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빨간 점퍼를 입은 이현준(12)군이 처음 보는 기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뒤이어 들어온 여학생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일이 익숙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는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지난 3월31일 오전 8시 기자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보평초등학교를 찾은 이유는 학교와 인근 아파트에서 전에 없던 풍경이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삼삼오오 아이들의 본격적인 등교가 시작되자, 학교를 한 바퀴 순회한 김재열 교장이 정문에 서서 아이들을 맞았다. 김 교장은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지난 2009년 9월 개교한 보평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의 경기도 광주 남한산초등학교를 되살린 서길원 전 교장이 부임하면서 인기 학교로 급부상했다.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로 같은 해 8월 혁신학교로 선정됐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모둠활동, 독서중심교육, 토론수업 등 학생 참여 중심의 교육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학부모들에게 인기다.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서길원 전 교장의 전통을 이어받아 지난해 9월 취임한 김재열 교장도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정문에서 맞고 있다.
바른 인성과 인사성 함양을 강조하는 학교의 교육방침은 지역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사 교육을 철저히 받은 아이들로 인해 어른들까지도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게 됐다.
보평초 학군 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강성웅 연세대 의대 교수(55)는 지난 2013년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머쓱한 경험을 했다. 강 교수가 누군가 먼저 타 있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멀뚱히 있는데 뒤이어 탄 보평초 아이들이 밝게 인사를 하고 들어온 것이다.
강 교수는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평소에 본체만체 하던 어른들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보평초 4학년인 아들을 둔 김성민(45·가명)씨는 “아이가 학교를 다닌 뒤로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어른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며 “주말이면 날 모르는데도 인사하는 보평초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들과 인사하며 상대 부모에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고 했다.
존댓말 문화에 학부모들 안심
보평초 인근 아파트인 백현마을 2단지 경비를 맡고 있는 황영철(71)씨는 “요즘 추세가 어린애들이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안 하는 건데 이 동네는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항상 먼저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 문 앞에서 아이들을 꼭 안아주는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5학년 3반인 이현준군은 “선생님이 아침에 안아주실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문화도 독특하다. 친구를 부를 땐 이름 뒤에 ‘님’을 붙인다. 딸을 보평초에 입학시키기 위해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조현정(41·가명)씨는 “교장 선생님 방침으로 아이들끼리 서로 존댓말을 쓰니 예의도 갖출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왕따도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보평초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창준(53·가명)씨는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에 ‘님’자를 붙이면서 ‘뭐 먹을래요?’, ‘난 떡볶이 먹을래요’라고 존댓말 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며 “집이 근처라면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보평초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보평초등학교의 인기는 개교 이래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보평초 학군인 백현마을 1, 2단지, 봇들마을 7, 8, 9단지의 전셋값(32평형, 44평형 기준)은 최근 2년 새 2억원가량 올랐다. 공립학교 특성상 전학생들을 막을 수 없어 학생수도 늘고 있다. 2010년 1088명이던 전교생 수는 올해 1628명으로 확대됐고, 전학생이 급증한 2012년도에는 13개 학급이 추가됐다. 보평초 관계자는 “지원자가 매년 늘고 있어 현재 한 반 학생수가 32명인 과밀학급 상태”라며 “교육의 질이 떨어질까봐 학부모들이 긍정적인 기사가 언론에 나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