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학부모 모임이 많아요. 그런 데 참석하면 다른 부모들이 꼭 물어봐요. 직장 다니시는데 낮에 어떻게 나오셨냐고. 중소기업 다닌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죠. 낮에 학부모 모임 나오는 엄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잖아요. 직장 다니는 워킹맘도 있지만 모임 있을 때마다 직장에 휴가 내서 오는 거고요. 제가 육아휴직 내서 6개월간 쉰다고 하면 다들 정말 부러워해요. ‘승우 엄마 진~짜 좋은 회사 다닌다’고. 다른 회사들은 한 달 쉬는 것도 눈치가 많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전 큰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고 둘째 아이가 연년생이라 내년에 또 초등학생이 돼요. 그래서 내년에 육아휴직 한 번 더 쓰겠다고 승인받아 놨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학부모들이 ‘솜피’라는 데가 도대체 뭐 하는 회사냐며 궁금해 해요. 당연히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많이 생기죠.”(나경아 솜피 영업지원부 과장·39)
나 과장은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게 늘 아쉬웠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참에 육아휴직을 써볼까 생각했지만 좀 망설여졌다. 그동안 다른 직원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 쓴 사례는 여러 번 있었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 육아휴직을 쓴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대체인력 등 많은 배려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더 고민이 됐다. 하지만 왠지 솜피라면 이해해줄 것 같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입사 후 11년 동안 겪어온 솜피는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회사보다도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회사에선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한 달 새 나 과장 가족에게 일어난 변화는 놀라웠다. 우선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 나 과장은 “두 아이 모두 남자 아이들이다보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지 않았었다. 나도 회사 다닐 땐 피곤해서 긴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보니 아이들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고 이젠 아이들이 오늘은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고 친구와 뭘 하며 놀았는지 먼저 와서 얘기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회사생활도 한결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평일에 아이들 문제로 걱정하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스트레스도 줄어들어 주말에는 아이들과 더 성심성의껏 놀아준다.

2010년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 이후에도 꾸준히 복지 확대
그가 몸담고 있는 ‘솜피’(Somfy)는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60개국에 137개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솜피는 전동 차양시스템 전문기업으로 본사에서 전동 블라인드·커튼 등에 들어가는 원주형 모터와 제어장치를 만들고 한국지사는 판매를 담당한다. 솜피는 직원 25명 규모의 작은 회사지만 국내 상업용 빌딩에 들어가는 원주형 모터와 제어장치 부문에서 약 90%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진정한 히든챔피언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솜피에는 이보다 더 큰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직원과 그 가족들까지 챙기는 가족친화적 경영이다. 이 회사는 2010년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솜피는 △매주 수요일은 야근 없는 ‘가족 사랑의 날’ △출산휴가 시 급여 전액 지급 △매출액 목표 달성 시 전 직원 부부동반 해외여행 △직원 자녀 해외지사 인턴 기회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족 관련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다. 말만 그럴싸한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잘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이다. 나 과장의 육아휴직 사례만 봐도 솜피의 가족친화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육아휴직은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만 8세) 이하면 한 아이당 1년씩 휴직할 수 있는 제도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지만 이를 눈치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회사는 드물다. 기업 입장에서 대체인력을 따로 뽑아 교육시키는 게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솜피에선 마음만 먹으면 남자직원은 물론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직원들이 “사장님의 사고방식이 열려 있으며 굉장히 가족지향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솜피는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인증된 이후에도 가족 관련 복지제도가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유연근무제다. 솜피 직원들은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해 9시간 근무 후 알아서 퇴근한다. 아침에 운동하고 30분 일찍 출근하는 채현희 마케팅부 대리(33)는 퇴근도 그만큼 일찍 한다. 가족과 함께 캠핑 가는 걸 즐기는 강성용 영업부 대리(35)는 한 달에 한두 번 금요일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차가 안 막히는 오후 5시에 곧바로 근교 캠핑장으로 떠난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회사는 이미 몇 군데 있지만 이 정도의 자유를 허용하는 회사는 드물다. 솜피가 처음부터 이렇게 파격적이었던 건 아니다.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땐 먼저 단기간 시범실시해 보고 결과에 따라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가족친화적 복지제도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차명이 관리부장(47)은 유연근무제에 대해 “처음엔 8시, 9시 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6개월 시행했는데 문제도 없고 직원들도 좋아해서 이후 8시, 9시, 10시로 선택권을 확대했다. 지금은 8~10시 사이에 아무 때나 온다. 시범실시 땐 근무시간을 잘 지키는지 점검하기도 했지만 이젠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정착했다”고 말했다. 솜피는 한때 ‘점심시간 두 시간 제도’를 시범운영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하거나 학원에 다닐 사람을 위해서였다. 퇴근시간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없어지긴 했지만 복지 확대를 위한 회사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근 이 회사의 유연근무제는 8~10시 자유 출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유연근무제를 하루 단위에서 한 달로 확대한 것이다. 최대 4시간까지 사용 가능하다. 예컨대 이번 주에 야근하느라 4시간 더 일했다면 그 달 안에 하루는 4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한가할 땐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라는 의미다. 직원들의 기대감은 매우 높다. 주말 여행계획을 세우는 사람에게도 희소식이다. 강 대리는 “월~목요일에 조금씩 일찍 출근하면 금요일 낮에 캠핑장으로 떠날 수도 있다”며 좋아했다.

