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흥(興)한 나라, 교육으로 망(亡)한다②
경제학자가 바라본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문제점

“국내 모 결혼정보회사의 개인 프로필 및 선택에 대한 선호 데이터를 사용해 중매결혼시장에서 남녀의 배우자 선호 차이를 비교하면 어떨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재벌과 비(非)재벌 중 누가 더 우리 경제에 큰 성과를 만들어냈을까. 홈런타자는 삼진아웃을 쉽게 당한다는데 진짜 그럴까.”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ezstat.snu.ac.kr)에 가보면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통계학 수업 자료 중 ‘실생활에서의 통계학(각종 응용사례)’이라는 자료가 눈에 띈다. 자료에서 그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을 통계로 풀어냈다. 자료 끝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입시제도 관련 :
Ryu’s law of constant multiplication(류 교수의 법칙)
● (입시제도의 다양성) × (합격생의 다양성) = 상수(常數)
<통계적 근거>
● 70, 80년대 본고사 학력고사 세대
- 입시제도는 획일/단순
- 서울대 신입생의 배경은 다양
● 입학사정관제, 다양한 입시의 최근 세대
- 입시제도는 다양/복잡
- 서울대 신입생 배경은 획일적
구체적인 통계치를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류 교수는 입시제도가 만든 대학인재상(人材像)의 변화를 이처럼 정리했다.
류 교수의 전공분야는 통계를 활용해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계량경제학(경제통계학)이다. 그랬던 그가 교육 및 입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동기이자 현재 나란히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세직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다.
“평등화 교육이 대한민국 미래 망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적자본이란 사람에게 내재된 지식, 기술, 건강 등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교육, 훈련과 같은 행위는 인적자본의 수준을 여러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다. ‘현 상황에서 우리 교육이 경제성장에 맞는 인적자본을 배출해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류 교수와 김 교수가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를 위해 두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국제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지형 교수, 미국에서 교육경제학을 전공한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의기투합, 관련 보고서를 펴냈다. 이것이 바로 지난 2010년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의 미래사회협동연구사업을 통해 발표된 ‘성장동력으로서의 창조형 인적자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서론에서 류 교수를 비롯한 4명의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 경제에서 1960년대 이후 빠른 성장의 원동력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모방(模倣)형 인적자본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21세기 지식기반경제로 들어오면서 모방형 인적자본만으로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국내 기업의 지식과 기술수준이 선진화되고 세계 최고 수준에 접근해가면서, 창조형 인적자본의 축적이 이뤄져야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류 교수가 정면으로 비판하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평등화정책’이다. 그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대학과 엘리트 교육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면서 “우리 교육이 평등화를 지향하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도 세계 평균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류 교수는 영국인 경제학자 로이(A.D. Roy)가 “일반적으로 임의배정방식(Random assignment)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Self selection)보다, 공평한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가져온다”라는 주장을 근거로 제시했다. 로이 모델(Roy Model)에 따르면, 교육의 평준화, 다시 말해 임의배정정책은 소득평등을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되레, 인적자본 축적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어찌 보면 교육정책은 경제정책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정책은 잘못 되더라도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수정할 수 있지만, 교육은 나라 자체를 떠나지 않는 이상 힘들어요. 당장 영국 대학을 보세요. 과거 세계의 대학을 주름잡던 곳이 영국인데, 이제 세계 10위, 20위권 대학이 하나라도 있나요.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는 이제 옛말이 됐어요. 오죽하면 자국 언론이 나서 ‘한때 세계를 이끌던 영국의 대학들이 평등주의의 덫에 걸려 경쟁에서 뒤졌다’(파이낸셜타임스), ‘땅콩만한 보수에 만족할 사람은 원숭이뿐, 영국 대학의 강단은 원숭이들로 가득 찼다’(이코노미스트)라고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지난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 22년간 바뀐 횟수만 무려 15차례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교육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공교육 정상화의 이유로 대입전형을 바꿨지만 사교육비 부담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확인한 것은 교육과 입시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경쟁은 심화됐고,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죠. 과연 평등화된 교육을 통한 세대간 지위 및 부의 대물림 현상이 약해졌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나요. 본고사가 사교육비의 주범이었다는 통계가 있나요. 수능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든다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내신을 강화시켜 공교육이 정상화됐습니까. 교육부만 착각을 한 것이죠. 그럴 바에는 사교육을 당장 줄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처럼 쉬운 문제만 달달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렵게 내야 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제, 공정한 인재 선발 ‘원형’
