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주변 법원경매 학원에서는 NPL(부실채권) 투자를 가르치는 곳이 상당히 늘었다. 하나같이 과거에 법원경매를 가르치던 곳들이다. 한 교육기관 관계자는 “법원경매는 이미 관련 서적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수강생을 모집하기 쉽지 않은 데 비해, NPL은 아직 덜 알려져 있어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수찬씨는 얼마 전 한 재테크 행사에 참석해 NPL 투자를 처음 소개 받았다. 이날 행사는 법원정보업체 디지털태인과 IBK기업은행이 공동 주최한 무료행사였다. 김씨는 “지방 모 사립대학 겸임교수가 강사로 나와 NPL 투자로 돈을 번 사례들을 설명했는데 꽤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NPL 투자열풍은 서점가도 휩쓸고 있다. <NPL 바이러스 투자법>, <NPL 랭킹 업 투자 비법>, <지분경매와 NPL 투자 완성>, <나는 경매보다 NPL이 좋다> 등 NPL 서적은 법원 경매서적과 함께 재테크 분야에서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인터넷 포털에서도 관련 온라인동호회와 교육기관들의 소개 글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NPL(Non Performing Loan)은 이자나 원금이 회수되지 않은 연체상태의 담보 대출 또는 무담보 신용대출을 의미한다. 이자, 원금을 내지 않아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놓인 부실채권이 바로 NPL이다.
근저당권이 NPL로 바뀌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A집이 원금과 이자를 3개월가량 내지 못해 연체되면, 채권을 가진 금융기관은 대출금액보다 훨씬 싼 가격에 전문 처리 기업으로 넘겨 회계상 손실을 줄인다. 특히 최근 BIS(국제결제은행) 기준이 강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처리는 더욱 적극적이다.

법원 주변 교육기관, NPL 강좌 속속 개설
이러자 NPL 전문처리회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은행이 매각한 근저당권(채권)은 NPL 전문처리회사들의 손을 거쳐, 일반인에게 매각된다. 주요 교육기관들이 교육생들에게 장려하는 NPL이란 전문처리회사들이 매각하는 부실채권을 말한다. 현재 국내 NPL 전문처리시장은 주요 시중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비롯해 대신에프앤아이(F&I), 외환F&I 등이 있다. SBI저축은행과 OSB(옛 오릭스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회사들도 별도로 NPL 전문회사를 설립해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일반인들이 NPL 투자로 수익을 올리려면 두 가지 가정이 성립돼야 한다. 첫째, NPL 전문처리회사로부터 사들이는 채권값과 시장가격 사이 간격이 커야 한다. 일반 시세보다 높은 할인율을 적용 받아 채권을 사들여야 나중에 시장에 내놨을 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유념해야 할 점은 해당 NPL이 경매로 넘어가 비싸게 낙찰 받는 경우다. 다시 말해 매입 할인율이 높았던 근저당권이 법원 경매에서 비싸게 팔려,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될 경우에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NPL로 처리된 부동산 물건은 추후 법원경매를 통해 매각 절차를 밟는다. 예를 들어 A라는 집에 설정된 6000만원짜리 1순위 근저당권을 3000만원에 매입했다고 치자. 추후 이 집이 경매에서 제3자에게 5000만원에 낙찰되면, 이 NPL에 투자한 사람은 200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부분의 교육기관들과 관련 서적들이 NPL 투자를 홍보하는 것이 이와 같은 ‘저가 취득, 고가 낙찰’이라는 이상적인 구조다.
상계(相計)처리 방식도 NPL 투자에 자주 등장하는 투자기법이다. 상계처리란 세입자나 근저당권자(NPL 보유자)가 법원 경매에 참여해 낙찰 받은 뒤, 배당 받을 돈의 일부를 채권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경매로 나온 1억원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이 아파트의 1순위는 5000만원이고 후순위자인 C씨는 2000만원의 돈을 빌려주고 근저당권을 3000만원으로 설정했다. C씨는 추후 이 아파트 경매에 참여해 최고가로 8000만원을 기입해 낙찰 받았다. 이럴 경우 그는 낙찰금액에서 자신의 3000만원을 뺀 5000만원만 1순위 채권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상계처리 신청을 하면 된다.
결국 상계처리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채권값을 최대한 많이 할인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나중에 해당 물건이 경매로 넘어가도 상계처리 시 추가비용이 적게 든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NPL 투자는 절세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투자기법”이라고 설명했다.

할인율 높은 우량 NPL 찾기 힘들어
그러나 할인율이 높더라도, 최종 입찰 과정에서 예상보다 물건이 싸게 낙찰되면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 경매 2~3회 정도 유찰돼 입찰가가 감정가의 50% 수준에 머물게 되면 할인 매입을 감안하더라도 NPL 투자금은 손실로 이어진다. 저가에 채권을 매입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투자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종합법률사무소 ‘청명’의 김영수 경매실장은 “주요 교육기관마다 최근 ‘부동산 열기로 법원 경매 현장의 낙찰가율이 오르고 있다’며 NPL 투자를 부추기고 있지만, 이러한 투자 열기는 NPL 매입가도 동시에 올리고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NPL 전문처리기관들의 운영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펴낸 보고서 ‘국내부실채권 시장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매각된 주요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낙찰가 비율이 대부분 90%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채권값과 매각가 사이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를 쓴 김수기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관련 업체 간 시장 내 경쟁이 심해지면서 연 10%대를 유지하던 부실채권 투자수익률이 올 들어 5%대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수익률이 낮아지기는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법무법인 ‘참진’의 황지현 경매실장은 “전문처리기관들의 수익률이 이 정도라면 개인들은 더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등기부등본상 기재된 채권자가 유동화주식회사일 경우 대부분 NPL을 매입할 수 있다.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NPL 전문회사를 사전에 파악한 뒤, 해당 기업을 찾아가 매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개인들이 NPL 투자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안전하면서 고수익이 보장된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채권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매전문가는 “NPL 처리과정상 권리관계가 깨끗하지 못한 물건이 대체로 일반에 매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쉽게 매각이 가능한 유망지역 NPL은 시중에 잘 판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간혹 상계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채무자가 배당이의신청을 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법원은 상계처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자칫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투자금이 장기간 묶일 수도 있다. 채권 매입가가 일반 시세보다 비싸면 상계처리를 한다고 해도 역시 손해다.
NPL 투자 역시 주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질권(質權) 설정’이라고 불리는 NPL 담보대출은 계약금 명목으로 10%만 내면 최대 90%까지 대출 받을 수 있다. 특히 제2금융권의 움직임이 적극적이다. 하지만 투자자가 추후 상계처리를 목적으로 할 경우 질권설정에 따른 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황지현 실장은 “대형 시중은행보다는 중소 저축은행이 보유한 채권 중 헐값에 매각되는 우량 NPL이 포함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우량 NPL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과 동시에 해당 집에 대한 권리분석을 완벽하게 끝마쳐야만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전국 법원경매 현장에서는 배당이의신청으로 상계처리를 하지 못하거나 소유권 이전에 어려움을 겪다가 보증금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