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 경제학계 ‘슈퍼스타’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은 로렌스 서머스 전(前) 미국 재무장관(현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삭스 교수를 세계 3대 경제학자라고까지 부른다. 그러나 삭스 교수가 나머지 두 명의 교수보다 업적 면에서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가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성 때문이다. 현재 컬럼비아대에서 지구연구소(The Earth Institute)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삭스 교수는 지속가능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목표를 위해 활동무대를 강단에서 현장으로 넓혔다. <빈곤의 종말>, <커먼 웰스>, <문명의 대가> 등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것과 동시에, 전 세계 저개발 국가를 돌며 부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경제학은 통계기법을 활용한 전망(Forecasting)이 아니라 인류의 공존을 모색하는 수단(Tool)이다.
사회운동가적 기질도 엿보인다. 지난 2011년 월가(街)의 탐욕에 대한 항의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는 선두에 서서 “상위 1%가 부(富)를 독점하는 현 자본주의체제는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18일 ‘지속가능 개발의 시대(The Age of 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 강연회에 앞서 <이코노미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삭스 교수는 비판론자들을 향해 “나는 낙관론자가 아니라,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 긍정론자”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은 부존(賦存)자원 하나 없는 저개발 국가가 어떻게 빈곤을 퇴치했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라면서 “한국의 놀라운 과학기술과 혁신은 지속가능한 개발 시대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하자원 없이 인적자원만으로 성공 대단
북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연구 가치 있어

-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 부(富)의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 부(富)의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프리 삭스 교수와의 대담(對談)을 마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물급 인사인 탓에 방한 기간 동안 중간에 빈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지난 5월17일 저녁에 한국에 도착한 그는 18일 오전에는 유엔 자문그룹인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SDSN) 한국지부 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오후 2시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초청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개발재원회의’에 참석했다. 오후 6시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최하는 대중강연회에 연사로 나섰다. 우리의 당초 인터뷰 약속시간은 이날 오후 1시였다. 이튿날인 19일에는 세계교육포럼과 유엔글로벌컴팩트 코리아 리더스서밋 2015,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이 예정돼 있었다.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밀레니엄개발목표 특별자문관을 맡고 있는 삭스 교수는 행사 중간마다 분(分) 단위로 시간을 쪼개 정부, 학계 관계자들을 만나며 저개발 국가 지원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이번 일정만 이렇게 빡빡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삭스 교수를 수행하는 클레이 벌저(Claire Bulger)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스케줄은 오히려 시간이 넉넉한 편”이라면서 “저개발 국가에 갈 때는 잠잘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낸다”고 말했다. 대담은 삭스 교수의 바쁜 일정 탓에 강연회 직전 잠시 진행됐으며 시간 부족으로 못한 질문은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는 세계 빈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극한의 가난과 기아 퇴치 △초등교육의 확대와 보장 △남녀평등과 여성 권익 신장 △유아 사망률 감소 △임산부 건강 개선 △에이즈, 말라리아 등 질병 퇴치 △지속 가능한 환경 보호 △개발을 위한 전 세계적 협력 구축 등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는 계획대로 올해 마무리되고, 오는 9월 열리는 유엔 정상회의에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17가지 실천 과제로 돼 있는 SDG는 빈곤 퇴치부터 교육 강화, 평등 실현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MDGs의 확대된 개념이다. 이 두 가지 글로벌 어젠다가 마련되는 데는 삭스 교수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 제프리 삭스 교수가 지난 5월18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 강연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제프리 삭스 교수가 지난 5월18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 강연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송창섭 기자(이하 송) : 올해는 유엔이 주도하는 밀레니엄개발목표(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가 마무리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MDGs를 통한 교수님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프리 삭스 교수(이하 삭스) : 저는 밀레니엄개발목표가 극심한 빈곤을 줄이고 기아, 질병 퇴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과 해당국가의 정책적 노력을 이끌어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가난한 소규모 농가 지원 등 빈곤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은 오는 2030년이면 가시화될 겁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재 지속가능발전목표(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 1단계 수립 절차를 9월에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송 : 교수님은 저서 <빈곤의 종말>에서 지구상 빈곤을 2025년까지 끝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도 이것이 가능하리라 보시는지요.