유연근무제·휴가 대기업보다 월등히 뛰어나
자유로운 휴가도 강점이다. 솜피는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누구나 휴가를 5일씩 붙여 쓰도록 독려한다. 주말을 앞뒤로 붙이면 사실상 9일 휴가라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직원도 많다. 본인 또는 자녀가 아프다는 등의 이유로 급하게 써야 하는 휴가에도 관대하다. 되도록 미리 공지를 해야 하지만 갑자기 생긴 일에 대해선 이해한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휴가 신청 절차도 간단하다. 보통은 사전승인 등 여러 절차가 있지만 솜피에선 이메일로 날짜와 사유만 적어 보내면 승인해준다. 대신 업무공백이 없도록 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차 부장은 최근 여성가족부 산하 ‘가족친화 지원센터’에서 주최한 교육에 다녀온 뒤 솜피의 이러한 강점을 더욱 실감했다. “대기업과 비교해도 솜피가 뛰어나다고 느낀 건 유연근무와 휴가예요. 아무리 좋은 회사, 큰 회사도 저희만큼 하는 데는 별로 없더라고요. 제도는 다 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 된다는 회사가 대부분이에요.”
그는 솜피의 자유로운 휴가를 활용해 여행도 자주 다닌다. 특히 남들이 다 휴가 가는 성수기를 피해 비수기 때 여행계획을 세운다. 사람 붐비는 것도 피하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 만큼이나 알찬 행사도 눈에 띈다. 연중 솜피의 가족 관련 행사는 체육대회·송년회·봉사활동 등 다양하다. 자연스레 직원 가족들은 서로 속속들이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특히 솜피의 체육대회는 업계 내에서 규모가 크고 재미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파주영어마을을 통째로 빌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솜피 직원과 가족은 물론, 거래처 직원과 가족까지 초청한다. 인원 수가 솜피 전 직원의 10배에 해당하는 250~300명 규모다. 체육대회가 생긴 이래 매년 이를 기획해온 장형석 영업부 차장(47)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1999년에는 우리 직원들끼리만 체육대회를 했었고 2000년에는 친한 거래처를 불러서 동네 작은 운동장에서 했었다. 나중엔 고객 수를 늘려서 유원지로 놀러갔다. 그러다 ‘가족들까지 초청해서 대규모로 진행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8년 전부터 파주영어마을로 장소를 옮기고 솜피 직원, 거래처 직원 할 것 없이 온 가족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고 설명했다.

거래처와 그 가족까지 초청해 성대한 체육대회 열어
체육대회 내용도 알차다. 아침 두 시간, 점심 먹고 두 시간 집중해서 놀고 일찍 끝낸다. 가족들끼리 파주 주변관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참여율은 물론 만족도도 높다. 뷔페식 점심식사를 한 뒤엔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등 후한 경품이 걸린 게임을 즐긴다. 아이들끼리 놀 수 있도록 놀이기구도 따로 설치해준다. 참여하는 직원과 가족의 반응은 뜨겁다. 직원이 사정이 있어 못 와도 직원을 뺀 가족들만 와서 놀고 갈 정도다. 화기애애한 체육대회 덕분에 거래처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장 차장은 “거래처 관계자들을 모시고 하면 접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보통 접대는 결정권자인 대표가 오는 걸 바라겠지만, 우린 초청장을 대표가 아닌 직원들한테 보낸다. 직원들이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젠 매년 오는 거래처 ‘단골손님’까지 여럿 생겼다. 거래처 직원들이 우리한테 체육대회 언제 하냐고 먼저 물어볼 정도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송년회는 무대가 있는 레스토랑을 빌려서 한다. 솜피 직원과 가족까지 포함한 60~70명 규모로 열리는 송년회는 사내 밴드 동아리의 공연을 곁들여 디너쇼처럼 진행한다. 한때는 “송년회에 가족을 부르면 챙길 게 많아져서 귀찮다. 직원들끼리만 술 마시면서 편하게 놀면 안 되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장 차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장님은 절대 그 뜻(송년회에 가족들이 참여하는 것)을 굽힐 생각이 없으신 듯합니다. 오히려 ‘매일 술 먹고 노는 건 다른 회사에서 다 하니까 우린 지양하자. 1년 동안 회사 잘 다니라고 뒷바라지해준 가족들을 그날 하루 초청하는 걸 못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직원들도 할 말이 없죠.(웃음)”
가족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도 뜻 깊다. 보람 있는 활동을 회사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솜피 직원과 가족은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성남 에덴의 집에 가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만난다. 가족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은 자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차 부장은 “처음엔 가기 싫어했던 두 아들을 강제로 데려갔다. 아이들이 장애인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해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는지 이젠 봉사활동 갈 날을 기다린다. 학교에 장애인 친구가 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보면 참 흐뭇하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유연근무제와 휴가, 각종 행사 등 다방면에 걸친 솜피의 노력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만큼 일에 열정을 쏟게 한다. 회사가 앞장서서 가족을 챙기고 직원은 애사심을 갖고 더욱 열심히 일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주는 ‘효율적인 경영’의 대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