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충북 괴산군 사리면 모래재로 인근의 국유림. 산비탈은 삭발을 한 듯 나무 한그루 없었다. 새로 숲을 가꾸기 위해 나무를 전부 베어냈기 때문이다. 헐벗은 산비탈에는 나무심기가 한창이었다. 풀무원 로하스 아카데미와 산림청, 충북 괴산군이 마련한 숲가꾸기 일환으로 펼쳐진 ‘치유의 숲’ 프로젝트 현장이다.

행사를 주관한 풀무원의 남승우 총괄사장은 나무심기에 여념 없었다. 구덩이에 소나무 묘목의 뿌리를 펴서 넣고 정성스럽게 흙을 덮었다. 그리곤 묘목을 부드럽게 잡아당기면서 구덩이 주변의 흙을 지그시 밟았다. 그의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날 남 총괄사장을 비롯해 풀무원 임원 130여명은 소나무 묘목 3000그루를 심었다. 남 총괄사장은 “숲과 인간의 공존은 나무심기에서 출발한다”며 “새 생명을 옮겨 심은 이곳도 몇 년 후면 연둣빛으로 넘실댈 것”이라고 말했다.

풀무원은 탄소저감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부터 전사 임직원과 가족이 주축이 돼 매년 정기적으로 나무심기 행사를 개최해 왔다. 앞서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는 2013년 산림청과 연수원 뒷산(괴산군 청천면 평단리 산 55) 14ha의 국유림을 ‘국민의 숲’으로 조성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국민의 숲은 원하면 누구나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꿔 다양한 산림체험을 하면서 휴양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된 국유림이다. 여기에 힐링 프로그램을 더한 것이 치유의 숲이다. 풀무원은 이곳에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체험·산책·놀이시설을 갖추고 숲길체험 지도사를 배치하는 등 치유의 숲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날 남승우 총괄사장은 오는 9~10월 괴산에서 열리는 ‘2015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하며 후원금 1억원을 이시종 충북 도지사에게 전달했다. 유기농 선도업체인 풀무원은 엑스포 기간 동안 홍보 부스를 만들어 수십년간 쌓은 유기농 노하우를 알릴 계획이다.

1. 원경선기념관 / 2. 원경선 원장
1. 원경선기념관 / 2. 원경선 원장

로하스 정신으로 이어진 생명존중·인간사랑
풀무원은 충북과 인연이 깊다. 충북 음성군에 두부공장 등 주력생산시설과 물류센터가 있다. 치유의 숲 조성현장을 방문한 이시종 지사는 “생명과 태양의 땅인 충북의 절반은 풀무원이 만든다”고 말했다.

특히 충북 괴산은 풀무원 설립자인 고(故) 원경선 원장의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원 원장은 16세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1955년 경기도 부천에 땅 3만여㎡(약 1만평)를 개간해 공동체를 만들었다. 전쟁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의 슬로건은 ‘같이 일해서 같이 먹고 살자’였다.

이후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뒤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시작하면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인 정농회(正農會)를 설립했다. 지금이야 유기농이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놀림감’이었다. 유기농이란 말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초기엔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으니 농사가 잘 될 리 없었다. 큰 손실을 보자 정농회를 탈퇴하는 회원도 생겼다. 하지만 원 원장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어느 순간 죽어 있던 땅에서 생명이 돋기 시작했다. 유기농이 점차 자리를 잡고, 붐이 일기 시작한 웰빙 바람을 타고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게 됐다. 그를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다.

원 원장의 장남인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1981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풀무원농장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이 풀무원의 출발이다.

원 원장은 지난 2004년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에 풀무원농장을 새로 일궜고, 인근에 평화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2013년 100세를 일기(一期)로 타계하기 전까지 이곳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유기농을 가르쳤다.

원 원장의 생명존중과 이웃사랑 정신은 풀무원의 핵심가치인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정신으로 이어진다. 로하스는 건강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 원장이 평소 강조했던 풀무정신과 상통한다. 풀무는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는 데 쓰는 기구다. 원 원장은 평소 “대장장이가 풀무를 사용해 쇠를 달구듯 풀무질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풀무원이라는 사명에도 그의 정신이 녹아 있는 셈이다.