삭스 : 지난 몇 년 간 우리의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은 다소 지체된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주요 선진국들이 공적 개발 원조를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이 SDG 1단계를 통해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에 합의한다면, 오는 2030년 빈곤의 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우리 세대의 극심한 빈곤에 대해 종말을 고하는 것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길 희망합니다.

송 : 제가 보기에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한 국제공조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최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비판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아울러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삭스 : 현재 국제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선진국들(High-income countries)이 소득의 0.7%만 공식적인 개발원조에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이들은 조세피난처를 없애고 법인관련 제도의 남용을 근절하는 데도 소극적이죠. 인류가 저지른 기후변화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것 등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조치들에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식의 구조는 극히 불안정하고 불평등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을 공정, 공평하고 사회통합적인 경제 체제로 이끄는 지속가능 개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물어보셨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AIIB가 아시아 지역 투자와 인프라 확충에 도움을 주는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 정부가 이런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은 공적 기금이 더 높은 차원의 공익을 실천할 수 있는 대담한 계획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AIIB가 환경의 지속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합니다.

송 : 저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지속가능 개발 모델이 마치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참여만을 독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공공 못지않게 민간의 참여를 어떻게 늘리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 개발에 민간이 참여해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역은 없는 것인지 여쭤보고 싶군요.

삭스: 저는 공공과 민간 영역이 조화를 이룬 혼합경제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두 영역 모두 중요하며, 비영리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도 세 번째 영역을 이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오는 2030년 세계 빈곤 종말의 시대 온다”

제프리 삭스 교수가 말하는 오염(Pollution)은 환경적인 개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 부패, 사회적 불평등 등 부조화와 관련된 모든 요소가 총망라돼 있다. 일반적으로 개발경제학에서 빈곤은 저개발 국가의 경제개발을 저해하는 근원적인 요인이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저개발국가 경제성장의 기본 과제다. 이 과정에서 삭스 교수는 “경제성장은 단순히 제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개발에 필요한 모든 역량이 한데 모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 폴 로젠스타인 로댄이 주장한 빅푸시 이론(Big Push Theory)의 신봉자다. 삭스 교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한 국가로 한국을 높이 평가했다. 제대로 된 부존자원 하나 없이 오로지 인적 자원 개발에 사활을 걸어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어버린 좋은 사례다. 그가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는 “고소득자들도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가요.

삭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출신의 제임스 와튼이 개발한 증기엔진은 인류 문명을 너무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문명은 발달했지만 국가간 부의 불평등 또한 심각해졌죠. 여전히 많은 나라들이 빈곤의 덫에 빠져 있습니다. 증기기관이 생겨난 이후 경제 규모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100배나 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 지구가 100배나 커지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은 정치 불안을 만들 겁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자나라들은 기득권 내려놓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송 : “한국의 경험을 다른 개발도상국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삭스 : 지난 1998년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금융위기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패닉 상태였죠. 경제가 패닉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통화당국이 유동성을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국제통화기금(IMF)은 정반대 처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땠습니까. 페드(Fed·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유동성을 보장하겠다고 시장을 안심시켰지 않습니까. 몸에 열이 나더라도 왜 그런지 원인은 다를 수 있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죠.

