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일 전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오른쪽)와 사파르미랏 오라즈미라도프 투르크메니스탄 산업부장관이 지난 4월13일 오후 청와대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철강 생산 플랜트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전병일 전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오른쪽)와 사파르미랏 오라즈미라도프 투르크메니스탄 산업부장관이 지난 4월13일 오후 청와대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철강 생산 플랜트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6월 초 발생한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 간 갈등을 놓고 뒷말이 여전히 무성하다. 계열사 대표가 그룹 경영진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국내 기업 정서 상 이례적인 일이다. 

포스코가 임원 두 사람을 인사조치하고,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자진사퇴하는 선에서 갈등이 매듭지어졌지만, 이번 일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리더십에 적잖은 흠집이 났다는 분석이다. 또 앞으로 진행될 포스코의 구조조정 과정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 불황으로 철강 수요가 줄어든 데다 자원외교와 관련해 검찰조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계열사와의 갈등은 포스코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월27일 전병일 당시 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포스코 수뇌부의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전 사장은 ‘미얀마 가스전 매각설에 대한 적극적 대응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 직원들이 매우 격앙되어 있듯이, 미얀마 가스전 매각은 회사의 동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포스코에 대한 불신과 불만, 자회사로서의 자괴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연휴 중 회장님께 편지를 통해 알려드렸다. 본 매각 건은 그룹의 비상경영상황에서 가치경영실의 실무선이 안으로 정리해 당사의 의견을 물은 것으로서, 경영진은 그룹의 상황과 당사의 입장을 함께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 대우인터내셔널이 개발 중인 미얀마 가스전 탐사 현장.
- 대우인터내셔널이 개발 중인 미얀마 가스전 탐사 현장.

미얀마 가스전 매각 검토에 대우인터내셔널 반발
전 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쓴 글이 모 경제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보도 직후 포스코 수뇌부는 전 사장을 해임하는 초강수까지 생각했지만 계열사와 모기업이 갈등을 빚는 것에 대한 여론을 의식, 조청명 포스코 가치경영실장(부사장)을 회장 보좌역으로 인사조치 시키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포스코는 7월 중 조 전 부사장을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 대표이사에 선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시절 경영기획총괄(전무) 자격으로 대우인터에 파견돼 근무한 적이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내부에서는 본사가 송도로 이전한 것은 이동희 전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과 조 전 부사장의 합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가스전 매각 검토도 조 전 부사장이 분과장으로 있는 구조조정분과에서 비밀리에 진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포스코는 언론 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홍보담당 임원을 보직해임 시켰다. 

현재 포스코는 파장이 최소화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권 회장 역시 전 사장의 글이 보도된 직후 “대우인터내셔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지난 6월9일 ‘철의날’ 기념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절차가 어떻게 되고, 실익은 얼마나 되는지 검토한 것을 두고 ‘당장 매각한다’는 식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그룹 전체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항명한 것에 대해 권 회장을 비롯해 그룹 수뇌부가 받은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스전 매각과 관련해 대우인터내셔널측 반대논리는 분명하다. 우선 포스코가 악화된 경영실적을 개선시키기 위해 애써 키워온 우량 자산인 미얀마 가스전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얀마 가스전은 10년 가까이 개발에 매달려 최근에서야 성과를 내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상징적인 사업이다. 주요 증권사 보고서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장기발전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중요한 이유로 꼽을 정도로 미얀마 가스전은 최우량 자산이다. 

보도에 따르면, 포스코는 미얀마 가스전을 포함해 대우인터내셔널 자본부문의 분리매각을 심도 있게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가스전 지분을 팔아 인도, 브라질 등 기존 포스코가 진행해온 제철사업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초 취임한 권 회장의 ‘철강 중심 경영’과 맥이 닿아 있다. 권 회장은 전임 정준양 회장 시절 다각화 차원에서 추진했던 상당수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모태 역할을 한 철강사업에 집중할 뜻을 여러 차례 비춰왔다. 대우인터내셔널을 매입한 것도 정 전 회장 시절의 일이다.

이번 포스코-대우인터내셔널 간 갈등을 보면서 재계에서는 ‘기어코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술’과 ‘세일즈’라는 전혀 다른 기업 문화를 가진 두 회사의 불편한 동거가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군 출신인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세운 포스코는 ‘제철’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기업문화가 보수적이다. 반면 대우인터내셔널은 국내 대표 종합상사로 개인의 역량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올 초 화제를 모았던 CJ E&M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원인터내셔널이 대우인터내셔널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 2003년 대우그룹이 공식 해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대우’라는 기업명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회사다. 종합상사에서 시작해 한 때 재계 ‘빅4’까지 오른 대우그룹의 시작이 바로 대우인터내셔널이다. 실제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은 지난 2010년 회사가 포스코에 인수됐지만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러다보니 합병 이후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꽤 많았다는 후문이다.

