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바이오사업이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LED 등 5대 신수종 사업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와 모바일에 이은 제3의 바이오 신화를 만들 수 있을까.
-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바이오 의약품의 성분을 분석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바이오 의약품의 성분을 분석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생산현장을 찾은 것은 지난 6월11일. 차로 서울에서 1시간가량 걸렸다. 송도의 신흥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5공구에 들어서자 우뚝 솟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삼성그룹의 바이오사업의 전진기지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있는 곳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1년 5월 3400억원을 들여 제1공장 착공에 들어가 지난 2013년 12월 완공했다. 이어 2013년 10월부터 7000억원을 들여 제2공장 건립을 시작, 지난 4월 완공했다. 1·2공장을 합치면 배양액 용량 기준 18만ℓ 규모다. 국내 최대 시설이면서 전 세계적으론 3위에 해당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3월부터 세계적인 제약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로슈로부터 위탁받은 바이오시밀러를 1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2공장은 ‘밸리데이션’이 진행 중이다. 밸리데이션은 공정과 기계설비시스템 등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검증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과정으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합성의약품이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라면 바이오약품은 비행기 제조에 비유될 정도다.

제2공장의 생산시설은 유리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바이오의약품은 위생이 중요한 만큼 생산시설을 직접 둘러보긴 어렵다. 그래도 삼성전자의 가상현실기기인 기어VR가 준비돼 있어 실제 현장을 보는 듯 했다. 손을 뻗으면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미세먼지가 완전히 제거된 내부에선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위생복으로 몸을 감싼 직원들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거대한 맥주 양조탱크를 닮은 대형 용기 10대가 일렬로 서 있었다. 세포를 배양하는 1만5000ℓ짜리 세포배양기다. 배양기에 연결된 크고 작은 파이프는 모두 1~2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안내를 맡은 윤호열 바이오로직스 사업운영팀장(상무)은 “배양액, 원료 등이 고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울어져 있다”며 “보통 시설보다 2배 이상 효율이 높은 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배양이 끝나면 세포에서 항체만 따로 분리한다. 1만5000ℓ에서 분리된 단백질 항체는 15kg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단백질 항체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램(g) 당 가격이 적게는 5000달러에서 최대 12만 달러에 달한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맡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분 90.3%)가 미국 바이오젠 아이덱(9.7%)과 합작해 만든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R&D) 전문회사다. 전체 직원의 90%가 R&D 인력이며, 이 중 58%가 석·박사급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엔브렐, 레미케이드, 허셉틴, 휴미라, 란투스 등 5개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유럽의약품감독국(EMA)에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SB4’ 허가신청서를 낸 데 이어 올 1월에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인 ‘SB2’ 허가신청서도 제출했다. 다른 회사에서 통상 4~5년 걸리는 기간을 1년 이상 단축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당뇨치료제 란투스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 ‘SB9’의 임상시험을 끝내고 이르면 오는 11월 EMA에 판매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란투스는 당뇨치료제 시장에서 블록버스터급으로 통하는 약품으로, 지난해 84억 달러(약 9조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의약품 판매 규모로 세계 2위다. 삼성이 허가를 받으면 당뇨치료제 바이오시밀러로는 세계 최초다. 나머지 제품은 막바지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두 개 이상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허가를 미국 또는 유럽에 신청한 곳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일하다. 양철보 삼성바이오에피스 상무는 “휴미라(류머티즘 치료제)와 허셉틴(유방암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도 내년에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에피스가 가장 세심하게 들여다본 부분은 시장성이다. 매년 연구개발 비용으로만 수조원을 쏟아 붓는 글로벌 제약사와 맞대결해서는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양 상무는 “연간 매출액이 30억 달러 이상인 바이오의약품을 타깃으로 했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갖고 있는 주요 바이오신약의 특허 기간이 끝나는 때를 감안해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글로벌 판로도 이미 확보했다.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머크가 140여개국의 유통·판매를 맡고 있다.

1. 윤호열 상무가 제2공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 양철보 상무는 “경쟁사보다 늦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상용화 단계에서는 오히려 앞서가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오장환)
1. 윤호열 상무가 제2공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 양철보 상무는 “경쟁사보다 늦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상용화 단계에서는 오히려 앞서가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오장환)

공장 조감도로 글로벌 제약사 위탁생산 유치
전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19년까지 550억 달러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한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 육성에 나선 것은 2011년 그룹 차원에서 5대 신수종 사업을 선정하면서부터다. 삼성은 2010년 5월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LED(발광다이오드)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삼성은 바이오의약품 분야에는 2020년까지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해 연매출 1조8000억원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바이오로직스(의약품 생산), 바이오에피스(의약품 개발)를 설립하며 바이오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성의 바이오 사업 진출 준비는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이 그룹 차원의 신수종사업을 찾기 위해 꾸려진 태스크포스(TF)에서 바이오 사업을 검토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로 TF가 해체되면서 무산됐다. 이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바이오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으며, 2009년 삼성전자 신사업팀에서 이를 확정했다. 2010년 각 계열사에서 차출한 전문 인력들로 ‘신사업추진단’을 꾸린 것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로 이어졌다.