한국은 우수한 두뇌와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자원 없이 이런 일을 성공한 나라로는 아마 한국이 유일할 겁니다. 당장 보십시오. 지금 삼성과 애플이 경쟁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한국은 녹색경제를 창출하고 빈곤층을 도우며 혁신을 향한 솔루션을 마련하는 데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송 : 그동안 교수님이 주도가 돼 진행됐던 지속가능 성장과 개발(Sustainable Growth & Development) 캠페인에서 한국의 활약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참여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삭스 : 한국은 반세기만에 가난을 딛고 일어서 경제발전을 이뤄낸 성공적인 국가 중 한 곳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이 극심한 빈곤을 끝내고 성공을 이뤄내는 것을 돕는 일에 있어 리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이 가진 경험, 노하우, 기술 그리고 자금 조달 방법 등은 충분히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 기업인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가진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리더십은 아프리카의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낼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폰으로 아프리카 말라리아모기를 퇴치하는 데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동시에 한국 내 산적한 발전 과제를 진행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화석연료에서 풍력, 태양열, 원자력, 수력, 지열, 탄소포획 및 격리기술(CCS) 같은 저탄소 에너지로 바꿔가는 것 말입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 : 안타깝게도, 현재의 한국정부는 전임 정부의 중요 정책기조였던 ‘녹색성장’을 뒤로 미룬 상태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삭스 : 저는 한국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녹색경제에 집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세계 경제는 지속가능한 기술로의 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이 이미 기술 강대국인 만큼 녹색기술 분야에 있어서도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은 한국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겁니다. 한국은 지금도 지속가능 분야의 리더입니다. 특히 정보기술(IT)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선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혁신을 통해 녹색분야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한국은 분명 번영을 이어갈 겁니다. 더군다나 한국은 이미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때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래야만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도 가능하죠. 최근 한·중·일 세 나라 사이가 껄끄럽다고 들었는데요. 동북아 3국은 세계경제의 한 축이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기술 흐름의 측면에서도 그렇죠.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서도 동북아 3국 관계는 중요합니다.

송 : 복지정책 확대는 최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복지 확대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한국 내에서는 복지정책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삭스 : 저는 건강, 교육, 가족 부양, 연금과 같은 복지정책은 현실경제에 기반을 둔 채, 재정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충분히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통합, 사회보험, 아동복지, 경제효율을 위해서도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 : 지난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이론이 화제가 됐습니다. 부의 불균형을 걱정하는 면에서 교수님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요.

삭스 : 제가 몇 년 전 <문명의 대가(The Price of Civilization)>라는 책을 썼는데요. 이 책에는 미국의 심각한 소득, 빈부 격차를 극복할 전략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의 생각이 피케티 교수의 주장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불평등의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빼고는 제 생각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군요. 다만 이러한 소득, 빈부 격차는 효과적인 공정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송 :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교수님의 주장에 부유층의 반발이 클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부자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까요.

삭스 : 저는 공정하고 적합한 방법으로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하며 많은 이들에게  앤드루 카네기, 록펠러,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훌륭한 자선사업을 펼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갈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선사업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또 그렇게 돼야 합니다. 올해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라온 1826명이 7조1000억달러(약 7772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상식적으로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쓸 수 있는 소비를 훨씬 넘어설 겁니다. 부는 공익을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많은 부유층들이 이러한 전략을 채택했으면 합니다. 이는 그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게 될 겁니다.  

1.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유명 경제학자들을 초청한 회의에 참석한 제프리 삭스 교수(맨 왼쪽). 2. 제프리 삭스 교수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가운데)과 손을 잡고 웃고 있다. 3. 제프리 삭스 교수는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밀레니엄개발목표 특별자문관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 jeffsachs.org)
1.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유명 경제학자들을 초청한 회의에 참석한 제프리 삭스 교수(맨 왼쪽).
2. 제프리 삭스 교수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가운데)과 손을 잡고 웃고 있다.
3. 제프리 삭스 교수는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밀레니엄개발목표 특별자문관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 jeffsachs.org)

“미국의 시대 가고, 중국의 시대 온다”

삭스 교수는 미국에서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된다. 미국 주류사회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학문적 노선은  ‘시장경제에는 긍정을, 그러나 시장사회에는 부정’이라는 기조 아래에 있다. 거시경제학자인 삭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 <커먼 웰스(Common Wealth)>에서 미국 중심 시스템의 종말을 예언하면서 “이는 미국 복지의 붕괴가 아니라 아시아의 경제력 증대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자본주의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리라 보십니까. 

삭스 :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테두리 내에서 운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시장의 역할이 사회 통합과 환경의 지속성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북유럽)국가들이 채택한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tic) 모델이 지금으로선 가장 성공적인 경제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 지금 그리스 처리 방식만 봐도 세계 경제 리더십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처럼 리더십이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많은 지구촌 이슈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삭스 : 그리스 사태는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국제 문제 해결보다는 자국 정치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유럽연합 파트너들은 그리스가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더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해결책을 찾으리라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너무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 사이 불필요한 손실이 너무 많아졌죠. 