류 교수는 올해로 서울대 강단에 선 지 딱 20년이 됐다. ‘처음 학교에 부임한 20년 전과 지금의 학생들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창의력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유로 그는 암기식 교육의 폐단을 지적했다. ‘물수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입시 변별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복잡한 입시전형은 다양한 인재들을 대학으로 불러 모으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입학생이라고 하면 그래도 각 고등학교에서 우수하다고 평가 받은 아이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신입생들 면면을 보면, 특정 지역 쏠림 현상이 심해요. 과거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서울대에는 전국에서 다양한 인재들이 모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서울 강남권에서,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친구들이 입학하죠. 시험이 쉬우니 부모가 약간만 도와주는 이른바 사교육을 많이 받은 친구들만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겁니다. 입학사정관제가 뭐겠습니까. 취지야 그럴싸하지만, 과연 이들(입학사정관)이 서류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니,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스펙(Spec)을 보는 것 아닌가요. 조선왕조가 왜 과거제도로 인재를 뽑았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DNA에는 공정한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내재화돼 있어요. 지금의 입학사정관제는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학생선발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류 교수는 입시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시험의 난이도부터 높일 것을 주문했다. 서울대 입시만큼은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최소한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만큼은 학습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류 교수는 “방법은 가급적 단순하게 만들고, 학생선발과 관련한 권한은 대학에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겉으로만 포장된 평등교육이 지속될 경우 반복과 과외를 통해 ‘실수 안 하기 게임’에 주력하는 문화가 만연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각종 자격증과 고시준비생,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평등주의식 교육이 만들어낸 폐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교수는 “지금처럼 직업 선택에 있어 도전정신이 줄어드는 것은 창조형 인적자본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한국 경제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능문제를 쉽게 내고, 그래서 안 틀리는 연습 많이 해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요. 모든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풀 필요는 없지만 아무도 어려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최소한의 엘리트는 있어야죠.”
실제로 최근 기업현장에서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신입직원들의 문제해결능력에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2006년 국내 주요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직업기초능력 괴리도 조사에서 문제해결능력에 대한 괴리도가 4년제 인문사회계열 출신 직원들은 0.95, 4년제 이공계열 출신은 0.89로, 의사소통, 수리능력, 기술 능력 등 10개 조사 항목 중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괴리도가 클수록 직업 기초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일이었어요.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응용문제를 냈는데, 평균 30~40점이 넘지를 않더군요. 똑같은 문제를 미국 UCLA학생들에게 냈는데 평균 70점 정도는 나왔거든요. 저는 그래도 서울대가 UCLA보다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 평균 80점은 넘을 거라고 봤거든요. 아마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최근 주요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학교 타운(Global school-house)이라는 국가정책에 따라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 펜실베이니아대, 시카고대 등 명문 대학 캠퍼스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들 대학에게 30년간 캠퍼스 부지 무상임대, 대학연구비 50% 제공, 재정보증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태국은 ‘아시아의 국제학교 메카’라는 정책목표를 세운 상태다.
본고사·고교입시 부활,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본고사만 해도 그래요. 현재 교육당국은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와 함께 3불(不)제도라는 이름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구술고사’라는 본고사와 유사한 형태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만 해도 그래요. 제가 경제학부 신입생들을 상대로 수업할 때 ‘너희들 중 학원이나 부모님 도움을 받아 준비한 사람은 손들라’고 하면 거의 다 들어요. 부모 도움 없이 과연 누가 그걸 스스로 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고교입시 부활과 지방 신흥 명문고를 육성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지방 명문고는 저소득층 우수 인력들의 요람이었거든요. 필요하다면 고등학교 입시도 부활시켜야 합니다. 교육당국은 오바마(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 칭찬한 우리 교육은 학생과 학부모 교육열이 만든 것이지 교과부가 주도한 교육 정책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류 교수는 “지금의 평등주의식 교육정책은 ‘계층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이로 인해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줄어드는 문제점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 류근관 교수는…
충남 보령 생, 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9년 미국 스탠퍼드대 통계학 석사, 90년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90~94년 미국 UCLA 경제학과 조교수, 95년~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0년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