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책의 소중함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한다. 좋은 책은 지식을 풍부히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성숙한 인격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책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중기획으로 다룬다. - 기획취재팀

‘책’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라고 나와 있다. 책 한 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찮은 노력이 담겨 있다. ‘한 줄’의 설명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책 만드는 일을 평생 업으로 하고 있는 연준혁 위즈덤하우스 대표(52)에게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몇 시간의 인터뷰를 통한 글로 책 만드는 일을 재단(裁斷)하기엔 모자람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무실 책장에는 예상대로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집에 책이 이곳보다 한 10배 정도 있습니다. 큰 서재가 하나 있는데 벽마다 돌아가면서 책장을 만들어놨죠. 사실 제가 취미가 별로 없습니다. 시간 나면 책 보는 게 일이고, 무슨 책 낼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책을 평생 끼고 살았죠. 제가 사실 많이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외부인들 만나는 자리도 가급적 피합니다. 인터뷰도 거의 안 했어요.(웃음)”

‘100년 가는 출판사’가 모토
위즈덤하우스는 ‘100년 가는 출판사’를 모토로 하고 있다. 1999년 ‘예담출판사’로 시작해 꾸준히 연간 200종 이상의 책을 내고 있으니 창업 이후 지난 15년 가까운 동안 2000종이 넘는 책들을 만들어온 셈이다. ‘위즈덤하우스’ 브랜드를 만든 것은 2000년이다. 현재 예담과 위즈덤하우스, 크게 두 개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역사책 브랜드인 ‘역사의 아침’, 자녀교육서를 내는 ‘예담프렌드’ 등 여러 서브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2003년부터 위즈덤하우스에서 기획위원으로 일해 온 연 대표는 <입사 후 3년>,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등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고 2010년 4월부터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출판사 대표로서 다양한 분야의 책에 대해 두루 조예가 깊지만, 연 대표가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역사책이다. 역사(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전공하기도 한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역사책을 읽어왔다. 연 대표는 “우리나라에 개인 자서전이나 인물 이야기 시장이 작은 것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위즈덤하우스에서는 역사책도 매월 한 권 정도씩 꾸준히 내고 있다. 그는 친일파 독립운동가 ‘윤치호’를 관심 있는 역사 속 인물로 꼽기도 했다.

“저는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에게는 사실 큰 흥미를 느끼지 않고요. 자기 고민이 많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이들에게 관심이 갑니다. 이 사람이 이 시절에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사람들에게요. 예를 들면 윤치호 같은 사람인데요. 이 분이 한국 기독교 초창기 개화파 지식인이었는데 나중에 친일로 전향합니다. 대표적인 친일파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죠. 하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친일하는 것에 대해 매우 고뇌했어요. 단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 아닌 조선의 살 길에 대해 고민하면서 친일을 했거든요. 이 분이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중국과 미국으로 망명, 유학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미국사회를 경험하면서 인종차별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서 반미감정을 갖게 된 부분도 있었고,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의 힘을 기르자는 차원에서 친일을 한 거예요. 해방이 되니까 결국 자살을 합니다. 일본이 더 오래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망하는 것을 보고 자괴감이 든 거죠. 적어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친일파였던 겁니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친일을 했던 인물들과는 부류가 다른 인물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기고민이 많았던 인물들에게 관심이 가요.”