송 :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경기가 최근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미국이 위기를 잘 이겨낼 거라고 보십니까.

삭스 : 미국 경제는 아직도 공공재에 대한 투자 부족이 심각합니다. 또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극심한 소득으로 인한 빈부격차도 문제입니다. 주요 외교 무대에서 평화를 위한 개발보다 군사적 접근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국 경제가 지속가능 개발이라는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역동적으로 바뀌었다는 데는 동의하고 이 또한 희소식이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죠.

송 : 중국 경제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최근 중국 경제의 변화를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국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는지요.

삭스 : 몇 개의 근거를 토대로 말씀드리면, 중국 경제는 절대치로 봤을 때 미국보다 규모가 큽니다. 중국의 1인당 국내소득 수준이 미국의 4분의 1 정도지만, 중국 인구가 미국보다 4배 정도 많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저는 중국 경제가 금융시장 규제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굉장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국회사, 과학자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가진 혁신 역량을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앞으로 이는 중국이 해외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내부 혁신에 기반을 둔 내적 발전을 이뤄내는 데 중요 동인(動因)이 될 겁니다. 중국은 이미 해외 주요 나라에 자금을 투자했고 이는 몇 년 후 중국 경제가 더 나가도록 하는 추진력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1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제프리 삭스 교수 초청 특별강연회’에는 1000여 명의 청중이 몰리는 등 성황을 이뤘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에서 삭스 교수는 “지구를 파괴하면서 얻는 대가가 아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대가 없는 짓을 하는가”라며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은 양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Korea) 대표가 청중들로부터 사전질문을 받아 삭스 교수에게 묻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자신을 가리켜 낙관론자, 이상론자라고 부르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삭스 교수가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었다.

“43년 전인 1972년 경제학이 마냥 좋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반문한 것이 ‘왜 아직도 일부 지역은 가난하고 평등하지 않은가’였습니다. 굉장히 풀기 어려운 문제였죠. 지금까지 제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은 사람을 돕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제 아내(소니아 삭스)가 소아과 의사인 데요. 함께 살면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아픈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세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단순하지 않죠. 제가 말하는 것은 냉소가 아닙니다. 냉소와 비판은 엄연히 다른 겁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하십시오. 여러분께 진심으로 이 점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2시간 넘게 그의 강연을 듣던 청중들이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지 느껴서였을까. 타이핑을 하던 기자의 손은 어느 순간 컴퓨터 자판에서 떨어져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1. 물 부족 문제에 처한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해 실태를 살펴보고 있는 제프리 삭스 교수. (사진 : jeffsachs.org)2. 한국고등교육재단 강연 직후 송창섭 기자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는 제프리 삭스 교수. (사진 : 송창섭)
1. 물 부족 문제에 처한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해 실태를 살펴보고 있는 제프리 삭스 교수. (사진 : jeffsachs.org)
2. 한국고등교육재단 강연 직후 송창섭 기자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는 제프리 삭스 교수. (사진 : 송창섭) 

- 제프리 삭스 교수는 “정보기술 분야 리더인 한국은 녹색기술 분야에서도 선도적 위치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제프리 삭스 교수는 “정보기술 분야 리더인 한국은 녹색기술 분야에서도 선도적 위치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제프리 삭스 교수는…
1954년 생. 1976년 하버드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한 뒤 1980년 동(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29세 나이에 당시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에 오른 삭스 교수는 지난 2002년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5년 이상 미국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각국 정부에게 경제 전략에 대한 조언을 해 왔다. 

<뉴욕타임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뽑혔으며 지난 1994년을 비롯, 두 번에 걸쳐 <타임>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에 선정됐다. 삭스 교수는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으로 활동하며 저개발국가 빈곤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빈곤의 종말>(2006년), <커먼 웰스>(2009년), <문명의 대가>(2012년) 등이 있으며, 지난 3월 미국에서 신간 <지속가능 개발의 시대>를 발간했다.

 

취재 지원 = 양지윤·정은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