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부회장은 타고난 ‘오토맨’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자동차 랠리에 참가할 정도로 차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는 지난 2001년 현대차가 시판한 ‘투스카니’ 출시 기념으로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벌인 투스카니 레이싱 행사에 참석해 직접 시승했을 정도다.
스포츠에 대한 정 부회장의 관심은 유별나다. 스포츠 관람은 물론이고 직접 뛰는 것도 즐긴다. 모터스포츠뿐 아니라 축구, 농구, 야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그는 수영과 테니스뿐만 아니라 골프도 수준급의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라운딩을 한 인사는 정 부회장이 굉장한 장타를 날려 놀랐다고 전한다.
그는 한 때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닌 적이 있다. 서울 청운동 근처 체육관에서 동창들과 농구경기를 하던 중 리바운드 볼을 잡으려고 점프하다 그만 발목을 접질린 것.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다리가 낫자마자 곧바로 농구장을 찾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같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마케팅에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기존 현대차에만 진행하던 월드컵 마케팅을 기아차까지 확대시켰고 유럽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유로대회 후원도 그가 주도했다.
학창시절 정 부회장은 수학과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수학은 논리적 사고의 틀을 습득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리고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예측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면에서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관심은 현재 회사경영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최소한 2〜3년 후를 늘 생각하고 시대흐름에 맞춰 경영의 방향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하는 경영인에게 필요한 기본소양은 논리력과 역사적 간접경험이라고 그는 믿는다.
중·고교 시절 친구들이 전하는 정 부회장에 대한 기억은 조용하고 과묵하지만 ‘아량이 넓은 친구’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산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구정중학교로 전학을 가 졸업했다. 오산중학교 때의 일이다. 당시 그가 다니던 오산중학교는 한 반 60명 중 절반에 가까운 30명 정도가 생활보호대상자일 정도로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양친이 없거나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어려운 학생도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정 부회장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한동안 함께 지내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이런 행동에 가족들이 불편해했을 법도 하지만 정몽구 회장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정 회장은 평소 아들의 이런 마음 씀씀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정 부회장은 공부도 잘했지만 테니스, 수영, 스키 등 운동에 소질이 많았다. 특히 클라리넷을 잘 불어 교내 음악 서클에 가입해 합주도 했다. 의리가 강하고 리더십이 뛰어나 그의 주위엔 늘 친구가 북적댔다. 함께 시험공부도 하고 같이 운동을 했지만 그가 정주영 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과도 친하다. 물론 친구들 중에 재벌가 자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평범한 샐러리맨 친구도 많다.
친구들과 시간이 없어 만나기 힘들면 짬이 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서로 안부를 묻거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기반이 된 밥상머리교육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만난 사람들은 그에 대해 공통적으로 “겸손하다”, “배려심이 많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항상 부하직원에게도 존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새벽 5시에 온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며 하루를 열었다. 이때는 손자인 정의선 부회장도 함께였다. 정 명예회장은 정 부회장에게 평소 이런 말을 했다. “밥상머리교육은 나도 아버지한테 받은 거야.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예절을 생각나는 대로 말씀하셨어.”
정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에 대해 주변에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한다. 그는 “겉보기에 할아버지가 사업에 전념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가족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강조하고 스스로 아기자기한 가족사랑을 실천한 분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란 정 부회장의 ‘가족사랑’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항상 그리운 곳도 바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정 부회장은 가끔 아버지 정몽구 회장과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르곤 한다. 등산은 할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도 매우 즐기던 운동이자 취미생활이었다. 가끔 할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다보면 평상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다. 등산을 하는 시간이 할아버지와 장손자의 대화의 장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은 부친 정몽구 회장과도 함께 산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리기도 한다.
정 부회장은 아버지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고 존중해 준다는 점이다. 일례로 정 부회장이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가서 공부(샌프란시스코대학)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렇고, 공부를 마친 뒤 현지 일본회사(이토추상사)에 취직해서 근무하겠다고 했을 때도 정 회장은 두말없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했다.
정 부회장은 지금도 정 회장이 자신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는 가끔 임원들에게 “간섭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맡겨주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고 책임도 강하게 느낀다”고 토로한다.
물론 잘못이 있을 땐 정 회장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도 듣는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정 부회장이 정 회장에게 보고를 하고 와선 ‘크게 야단을 맞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자식 교육방식을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아내에게도 애들을 너무 감싸지 말라고 부탁하곤 한다. 무엇보다 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절을 모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정 부회장은 가장 싫어한다. 그 역시 정몽구 회장과 같이 있을 때는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정 부회장으로부터 가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영화나 연극 티켓이 그것이다. 정 부회장이 직접 구입해서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것들이다. 좋은 영화나 공연을 보면서 직원들이 정서적인 여유를 갖도록 한 그의 배려가 엿보인다.