이러한 풀무원 정신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괴산에 있는 원경선기념관과 풀무원 직원 1만5000여명을 위한 연수원인 로하스아카데미다. 원경선기념관은 원 원장이 생전 머물던 자택을 리모델링해 조성했다. 유기농 농업과 환경·생명보호·평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그의 기록이 전시실 4곳에 정리돼 있다.

홍성일 풀무원홀딩스 홍보실장은 “농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여기가 처음”이라며 “생명존중정신과 이웃사랑정신을 계승하고 기리는 교육·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완공된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첫 패시브하우스연수원이다.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는 말 그대로 ‘수동적인 건물’이라는 뜻이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끌어 쓰는 액티브하우스(Active house)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건물 안의 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차단하고 폐열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최대한 줄인 게 특징이다. 1년 내내 영상 15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지열(地熱)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로하스아카데미는 건물과 주위 자연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원래 있던 오솔길을 그대로 살려 건물 역시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지어졌고, 옥상 산책로는 외부 산책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김혜경 로하스아카데미 본부장은 “올해 치러지는 유기농산업엑스포 때 로하스아카데미와 원경선기념관을 개방하고,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풀무원 임직원은 로하스아카데미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바르게 먹는 방법에서부터 사무직 노동자를 위한 ‘자세교육’,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관리교육’ 등이 주요 교육내용이다.

로하스아카데미는 지역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다문화자녀 등을 대상으로 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길러주는 캠프를 열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교육기부활동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1000여명이 혜택을 입었다. 아카데미 내 나눔농장에서 생산, 판매한 이익금은 지역주민을 위해 쓰인다.

- 지난 3월28일 나무심기 행사에서 남승우 총괄사장(가운데)이 임원들과 소나무를 심고 있다.
- 지난 3월28일 나무심기 행사에서 남승우 총괄사장(가운데)이 임원들과 소나무를 심고 있다.

풀무정신 이어받아 CSV 활동 활발히 펼쳐
풀무원이 오래 전부터 실행하고 있는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전략도 원 원장의 정신에서 발원한다. CSV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풀무원의 대표적인 CSV 활동으로는 2010년부터 추진해온 ‘바른먹거리 캠페인’이 꼽힌다. 이 캠페인은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식품첨가물 교육, 식재료 맛보고 표현하기 같은 먹거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부터는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인 키자니아서울에 ‘바른먹거리 스쿨’을 오픈해 캠페인을 확대, 시행 중이다.

풀무원은 CSV 활동의 일환으로 2005년 ‘바른마음경영’도 선포했다. 바른마음경영은 뇌물 및 부패 방지를 담당하는 부서와 경영진단 부서를 통해 공정거래 관련 법규위반행위를 사전에 예방토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창하 풀무원 전략경영원장은 “원 원장의 정신을 기업 내에 체화(體化)하고 이를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것이 바로 바른마음경영”이라고 말했다.

풀무원은 협력기업과의 동반성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26일부터 1박2일 동안 로하스아카데미에서 52개 협력기업 대표들과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위한 ‘베스트 파트너스 데이’를 가졌다. 협력기업 대표들은 ‘환경과 안전, 그리고 글로벌’이라는 주제의 간담회를 마친 후 연수원에 묵으며 풀무원의 로하스프로그램과 식단을 체험했다.

회사의 또 다른 파트너인 주주와 만나는 주주총회 역시 색다르다. 지난 3월27일 열린 풀무원의 주주총회는 방송인 이익선씨의 사회로 남 총괄사장과 유창하 전략경영원장이 풀무원의 경영 등에 대해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풀무원의 열린 주주총회는 주주의 참여를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을 벤치마킹해 지난 2008년 시작됐다. 이날 주총에 초등학교 5학년 강희석 군이 주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월20일 서울 인사동에 개관한 ‘뮤지엄 김치간(間)’도 대표적인 CSV 활동이다. 뮤지엄 김치간은 풀무원이 지난 28년간 운영해온 김치박물관의 2세대 박물관이다. 풀무원은 1987년 서울 중구 필동에서 개인이 운영하던 김치박물관을 인수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2013년 코엑스몰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이전을 하게 된 것이다.

