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머다. 한국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나라 전체가 우울증에 빠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감정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2014년 9월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 8명 중 1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실제 치료를 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채 안 된다. 우리는 왜 감정문제를 겪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왜 나는 감정 때문에 힘든 걸까>의 저자 김연희 마인드스캔 원장을 만나 건강한 마음을 만드는 방법을 들었다.
김연희 하트스캔 헬스케어 부설 마인드스캔 클리닉 원장은 ‘별걸 다 묻는 의사’다. 환자에게 증상과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이는 주량, 수면습관, 직업, 군필 여부 등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까지 자세하게 물어본다. 환자 입에서 “별걸 다 물어 보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렇다보니 환자를 상담하는 시간이 초진(初診)의 경우 금세 한 시간이 지나간다. 일반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초진 상담 시간은 30분 내외다.
“자기감정이 어떤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질문을 통해 되도록 많은 정보를 파악하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던 본심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감정을 같이 따라가면 환자는 그제야 이해 받는다고 느끼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흰 의사가운을 입은 김연희 원장은 차분하고 따뜻한 인상이었다.

마음의 병 앓던 어머니 보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꿈꿔
김 원장이 환자들을 세심하게 대하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김 원장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집살이를 겪다 결국 우울증으로 입원했던 엄마의 모습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9살 때였다. 정신치료를 받는 데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보고 느꼈다. 이어서 그는 “엄마는 정신건강의학과 첫 상담 때 생전 처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눈물을 쏟았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그 의사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1987년, 김 원장의 어머니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14살이었던 김 원장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엄마가 앓던 마음의 병이 암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자 소녀 김연희의 장래희망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됐다. 1993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김 원장은 밤 12시 이전에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에 푹 빠져 살았다. 1999년 이화여대 의대를 성적우수자로 졸업해 대한의학회장 표창장까지 받은 그는 드디어 2005년 전문의가 됐다.
최근 김 원장은 <왜 나는 감정 때문에 힘든 걸까>(소울메이트)라는 책을 썼다. 마음을 마주보는 방법을 몰라 끙끙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싶은 게 집필 동기다.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그동안 마음건강은 상대적으로 간과돼 왔다”고 말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경박하게 여기고, 억누르고 절제해야 미덕이라고 여기는 우리 문화가 주된 원인이다. 김 원장은 “화병이 우리나라 고유의 질병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참고 견디는 걸 권장하는 유교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참는다고 만사(萬事)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정을 억누르고 참기만 하면 나중에는 무감각해져서, 자기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도 알 수 없게 된다”며 “신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학습이나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고 밝혔다. 미국 유타대 공동연구진은 지난 2014년 대학생 62명을 대상으로 실험과 설문조사(“Naturally-occurring expressive suppression in daily life depletes executive functioning” by Emilie Franchow & Yana Suchy. Emotion, in press)를 한 결과, 감정표현을 억제하면 생산성이 현저하게 저하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마음 아파하면서도 마음을 돌보지 않는 현대인
정신치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마음의 병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준다. 때문에 지난 2011년에는 신경정신과가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됐다. 정신분열증도 조현병(調絃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경정신과와 정신분열증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럼에도 정신치료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이렇다보니,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취업이나 결혼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정신치료를 꺼리게 된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런 오해가 대부분 ‘상상 속의 불이익’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정신치료를 받아 마음이 건강해지면 취업이 더 잘됩니다. 모 대학에서 학생 한 명을 상담한 적이 있어요. 심리적 혼란 때문에 학업에도 집중을 못하고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있던 학생이었죠. 학점도 낮을 수밖에 없었고요. 하지만 상담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고 진로를 찾을 수 있었어요. 정신과진료기록을 기업에서 열어볼 수 있다는 소문도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진료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남아 있다고 해도 타인이 함부로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죠.”
정신치료 약물에 대한 오해도 있다. ‘정신과에서 주는 약을 먹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바보가 된다더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잘못된 약을 먹어서 머리가 멍해진 게 아니라 머리가 멍해지기 위한 약을 처방 받은 것”이라며 “이런 치료법을 ‘화학적 강박’(Chemical restrain)이라고 하는데, 자기제어가 되지 않는 일부 심각한 질환의 경우에만 폭주(暴走)를 막기 위해 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약물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약도 있다.
책에서 김 원장은 감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공감이 될 만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 중 Y양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Y양은 낙천적인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쾌활한 겉모습과는 달리, 걱정과 불안을 마음에 안고 있었다. 아나운서 시험에서 몇 년째 낙방했기 때문이다. 그는 걱정이 있어도 타인에게 내색하지 않고 밝은 척 했기 때문에 낙천적이라는 평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Y양은 친구를 만나도 쓸쓸하고 공허하기만 했다. 사연이 있는 건 비단 Y양뿐만이 아닐 것이다. 청년들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부들은 주체성이 약해지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가장들은 부양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린다.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외로워한다. 김 원장은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서로 돕고 살던 인적 네트워크가 와해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립감을 느낀다”며 “여기에 상대적 박탈감까지 더해져, 예전보다 먹고살기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먼저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그 다음 건강하게 표현할 것을 조언한다.
“내 감정을 잘 알고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해보는 거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사소한 느낌까지 관찰해보면 숨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엔 감정의 배수구가 필요해요. 내보내지 않으면 감정이 커다랗게 부풀어 나를 압도해 버립니다. 감정을 표현하려면, 상대를 비난하거나 공격적으로 말하는 대신, ‘나’를 주어로 시작해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너는 너무 이기적이야’보다는 ‘나는 네가 그렇게 행동할 때 슬퍼’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에 더해 등산, 악기연주 등 건강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김 원장은 최근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본, 한 장면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극중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오리진(황정음 분)은 “정신건강의 시작과 끝은 행복한 가정에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김 원장은 “정신질환이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가정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령,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애가 맞고 오면 한심하게 쳐다보는 식으로 ‘이중 메시지’를 전달하면 조현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간 화목하면 정신질환 ‘NO’
반면, 힘들 때 가족이 지지하고 격려해준다면 안정을 얻게 된다. 가정이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긴밀한 유대감이 형성돼야 한다. 김 원장은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대화와 스킨십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먼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반드시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등 대화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가족끼리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잠시 버려두고, 몸으로 부딪히는 활동을 하는 게 좋다. 김 원장은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나누면 정서적으로도 좋고 두뇌발달에도 좋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기자에게도 한 가지 조언을 했다. 그는 부정적인 감정을 얘기할 때도 자동적으로 웃음을 짓는 기자의 습관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마구 표현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감정에 솔직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도 몰랐던 오래된 버릇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상담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김연희 마인드스캔 원장은…
1974년생, 99년 이화여대 의과대 졸업, 99년~2000년 이화의료원 동대문병원 인턴, 2001~04년 국립 서울병원 레지던트, 2005년 21회 인송논문상 수상, 2005~07년 축령복음병원 전문의, 現 하트스캔 헬스케어 부설 마인드스캔 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