인천 송도 본사 이전부터 양측 갈등
지난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직후 포스코는 정 전 회장의 측근인 이동희 당시 포스코 재무투자부문장(사장)을 대우인터내셔널 대표(부회장)로 임명했다. 이 부회장은 정 전 회장의 측근이자 차기 포스코 회장 후보군 중 선두주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전 부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에 무리하게 포스코 문화를 심으려다 곳곳에서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대우인터내셔널 화학부문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의 말이다.

“현재 철강부문 임원 중 70%가 포스코에서 내려 보낸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온 뒤로부터는 조직 내 보신(保身) 문화가 커지면서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조직을 운영해왔다. 그러다보니 내부 직원들과 빈번하게 마찰을 빚어왔다. 최근 대리-과장-차장식으로 구분됐던 직급체계를 포스코처럼 ‘P1-P2-P3’, 부르는 명칭도 주니어매니저, 시니어매니저 등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도 크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인천 송도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에너지부문 한 직원은 “지난 2013년 본사가 송도로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이 전 부회장(당시 CEO)이 사내게시판을 통해 ‘송도로 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밝혔지만 지금 와서 회사에서는 본사 이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만 늘어놓는다”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올해 초 송도국제도시 동북아무역타워(NEATT)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우인터내셔널(지분율 60%)은 이 건물을 지난 2013년 포스코건설(40%)과 공동으로 매입했다. 본사 이전 직후 대우인터내셔널은 하위 직원을 중심으로 30~50명이 대거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내부 직원은 “종합상사 업무의 특성상 고객 영업이 편리한 곳에 사무실이 있어야 하는데, 포스코가 잘못 투자한 부실자산을 떠안는 차원에서 본사를 이전하는 것에 대해 지금도 직원들의 불만이 크다. 업무의 효율성만 놓고 보면 오히려 해외 바이어(구매자)가 찾아오기 편한 포스코가 인천에 본사를 두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포스코, 대우인터내셔널 양쪽 모두 미얀마 가스전 매각과 관련해서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검토한 것일 뿐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보도 직후인 5월27일 2만6300원(종가 기준)이었던 대우인터내셔널 주가는 6월17일 2만495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편 지난 5월26일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포스코는 “당사는 다양한 재무구조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며 종속회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의 자원개발부문 분할 및 매각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똑같은 사항을 놓고 대우인터내셔널은 “당사의 자원개발부문 분할 및 매각과 관련하여 구조조정후보 중 하나로 검토한 적이 있으나 검토 결과 그룹차원의 실익, 절차적 실현가능성, 구조조정의 방향 등이 맞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면서도 “다만 최대주주인 포스코는 다양한 재무구조 개선방안 중 하나로 상기의 사항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혀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관전 포인트는 미얀마 가스전 매각이 실제로 추진될지 여부다. 대우인터내셔널 내부에서는 올 초부터 ‘대우 지우기’가 계속됐다는 이유로 재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철강부문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두 달 전쯤 포스코가 해외 고객사를 상대로 사명(社名)을 대우인터내셔널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며, 사내 임직원을 상대로 사명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철강 부문에서는 포스코라는 사명이 경쟁력이 있겠지만, 자동차 부품, 자원, 화학 등 다른 부문에서는 대우가 가진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커 임직원 상당수가 사명 변경에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이번 사태로 리더십에 적잖은 흠집이 났다. 권 회장이 지난해 11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2014포스코 EVI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이번 사태로 리더십에 적잖은 흠집이 났다. 권 회장이 지난해 11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2014포스코 EVI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어렵게 개발한 가스전 팔면 안 돼”
현재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구조조정을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재계에서는 경기 침체로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포스코가 철강사업 역량강화라는 큰 틀에서 대우인터내셔널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본다. 엔지니어 출신인 권 회장이 그룹 개혁의 화두로 핵심사업 역량강화를 내걸었으며 미얀마 가스전 사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매각 자체만 놓고 보면 몸값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지금이 최적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할 경우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쟁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거라는 점이다. 단순 상사 업무로만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10년간 공들여 개발한 미얀마 가스전이 팔리면 대우인터내셔널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대우증권은 지난 5월26일 보고서(자원부문 매각설: 주가 변동성 예상)에서 “구조조정 및 매각설이 사실이라면 주가의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미얀마 가스전은 지속적인 이익창출이 가능한 사업으로의 영역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종합상사부문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대우인터내셔널이 구조조정 된다면 통 매각보다는 분할 매각이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스전 개발로 수익성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대우인터내셔널 전체를 통째로 매각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대우인터내셔널 내부에서는 철강 부문을 따로 떼어내 포스코 내 철강판매 계열사인 포스코P&S(옛 포스틸)와 합병시키고 에너지 비철강 사업 부문은  매각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우인터내셔널의 직원은 “지금까지 노사위원회와 같은 느슨한 형태로 직원들과 사측이 대화를 나눴는데, 매각 등 구조조정이 현실화된다면 정식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도 직원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를 보는 포스코 내부 직원들의 심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포스코 직원은 “그룹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식의 행동은 곤란하다는 게 포스코 일반 직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