김치박물관은 수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다. 매년 수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외환위기 때 문 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풀무원은 제대로 된 김치박물관을 지킨다는 자부심에서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 남 총괄사장은 “김치박물관 운영은 풀무원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사업”이라고 말했다.

뮤지엄 김치간 어디에도 풀무원이라는 이름은 없다. 김치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사업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남 총괄사장의 고집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번에 개관한 뮤지엄 김치간은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 아이콘인 김치와 김장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다른 김치박물관과는 달리 모형이 아닌 실제 김치를 전시했으며 정보기술(IT)을 활용해 김치 담그기 등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해 영어·중국어·일어가 지원된다.

김치간의 터 후보로 지금의 인사동과 함께 서울 강남, 북촌한옥마을 등이 물망에 올랐다. 오랫동안 검토를 거쳐 건물 임대 등 현실적인 여건과 함께 인사동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최적의 장소라는 점에서 입지로 선정됐다. 설호정 뮤지엄 김치간 관장은 “인사동에 있는 만큼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 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 2013년 완공된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는 건물 안의 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차단하고 폐열을 재활용해 냉·난방에 이용한다. 2. 지난 3월27일 열린 ‘2015 풀무원 열린 주주총회’에서 방송인 이익선씨(왼쪽)의 사회로 남승우 총괄사장(가운데)과 유창하 전략경영원장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1. 2013년 완공된 풀무원 로하스아카데미는 건물 안의 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차단하고 폐열을 재활용해 냉·난방에 이용한다.
2. 지난 3월27일 열린 ‘2015 풀무원 열린 주주총회’에서 방송인 이익선씨(왼쪽)의 사회로 남승우 총괄사장(가운데)과 유창하 전략경영원장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남승우 총괄사장의 솔선수범 리더십
생명존중·인간사랑의 경영이념을 솔선수범하는 이는 남승우 총괄사장이다. 1970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던 그는 현대건설에 들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개월 일하고 번 돈을 귀국 후 만난 고교·대학 동창에게 투자했다. 그 친구가 바로 원혜영 의원이었다. 원 의원은 정계에 진출하면서 1993년 회사를 떠났고, 남 총괄사장이 회사를 맡았다. 현재 원 의원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없다.

남 총괄사장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그는 40대에 대학원에 진학해 식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만학도였다. 1994년 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식품공학 석사학위를, 1999년에는 같은 대학원에서 식품생물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달에 4~5권의 신간을 읽고 임원들에게도 책을 직접 사서 선물한다.

그는 술, 담배, 골프를 하지 않는다. 대신 마라톤과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그의 사무실에는 번듯한 소파 하나 없다. 조그만 티 테이블과 책상이 전부다. 그가 타는 차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다. 국내 굴지의 식품분야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치곤 소박하다. 주변에서 ‘더 크고 좋은 차’를 타라고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회장 직함을 안 쓰고 ‘총괄사장’을 고수하는 것도 비슷한 철학에서 나왔다. 성(姓)이 다른 창업자를 극진히 예우하는 것도 국내 풍토에선 드문 일이다.

작은 유기농매장으로 출발했던 풀무원은 지난해 1조7000억원의 매출(연결기준)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풀무원은 풀무원홀딩스를 포함해 종합식품기업인 풀무원식품, 이씨엠디(급식 및 외식), 푸드머스(식자재), 풀무원생활건강(건강기능식품), 명가식품 등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에 해외법인도 두고 있다.

풀무원은 2017년까지 국내 사업에서 3조5000억원, 범태평양 지역에서 1조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국내 1위 식품기업과 세계적인 로하스 생활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남 총괄사장이 제시한 비전이다.

남 총괄사장은 “창사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원칙이 바로 바른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며 “바른 먹거리를 제품에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까다로운 원칙을 정하고 실천한 원 원장의 정신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