- 연준혁 대표의 사무실 책장에는 예상대로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는 “시간 나면 책 보는 게 일이고, 무슨 책 낼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책을 평생 끼고 살았다”며 웃었다.
- 연준혁 대표의 사무실 책장에는 예상대로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는 “시간 나면 책 보는 게 일이고, 무슨 책 낼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책을 평생 끼고 살았다”며 웃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 250만부 팔려나가
위즈덤하우스의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미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윤태호 작가가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웹툰을 엮어 낸 <미생>은 tvN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더 큰 화제를 불러왔다. 이미 100만부가 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던 이 책은 드라마 방영 이후 150만부가 더 나가며 현재까지 총 250만부나 팔려 나갔다.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고나서 소장용으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 대표는 “드라마 방영하는 동안에만 100만부가 나갔는데, 우리가 100만부 나가는 책을 여러 개 만들긴 했지만 일 년에 걸쳐 꾸준히 나갔던 것이지 이처럼 단기간에 나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위즈덤하우스는 앞으로 출판시장의 주요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만화 분야에도 계속 주력할 계획이다. 그간에도 <미생> 뿐 아니라 허영만의 <꼴>, <부자사전> 등 여러 베스트셀러 만화를 낸 바 있다. 연 대표는 “<신의 물방울>이 많이 나갔던 이유를 분석해 보니 꼭 필요한 실용적 정보를 만화와 결합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실용만화’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그런 차원에서 <꼴>을 기획한 것인데 그 책도 100만부 이상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 중 하나가 관상인데 책으로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보니까 이걸 만화로 표현하면 분명히 독자 수요가 있겠구나, 판단했죠. 그때 우리가 유명한 관상가를 섭외해서 허영만 선생님이 관상을 직접 공부해 가면서 그리셨습니다. 최근에 낸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도 바로 그런 실용만화의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고요.”

종이보다는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가 익숙해진 요즘 출판업계는 유지하기가 어려운 시장이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온 위즈덤하우스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매출을 기록 중이다. 연 대표는 “지난 해 매출이 230억원가량이었는데 단행본 출판사로 따지면 2등 정도 된다”며 “출판사들이 요새 다들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우리 회사의 강점은 바로 기획력에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력은 하루아침에 나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직원들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죠. 저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독자의 피드백, 편집자의 시각, 출판사의 시각, 마케터의 시각 이런 것들을 저자들에게 계속 제공하면서 원고가 좀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출판사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래야만 저자들의 가치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저자들이 준 원고를 예쁘게 편집해서 내는 게 출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정통 문학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출판사가 저자가 준 글을 책으로 잘 만들면 되는 거지, 내용에 토씨 하나 붙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는 그런 저자들보다는 우리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는 저자들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즈덤하우스의 방침 중 하나는 저자들과 편집자들이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교류를 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위즈덤하우스의 직원들이 근속연수가 긴 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 대표는 “회사가 15년 되었는데 총 85명 직원 중에 10년차 넘는 직원이 12명이다. 자랑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출판사 가운데 근속연수가 비교적 긴 편”이라고 말했다.(웃음)

“저자들이 한번 위즈덤하우스와 인연을 맺으면 담당 편집자가 바뀌지 않고 계속 간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책 낼 때마다 편집자가 바뀌어서 좀 친해지고 대화가 될 만하면 그만둬 버린다고 저자들이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는 저자들과 에디터십(editorship)을 함께 만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직원들을 오래 다니게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직원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회사에 오래 다니게 하려면 회사에 애정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면 한 사람의 에디터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에디터가 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제공하는 최고의 가치라 생각합니다. 물론 동시에 직원들을 굉장히 인간적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하죠. 우리 회사는 55세 정년제를 못 박았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을 정리해고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죠. 궁극적으로 출판사로서 100년이 가려면 직원들도 오래 가야 생명력을 갖고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획, 그 다음은 제목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선 ‘제목’의 힘도 대단하다. 연 대표는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고, 그 다음은 제목이다. 좋은 제목을 뽑기 위해선 젖 먹던 힘까지 내려고 애를 쓴다”며 웃었다.