삼성의 바이오사업에는 그룹 내의 모든 역량이 집결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의 청정·집진·무균시설과 부산물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유지·관리해 온 노하우가 바이오시밀러 생산공장에 그대로 접목됐다. 생산공장 건설에는 삼성종합기술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정밀화학 등 그룹 내 계열사들의 공조 체제가 힘을 보탰다.

윤호열 상무는 “반도체 공장의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5~7년 걸리는 공장 건설기간을 3년으로 단축했으며, 비용도 절반으로 줄였다”며 “반도체 수율을 최대화하는 양산 노하우가 결합돼 생산능력과 품질시스템도 업계 최고 수준을 갖추게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능력은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공장에서 생산된 바이오시밀러를 검증한 글로벌 제약사의 고위임원이 “삼성이 일찍부터 제약사업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적인 제약사인 BMS·로슈와 장기 생산 계약을 맺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젠, 머크 등과 제휴를 체결한 상태다. 하지만 삼성이 바이오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누구도 삼성과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이오로직스는 위탁생산 전문업체로 승부한다는 전략이었던 만큼 글로벌 제약사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공장이 완공되기 전인 2013년 1월부터 10개월 동안 ‘영업본부장’을 자임한 김태한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미국 출장 횟수만 15차례에 달한다. 1주일에 2차례 방문한 적도 있었다.

윤 상무의 회상이다. “공장을 짓기 전이었으니 조감도를 들고 가 영업을 했습니다. 다들 우리의 첫 번째 고객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고생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금요일에 연락을 받고 월요일에 출국해 2시간 미팅을 하고 돌아왔는데, 다시 오라고 해 바로 간 적도 있었죠. 그 해 설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추석은 하와이에서 보냈습니다. 하와이에서 정장 차림은 저희밖에 없었어요.(웃음)”

글로벌 제약사가 공장을 방문해 생산능력과 품질관리시스템을 본 후 협의는 급속도로 진행됐다. 실제 생산결과를 리뷰하는 미팅에서 글로벌 제약사는 딱 한마디를 던졌다. “베스트(Best)!”.

사업 경험이 전무한 탓에 외부에선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바이오 부문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였다. 바이오로직스는 해외 우수 인재 영입을 통해 이를 불식시켰다. 생산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규성 부사장은 BMS와 머크를 거쳤고, 로널드 마르체사니 품질본부장은 40년 경력의 바이오신약 전문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성공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전 임직원이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영입한 인력들도 삼성의 문화에 동화돼 야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칸막이 없이 탁 트인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품질은 모두의 책임’, ‘품질은 나로부터 시작’ 이라는 현수막에서 품질에 대한 열정이 엿보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노바티스 등 경쟁사보다 3~4년 늦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허가신청 등의 상용화 단계에서는 오히려 앞서가는 저력(底力)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초스피드 임상시험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제네릭(복제약)과 달리 1차, 3차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임상 1상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품 체내 흡수·분포·대사·배설 등을 관찰하는 시험이다. 임상 3상에서는 기존 치료제와의 동등성과 부작용 여부 등을 확인한다. 이러한 임상시험은 주로 러시아, 체코, 우크라이나, 인도 등지에서 이뤄졌다. 이들 지역에서 원활한 임상시험을 위해 직접 발로 뛴 이들이 있었다. 바로 8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임상팀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할 병원과 의료진에게 협조를 구하고 임상계획을 짰다. 유능한 의사를 10분 만나기 위해 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예사였다. 이들 덕분에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글로벌 제약사들을 따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룹의 탄탄한 자금력도 한몫했다.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건설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프로젝트별로 2000억~2500억원이 들어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프로젝트 5개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재용 부회장 바이오에 가장 공 들여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바이오다. 2013년 4월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이 삼성을 찾았을 때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을 대표해 그를 맞았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이 머크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다”며 삼성의 바이오 사업 역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2014년 2월, 삼성과 머크는 바이오시밀러 공동 개발 및 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에는 스위스 바젤 출장길에 삼성과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다국적 제약사 로슈의 제베린 슈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3월 중국 하이난(海南)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선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삼성은 정보기술(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까지 바이오의약품 분야 세계 1위 CMO(의약품위탁생산업체)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 삼성의 바이오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바이오시밀러]

원조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을 말한다. 일반적인 의약품은 화학적으로 복제해 원조약과 복제약 성분이 100% 똑같다. 하지만 바이오의약품은 생물학적 반응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원조약과 복제약 성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시밀러(similar)’라고 한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신약을 복제해 동등한 품질로 만든다.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개발 기간이 절반 이상 짧고, 효능은 오리지널과 같지만 가격이 싼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