간을 조성했다.
싱가포르의 미래 비전인 공원 속 도시(City in a Garden)의 핵심 사업으로 진행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프로젝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원 프로젝트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은 수직정원으로, 25~50m(약 9~16층) 높이로 제작된 슈퍼트리(Super Tree)이다. 슈퍼트리는 열대 덩굴 및 착생식물, 양치식물 등을 수직적으로 배치하고, 야간에는 조명을 통해 새로운 경관과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슈퍼트리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는 바(bar)가 운영 중이다. 지상 20m 높이의 공중 산책로도 방문객들의 발길을 잡는 시설이다. 이외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는 2개의 돔 형태의 온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플라워돔(Flower Dome)은 다양한 지역의 식물 및 꽃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클라우드 돔(Cloud Dome)은 입구에 폭포를 설치하고 지구 기후 변화에 대한 다양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압축적인 공간 활용의 복합문화시설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활용된 것이다. 독특한 외관을 가진 문화예술 및 관광휴양시설이 새로운 랜드마크로서 지역의 관광이미지를 제고시켜 국제적 수준의 관광목적지로도 개발 잠재력이 높은 사례가 된 것이다.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는 높이가 낮은 건물이라도 ‘문화적 요소’를 갖추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얼마든지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과거의 랜드마크가 우뚝 자리 잡아 그 곳을 기점으로 움직이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보고 가는 랜드마크가 아닌, 관람객과 지나가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설물로 자리 잡아야만 한다. 사시사철 개방돼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동대문의 DDP는 야간에 뒤쪽은 어두워서 생동하는 동대문의 여러 시장들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24시간 개방된 공간으로서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하권찬 한국도시개발연구원장
1963년 생, 87년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2008년 건국대 부동산학 박사(1호 상업용 부동산박사), 한국산업단지공단 민자유치센터장, 코레일 사업기획처장 역임,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겸임교수, 現 한국도시개발연구원장.
저서-<상업용부동산개발론>다산출판사·2008년, <문화가 부동산을 살린다>교육과학사·2012년, <부동산개발론>나경·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