“내용이 정말 좋은데 제목이 성실하지 않아서 팔리지 않은 책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베스트셀러들은 일단 제목으로 독자들 시선을 끌어야 합니다. 초기에 헤비독자(책을 많이 보는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보다가 추천을 하게 되면 이후엔 탄력을 받게 되죠. 하지만 제목만 좋으면 ‘이건 낚시용 책이네’ 하면서 바로 관심권 밖으로 사라집니다. 제목과 내용이 모두 좋아야 하는 겁니다. 어느 정도 책이 나갈지는 한 달 안에 감이 옵니다. 마케팅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출액의 10%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씁니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의 영향력이 커져서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에 올라가는 게 광고 이상으로 영향이 크거든요. 메인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한 번에 세 권씩, 일주일에 두 번 바뀌니까 여섯 권 정도입니다. 한 달에 서른 권, 일 년에 딱 300권이에요. 그래서 출판사간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또 예전에는 신문광고를 많이 했는데 요새는 효과가 떨어져서 모바일이나 웹광고 쪽으로 많이 합니다. 또 광고보다는 홍보의 역할이 매우 커졌어요. 예전에 한가인 씨가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읽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 방송에서 언급하면서 이 책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건 의도치 않은 결과였지만, 이렇게 방송이나 블로그를 통해 유명인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언급하는 것이 대단한 홍보효과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연준혁 대표는 언젠가 ‘꽃과 서점’을 결합한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평생 책을 만들며 책내음을 맡아온 그와 꽃향기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워낙 식물을 좋아해요. 한쪽에는 꽃집, 한쪽에는 서점 이렇게 꾸미고 커피도 팔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요, 하하. 거기 오는 분들에게 제가 좋은 책을 추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이가 둘인데 학교에서 무슨 과제를 받아오거나 고민이 있을 때 저한테 찾아오면 제가 책으로 솔루션을 주거든요. 제가 직접 멘토링을 할 만한 역량은 부족하지만 고민이 생겼을 때 좋은 책을 찾도록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 연준혁 대표는…
1963년생, 1990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 1999년 2월 웅진미디어 개발팀장, 2000년 8월 한솔교육 뉴미디어연구소 개발부장, 2002년 1월 북토피아 개발이사, 2003년 7월 위즈덤하우스 기획실장, 2010년 4월~현재 위즈덤하우스 대표이사.

 

[출판사에서 빵을 판다고?]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베이커리 편집숍 ‘자도랭킹샵’

- ‘자도(ZADO)랭킹샵’은 맛있다고 소문난 빵, 케이크를 모아 판매하는 일종의 ‘베이커리 편집숍’이다.
- ‘자도(ZADO)랭킹샵’은 맛있다고 소문난 빵, 케이크를 모아 판매하는 일종의 ‘베이커리 편집숍’이다.

위즈덤하우스는 꽤 재미있는 ‘외식사업’으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출판사 시장이 위축되면서 신규사업에 눈을 돌리던 중 떠올린 아이디어다. 지난해 6월 1호점인 서울 합정동에 낸 빨간책방 카페에 빵과 케이크를 팔면서 인기를 끌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지난 2월 문을 연 신림동 2호점을 ‘자도(ZADO)랭킹샵’으로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자연의 길’을 뜻하는 ‘자도(自道)’를 영문으로 표기한 이름이다. 빨간책방 카페는 인터넷 팟캐스트인 ‘이동진의 빨간책방’ 스튜디오 겸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2호점은 장안에 맛있다고 소문난 빵, 케이크를 모아 판매하는 일종의 ‘베이커리 편집숍’이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옷을 모아 판매하는 편집숍처럼 서로 다른 빵집의 맛있는 빵들만을 모아 판다는 개념이다.

전설의 크림빵집 만나역(신촌역), 강남 3대 빵집 중 하나인 노아베이커리,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로 유명한 라틀리에 모니크, 대학로 맛집 함무바라 고로케 등 품목에 따라 한정 판매하고 있다. 연준혁 대표는 “처음에 빨간책방 카페를 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 빵을 팔아보다가 빵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2호점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직원과 일반인 등으로 구성된 시식단이 꼼꼼히 맛을 검증하고 있다. 현재 매출이 크게 상승하고 있어서 위즈덤하우스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