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과 IT(정보기술)의 융합, 일명 핀테크 열풍이 거세다. 주목할 부문은 핀테크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결제’가 더 이상 금융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과 IT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핀테크 열풍이 IT업계로 확산되는 이유다.
IT업체들은 간편결제서비스를 확대하는 동시에, 차별화된 서비스로 정면돌파에 나서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결제시장에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핀테크 혁신에서 뒤처지면 향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여기에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바일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글로벌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는 2015년 4311억달러에서 2017년 7210억달러로 급격히 성장할 전망이다. NFC 방식의 모바일 결제시장은 2020년까지 소매업 부문에서만 13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기업 입장에선 결코 놓칠 수 없는 매혹적인 시장인 셈이다.
글로벌 모바일 결제시장은 지난 3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삼성페이와 안드로이드페이가 출시계획을 발표하면서 3파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과 기존 마그네틱 단말기의 보안전송(MST), 바코드까지 모두 수용한 삼성페이가 NFC 방식의 애플페이, 안드로이드페이와 대결하는 형국이다.
갤럭시S6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모바일결제서비스 ‘삼성페이’는 NFC 기반의 결제와 MST, 앱카드 등 다양한 결제방식을 모두 지원한다. 애플의 애플페이처럼 별도의 결제단말기가 필요한 NFC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매장에서도 모바일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범용성이 삼성페이의 가장 큰 장점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2월 MST 관련 특허를 보유한 미국의 모바일결제솔루션 벤처기업 ‘루프페이’를 인수했다. MST는 신용카드정보를 담은 스마트폰을 마그네틱 방식의 결제단말기에 가까이 대면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국내외 대다수 국가에서 주요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마그네틱카드의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이를 신용카드단말기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매장에 설치돼 있는 신용카드단말기를 그대로 사용해 모바일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삼성페이는 국내 250만개, 미국 전체 소매점의 90%인 1000만개 매장에서 즉시 이용할 수 있다. 또 루프페이에서 통용되던 신용카드, 직불카드, 포인트 카드 등 기존 1만종의 카드도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은행 등 다수의 카드사와 제휴를 맺은 상태다.
삼성전자는 모바일결제 활성화를 위해 국내 카드사들과 ‘앱카드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 앱카드 협의체에는 삼성카드를 비롯해 롯데카드, 신한카드, 현대카드,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등이 참여하고 있다.
삼성페이는 교통카드와 같은 방식으로 결제하는 NFC 모바일결제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바코드를 스캔해 결제하는 앱카드 방식도 함께 지원한다. CNN은 “애플페이, 구글월렛과 달리 마그네틱결제기에서 작동하는 것은 혁신”이라며 “사실상 모든 신용카드가 여전히 마그네틱 결제기를 사용하고 있어 빠르게 보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려되던 보안 문제도 보완했다. 삼성페이로 결제할 때마다 지문인증을 거치도록 했다. 갤럭시S6에는 지문을 인식하는 장치가 홈버튼으로 나와 있다. 이같은 기능을 갖춘 삼성페이는 올 여름 미국과 한국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마그네틱카드의 보안 취약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또 무선통신은 특성상 중간에 송신정보가 새 나갈 수 있기 때문에 MST 역시 결제과정에서 정보가 탈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카드정보가 노출되지 않는다. 삼성페이는 카드를 스마트폰에 등록한 후 암호화된 카드정보가 결제단말기와 통신함으로써 결제가 이뤄진다. 보안성 강화를 위해 삼성전자는 카드단말기와 3인치 거리 이내에서 결제가 이뤄지도록 자기장의 세기를 약화시켰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바일보안 플랫폼인 ‘녹스’를 통해 외부접근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해킹을 방지한다.
