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17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제3회 중국추계국제차산업박람회.
- 지난해 10월17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제3회 중국추계국제차산업박람회.

“흐차(喝茶·차 드세요).” 치파오(旗袍·몸에 달라붙는 전통 중국의상)를 입은 중국 꾸냥(姑娘·아가씨)의 매혹적인 소리가 커다란 홀 여기저기서 울리며 메아리쳤다. 지난해 10월17일부터 닷새 동안 중국 칭다오(島) 국제회의센터에서 제3회 중국추계국제차산업박람회(中國秋季國際茶産業博覽會)가 열렸다. 박람회는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방문한 외빈과 더불어 칭다오 시민의 열렬한 참여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산동성(山東省) 칭다오는 중국 차재배지의 북방한계선이다. 동경 124도, 북위 36도에 위치한 칭다오는 한국 군산의 기후와 비슷하다. 칭다오의 차 재배지는 라오산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다. 도교의 성지로 유명한 칭다오의 라오산(山)은 ‘해상제일명산(海上第一名山)’으로 불린다. 칭다오 동북쪽 라오산구((山區)에 있는 라오산에 오르면, 곳곳에서 푸른 차밭과 바다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라오산의 찻잎은 독특한 풍미가 있다. 라오산의 녹차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 쌉쌀한 맛으로 유명하다.

라오산차는 라오산에 머물던 도교 도사들이 2000여 년 전부터 차를 직접 재배해 마셨다는 데서 유래한다. 오래된 차나무인 고차수(古茶樹)가 더러 있기도 하다. 1950년대 남방의 녹차를 들여와 라오산에 심었지만 기후 부적응과 기술부족으로 실패했다. 5만 그루의 차나무를 심었는데 2년 만에 1만 그루도 안 남고 다 죽었다. 냉해에 견디는 품종개발과 지구온난화 덕분에 1990년대 와서야 대량재배에 성공하면서 라오산의 녹차는 유명해졌다.

해풍(海風)을 머금은 라오산의 찻잎으로 만든 녹차와 홍차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차가 됐다. 이제는 시중에서 수많은 가짜 틈에서 진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칭다오의 특산품이 된 라오산차를 차박람회장에서 구입하는 것도 현명해 보인다. 그런데 차박람회장의 주차장과 입구에서 차를 사라는 호객행위가 눈에 띄었다. 그들이 파는 차는 대부분 짝퉁이거나 진품이어도 장물일 확률이 높다.

명차가 된 라오산차
차박람회장 입구에는 신라시대의 포석정(鮑石亭)을 연상하게 하는 곡수거(曲水渠·구불구불하고 굴곡진 물도랑)가 설치돼 있었다. 곡수거 뒤편에는 곡수유상(曲水流觴)과 금도차운(琴島茶韻)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다. 곡수유상은 서기 353년 3월3일 중국의 절강성 회계산(會稽山) 북쪽에 란정(蘭亭)이란 정자에 당시 명필로 유명한 중국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등 명사 41인이 모여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잔이 자신의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는 놀이를 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원래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 불렀다. 잔이 자기 자리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석 잔의 벌주를 마셨다 한다. 술잔 대신 찻잔이 흘러왔지만 차를 색다르게 즐겨보자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곡수유상과 나란히 쓰여 있는 금도차운에서 금도는 칭다오 앞바다의 섬 샤오칭다오(小島)와 관련 있다. 섬이 아닌 칭다오가 지명에 섬을 뜻하는 도(島)자를 쓰게 된 것은 샤오칭다오(小島)가 있기 때문이다. 샤오칭다오는 비파 모양을 닮은 까닭에 비파 금(琴)자를 써서 칭다오의 애칭으로 금도를 쓴 것이다. 10여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샤오칭다오는 해안에서 불과 720m 떨어져 있다. 금도의 중국어 발음도 칭다오와 비슷한 ‘친다오’로 읽힌다.

보잘것없는 어촌이었던 칭다오는 청나라 때 세관이 세워지면서 무역이 발전했다. 칭다오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청나라는 1871년부터 북양함대(北洋艦隊)를 창설하면서 이곳에 해군 보급기지와 요새를 설치했다. 그 역사와 전통 속에 오늘도 칭다오에는 중국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북해함대 사령부가 있다. 칭다오는 중국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의 모항(母港)이기도 하다.

국력이 쇠한 청나라 말기에는 독일 정부가 자국 선교사 피살사건을 구실로 1897년 군대를 급파해 샤오칭다오를 교두보 삼아 칭다오를 점령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지은 것이 맥주 공장이었다. 칭다오에 눈독을 들여온 일본은 1914년 11월 독일을 몰아내고 칭다오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독일이 세운 맥주 공장에 일본 맥주공법을 더해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가 바로 칭다오맥주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칭다오의 차보다 칭다오맥주의 고향으로 이미 유명한 칭다오의 근대사는 맥주거품처럼 마냥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차박람회장은 2만6200㎡에 1500개가 넘는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칭다오에 있는 차생산자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참여한 차창(茶廠)과 차상(茶商)들이 전시한 차를 보러온 관람객으로 주전시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또 다른 층의 전시장에는 자사호(紫沙壺)와 홍목(紅木)으로 만든 차탁과 대·소도구들이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한국 부스에는 도자기로 만든 찻잔과 다구를 전시한 청봉요가 있었다. 중국인 부인의 이름으로 참석한 한국인 1명을 제외하고 순수 한국팀은 아쉽게도 청봉요뿐이었다.

