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방대원들이 승강기에 갇혀 있던 승객을 구조하고 있다.
지난 4월25일 경기도 의정부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승강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A씨가 자신의 집을 나서 11층에 도착한 승강기에 올라타는 순간, 문도 닫히지 않은 승강기가 그대로 위로 올라갔다. 승강기 턱에 걸려 넘어진 A씨가 재빨리 몸을 밖으로 빼내어 사고를 면했지만,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A씨는 “어린아이나 노인분이었다면 추락사 같은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것”이라고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가 당한 개문(開門)출발사고는 단순한 안전장비 하나만 설치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승강장 문에 달린 센서와 승강기 도르래의 제동기를 연결하는 장치가 있으면, 승강기 문이 닫히지 않을 경우 승강기는 아예 출발할 수가 없다. 지난 2000년 이 장치를 모든 승강기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시행됐지만, A씨가 사는 아파트의 승강기는 1999년에 설치돼 이 장비가 없는 상태였다. 이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주민 B씨는 “승강기 안전점검을 하면 그런 부분이 다 보완되는 걸로 믿고 있었는데, A씨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강기 사고가 이렇게 노후화된 기종에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최근 승강기 사고는 지역, 건물을 막론하고 빈발하는 추세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고급아파트에 사는 박모(19)씨도 학원을 다녀오던 중 승강기가 멈춰서는 사고를 당했다. 고급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특급호텔에서는 29층에서 내려오던 승강기가 갑자기 추락하다 13층에 멈춰서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승강기에 탔던 투숙객 2명은 “나사가 풀리는 소리가 나며 13층으로 떨어지다 멈춰 섰다. 브레이크 소리가 나면서 멈췄는데 승강기가 추락하는 동안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사고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정작 호텔은 사고가 아닌 고장이었다는 입장이다. 해당 호텔 측은 “당시 승강기는 정상 속도로 하강하다가 일시적으로 정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승강기 사고시 업체는 즉각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 이를 알리고, 원인을 조사받고 점검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이 호텔의 승강기 관리주체인 오티스 측은 사고를 바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호텔 측은 “본사의 수칙대로 대응했고 호텔이 아닌 승강기 관리주체 측이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해야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호텔 관계자는 “승강기 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 매뉴얼에 따라 시설관리부서가 기관에 사고를 보고하는 것이 우선인 게 일반적이고, 점검이 끝나고 안전하다는 승인이 날 때까지는 승강기 운행을 중단하는 게 맞다”고 했다.
승강기 전문가들은 국내 승강기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근 불거지는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박응구 한국엘리베이터협회 기술위원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로 국내 승강기 사업 분야는 오티스(미국), 티센크루프(독일), 미쓰비시(일본) 등 다국적기업으로 매각됐다”며 “이들 업체가 부품을 인건비가 싼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품질 점검, 운행 테스트가 생략돼 승강기 안전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고층빌딩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승강기 사고가 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승강기 안전을 관리하는 기관들은 “사고 통보 의무는 잘 지켜지고 있고 매년 승강기 사고도 감소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승강기 업체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그렇게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측은 “승강기 사고는 2008년 154건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70건으로 매년 감소추세”라고 했지만, 2012년에는 133건으로 전년 대비 36건이 급증하기도 했었다. 또 지난해 서울에서만 승강기 고장 등으로 119 구조대가 출동한 건수가 4300여 건에 달했지만, 정작 관련 기관에 보고된 건은 1000여 건에 불과했다. 현재 정부가 승강기 안전관리를 위한 검사기관으로 지정한 곳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과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두 곳이다. 두 곳 다 동일하게 승강기 관리 및 검사 업무를 맡고 있으며 사고나 고장 발생 시 승강기 관리주체는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 신고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79명이 승강기 사고를 당해 4명이 사망하고 74명이 중상을 입었다. 피해자가 어린아이와 65세 노약자(피해자의 42%)에 집중된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승강기 관리는 선진국 수준 이상”이라며 낙관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은 실시하지 않는 승강기 제조업체·유지관리업체 등록제를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하고 있다”면서 “승강기 안전관리는 철저하게 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호텔에서의 승강기 사고처럼 주요 업체들이 이미지 타격 등을 우려해 사고를 은폐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사고 통보 의무를 어겨도 처벌이 약하니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승강기 제조업체들이 검증절차 없이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서둘러 건물에 설치하다보니 잔 고장이나 큰 사고가 빈번한 상황”이라면서 “승강기 설계·조립·설치 과정을 모두 감리하는 게 맞지만, 업체 대부분이 이를 회피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