스마트폰을 분실한 경우에는 ‘디바이스 위치 찾기’ 서비스를 통해 기기의 위치를 탐색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을 원격에서 잠글 수 있어 카드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이원호 삼성전자 홍보팀 과장은 “삼성페이에서 암호화된 지문·카드 정보는 스마트폰 내 별도의 보안 저장공간에 보관되고 결제 시 실제 신용카드 정보가 전송되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된 일회용 번호인 토큰을 생성, 사용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존 신용카드와 결제시간이 비슷하다는 점은 단점이다. 삼성페이는 최종결제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7초 정도 걸린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또 갤럭시S6가 아닌 다른 스마트폰으로 삼성페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전용케이스를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IC카드 전환돼도 상당기간 우위 지속
삼성페이는 현재 IC카드 방식은 지원하지 않는다. 앞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IC카드 보급이 확대되면 애플페이, 안드로이드페이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국내에서는 마그네틱 카드 복제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18년 7월까지 기존 마그네틱 신용카드 단말기를 IC카드 전용단말기로 교체할 예정이다. IC카드로 전환되는 추세에 따라 MST 방식의 경쟁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IC카드 전환율이 95%에 달하는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신용카드가 IC·마그네틱 겸용이며, 결제단말기 역시 겸용리더기가 많기 때문에 MST의 우위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결제서비스가 한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카드사와의 제휴가 필수적인데 애플페이는 0.15%의 수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삼성페이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며 “아직 NFC단말기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마그네틱단말기를 활용하는 삼성페이의 기술이 가장 대중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종문 선임연구원은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국내 판매량으로 볼 때 삼성페이의 대중화에는 2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휴대폰 연간 판매 규모인 1400만대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60% 정도다. 여기서 삼성페이가 탑재된 휴대폰을 구매한 비율이 70% 정도라고 하면 연간 500만대가 공급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애플페이는 NFC결제방식과 지문인식기술을 적용했다. 애플페이는 금액 기준으로 비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미국 3대 신용카드사를 통한 비접촉 결제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전 세계 다국적 통화를 지원하는 모바일결제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향후 미국 외 다른 국가로 진출하기도 쉽다.
간단한 사용법은 애플페이의 장점이다. 카드정보를 등록한 후 가맹점에서 NFC단말기에 아이폰을 대고 지문을 통한 인증과정을 거치면 결제가 완료된다. 결제 관련 앱을 띄우고 홈버튼에 손가락만 올리면 끝이다. 최근 출시된 애플워치에서도 간단한 조작버튼만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NFC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게 단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미국 내 애플페이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은 20여만개 정도다. 애플페이가 NFC로 작동되기 때문에 각 매장에 기존의 마그네틱 카드 결제기 외에 별도의 NFC 결제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NFC방식의 서비스 확산속도가 예상만큼 빠르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애플은 올 초 미국 내 750개 은행 및 신용카드사와 제휴를 맺고 서비스 가능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오는 10월 비자와 마스터 등 주요 카드사가 미국 내에서 기존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교체하는 시기에 발맞춰 NFC결제 가맹점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구글은 2011년 전자지갑서비스인 구글월렛을 출시하며 모바일 결제시장에 진출했지만 사실상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모바일 통신회사들이 서비스 제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구글월렛과 별도로 운영되는 안드로이드페이를 오는 5월 공개할 예정이다. 안드로이드페이도 NFC를 기반으로 하는 결제서비스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휴대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특히 구글은 모바일결제 플랫폼을 개방해 안드로이드 기반의 결제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앱 제작업체는 자신들의 앱에 안드로이드페이 기능을 자유롭게 추가할 수 있다.
구글은 최근 결제기능 강화를 위해 소프트카드를 인수했다. 소프트카드는 버라이즌, AT&T, T모바일 등 미국 3대 이동통신 회사가 모바일결제 사업을 위해 설립한 회사다. 이들 이동통신 3사는 소프트카드를 주력 결제시스템으로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에 선보이기 전부터 안드로이드페이는 미국 이동통신회사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외 시장에서 IC카드 보급이 확대되면 삼성페이는 결국 애플·구글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기술 외에도 향후 얼마나 많은 기반을 구축하느냐가 관건으로, 이번 경쟁에서의 승자가 시장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 애플이 지난해 9월 출시한 애플페이는 NFC단말기에서만 결제할 수 있다.
신용카드 결제보다 확실한 차별화 이뤄야
세계적으로 새로운 모바일 결제방식이 등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제방식이 거래수단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결제서비스가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방식보다 확실한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현재 나온 모바일 결제방식은 기술적인 완성도는 높지만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또 사용자가 서비스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더라도 실제 결제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회사의 상당한 투자도 필요하다. 알리페이가 최근 출시한 새로운 모바일 송금 서비스인 ‘홍바오(紅包)’를 홍보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약 6억 위안(1000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