(상) 관람객들이 구불구불한 물도랑을 따라 흐르는 찻잔을 바라보고 있다. (하) 라오산의 차밭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해풍을 맞고 자라 쓴맛이 특징이다.
(상) 관람객들이 구불구불한 물도랑을 따라 흐르는 찻잔을 바라보고 있다. 
(하) 라오산의 차밭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해풍을 맞고 자라 쓴맛이 특징이다.

건창보관 창시자 천궈이 선생도 만나
차박람회 이벤트홀에는 주최측이 무대와 대형 LED스크린을 설치해 다양한 차 관련 행사를 수시로 열어 관람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를 상시 시음할 수 있게 해 입과 몸을 즐겁게 해줬다.

마침 이벤트 홀에서는 보이차 건창(乾倉)보관의 창시자인 천궈이(陳國義) 선생이 자사호를 다루는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설명과 시연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을 낯선 칭다오에서 보니 무척 반가웠다. 천궈이 선생은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으로, 보이차 보관에 있어 혁명적인 발상과 기법인 건창보관을 처음으로 고안해내 이를 통해 거부가 된 사람이다.

천궈이는 1948년 광동성 차오산(潮汕) 출생으로 외항선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찌감치 홍콩으로 건너와 살았다. 140년 전통의 윤활유 전문회사인 영국 로콜(ROCOL)의 홍콩지역 독점대리상을 하면서 제법 큰돈을 만졌다. 돈벌이는 좋았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찾다가 내린 결론이 차(茶)였다. 생태계를 오염시키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1988년 다예낙원(茶藝樂園) 차판매점을 설립해 차 세계에 첫발을 디딘 천궈이에게 1993년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보이생차를 팔지 못하고 애태우던 맹해차창 영업대표인 천장(陳江)을 만나 윈난(雲南)에서 보관 중인 30톤가량의 보이생차를 헐값에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궈이는 당시에 유행하던 습한 창고에 보이차를 보관하지 않고 건조한 환경에서 보관하며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보이차를 익히고 숙성시키는 선진기법이 다양하게 개발됐지만 1990년대의 보이차는 후덥지근한 창고에 쌓아놓았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습기에 노출되는 습창(濕倉)이 대세였다. 습창에 보관된 차에 비해 깔끔하고 맑은 차에 매료당한 차상과 소비자의 주문이 천궈이에게 밀려들었다.

건창보관의 창시자가 된 천궈이는 자신이 구매한 보이차에 ‘88청병’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88은 중국어 발음으로 돈을 번다는 뜻과 유사해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다. 게다가 1988년은 천궈이가 처음 차 사업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88청병’의 등장으로 보이차 업계에서 보관방법의 혁신이 일어났다. 습창보관에 익숙한 상인들이 가격에서 우대를 받는 건창보관을 한 보이차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보이차의 품질과 맛을 결정하는 3대 요소 중 하나인 보관법은 건창보관인 ‘88청병’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정도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차 중에서도 ‘88청병’이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귀하신 몸으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건창에서 보관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천궈이가 구매한 ‘88청병’은 대략 8만4000편이다. 구입가격이 편당 1000원도 안 된 ‘88청병’의 요즘 가격은 600만원 이상이다. 23년 동안 가격이 6000배 이상 올랐다. 그가 거부가 안 됐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 보이차 건창보관의 창시자인 천궈이 선생이 88청병 시음회를 열고 있다.
- 보이차 건창보관의 창시자인 천궈이 선생이 88청병 시음회를 열고 있다.

바닷가에 인접한 라오산차밭
천궈이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차박람회장의 규모와 행사내용을 파악한 필자는 칭다오 현지 다원(茶園)의 생태환경과 차창 운영이 궁금해 라오산으로 향했다. 차박람회장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샤오양춘(曉陽春)차창을 방문했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잘 포장된 산길은 윈난의 차산 탐방에 비하면 안락함 그 자체였다.

칭다오 차산업단지에 있는 차창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보이차를 제외한 백차, 녹차, 황차, 청차, 홍차를 모두 만든다. 가을 차를 소량만 가공하고 있는 차창은 다소 썰렁했다. 해지기 전에 다원을 보기 위해 서둘러 차창을 나와 라오산을 향했다.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초를 구하러 라오산에 보낸 서복(徐福)처럼 부지런히 산길을 올랐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흙보다 바위가 많은 라오산의 기암괴석 사이로 차밭이 보였다. 차밭은 바닷가에 인접해 라오산차의 강하고 쓴맛의 원인이 되는 서해의 드센 해풍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바다와 바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펼쳐진 차밭은 신선한 볼거리였다. 라오산의 차밭은 밭고랑 사이에 배추를 심어 함께 경작하는 곳이 많다. 시원하게 펼쳐진 다른 지역의 대규모 다원과는 달리 라오산의 차밭은 척박한 화전처럼 짧은 차밭이 올망졸망 흩어져 있다. 드넓은 차밭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일수도 있겠지만 산자락과 해안선을 따라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푸른 차밭의 색다른 풍광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다음 날 다시 찾은 차박람회장은 주말답게 더욱 많아진 인파로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과의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한국에서 온 관람객도 의외로 많았다. 차 박람회가 열린 칭다오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면 칭다오류팅국제공항(島流亭國際機場)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또 하루 60편에 이르는 편리한 비행기 스케줄 덕에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칭다오국제차박람회를 3년째 주관하는 양원바오(楊文標) 총재는 40대 초반의 젊고 패기에 찬 경영인이다. 중국에서 연간 10개의 국제차박람회를 총괄하는 그는 한국 차와 차 도구를 차박람회를 통해 적극 알리고 싶은 포부를 밝혔다. 한류의 열풍과 더불어 한국의 차 산업이 대륙에서도 꽃피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