선대에서 이어진 현장경영 몸소 실천
1993년 고려대를 졸업한 정 부회장은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과정을 마쳤다. 그 후 뉴욕에 있는 일본계 기업인 이토추상사에서 2년간 근무하며 미국과 일본의 문화를 함께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유학기간 동안 정 부회장은 전공과목인 경영학 외에도 기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덕목을 많이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직원 상하 간 열려 있는 사고방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대화를 하는 그들의 문화는 최단시간에 최대한의 효과를 이뤄내는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곧바로 기업의 경쟁력과 연결된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는 유학기간 동안에도 가능한 한 많은 수입차를 접하며 그들과 현대차를 비교하고 분석했다. 일상생활에서 차를 이용하는 것 외에도 대학시절부터 직접 짐카나(Gymkhana·경주용이 아닌 일반차량 경주종목) 경기에 참가할 정도로 자동차에 애착을 보였다. 가끔 입장료를 내고 일반인도 스피드를 체험할 수 있는 투어링카를 타보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해외 유명 자동차를 접하면서 품질이나 성능 면에서 우리차도 충분히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물림인 듯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랬고 정몽구 회장이 그랬듯이, 정 부회장도 회사 내에서 ‘일벌레’로 통한다. 그는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사무실에 출근한다. 주변에서는 “너무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원래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집안 내력”이라고 말한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역설한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 국내·외에 수시로 출장을 다닌다. 현장을 잘 알아야 올바른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어 받은 것이다. 지난해 유럽재정위기로 유럽 자동차시장의 위기가 증폭되자 정 부회장은 유럽으로 날아가 현지 시장상황을 파악하고 현지 직원들과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울산공장을 비롯한 국내공장과 연구소도 자주 방문했다. 수행원 한두 명만 대동한 채 현장을 둘러보고 공장 가동상황과 신기술 연구현황을 확인했다.
올해만 보더라도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참석해 현대차의 친환경차를 직접 소개했다. 3월에는 중국에 4공장과 5공장 관련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1박2일로 짧게 다녀왔다. 또 4월에는 현대차 중국 4공장 착공식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미국 출장 중 현지공항에서 요즘 유행하는 백팩을 메고 직접 짐을 캐리어에 옮기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사에 업무용 전용기가 있지만 대기시간이 길지 않는 한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현장주의는 평소 정몽구 회장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전에 할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보여준 경영방식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다녔던 고려대 도서관 건설현장에서 공사모를 쓰고 서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는 사업장 순회 중 그룹 산하 스포츠단인 전북현대 축구단, 기아타이거즈 야구단, 현대캐피탈 배구단, 현대모비스 농구단, 현대제철 양궁단 등을 직접 방문하거나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한다.
또 정의선 부회장은 2005년부터 정몽구 회장에 이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아 대한민국 양궁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 그는 종종 선수들을 찾아가 격의없이 식사를 하며 선수단을 격려한다. 선수들에게 블루투스 스피커, 아이패드, 선글라스와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양궁경기가 열릴 때는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인천 서운동 경기장까지 왕복 70㎞ 거리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녔다.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더 발전시키는 데 주력
정 부회장은 외부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한다. 경영진으로는 아직 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외부인사를 만나는 일은 늘 긴장해야 하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주변에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몸가짐은 자신에게 쏠리는 가족과 주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공인(公人)의 위치에 올라있는 자신의 현재를 돌이켜볼 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부담감도 그에게는 있다.
정 부회장은 할아버지가 기업의 오너로, 엄한 상사로, 자상한 선배로 직원들을 대하는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성장했다.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해서도 자동차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부품구매 분야에서부터 일을 배웠다. 부품과 원자재 분야에서 경영수업을 하는 것은 현대가의 오랜 전통이다. 이후 그는 영업, 기획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의 기초를 다졌다. 정몽구 회장이 선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던 코스를 뒤이어 밟은 것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정주영 명예회장, 그리고 정몽구 회장을 꼽는다. 성장과정에서 직접 보고 겪었던 조부와 부친의 성실, 검소,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추진력과 계획성은 경영인으로 자리잡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되고 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을 배우고 더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품질경영’을 제품뿐만 아니라 업무 전반으로 확대시키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업무 품질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더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가의 장손(長孫)으로서 정의선 부회장의 책임감은 강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했을 때 정 부회장은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례행렬의 맨 앞에서 장손의 의무를 다했다. 또 정주영 명예회장의 제사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청운동 할아버지댁으로 달려가 준비상황을 챙기고 끝난 뒤에도 문 앞에서 참석한 친척 모두를 배웅하고 제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