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싱도자박물관 모습
- 이싱도자박물관 모습

알파벳 대문자로 시작하는 ‘차이나(China)’는 중국을 의미하고, 소문자인 ‘차이나(china)’는 도자기(陶瓷器)를 뜻한다. 일본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재팬(Japan)도 칠기(漆器)를 의미한다. 코리아(Korea)가 유래된 고려는 청자로 유명하다. 한·중·일 삼국은 일찍이 서양인이 선망하는 ‘도자기의 나라’였다. 예전부터 흙을 빚어 고온으로 양질의 도자기를 구워내는 것은 공예예술인 동시에 최첨단 기술이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연비 높고 탄소배출량이 적은 초경량의 자동차 엔진을 세라믹기술로 생산하게 된다고 한다.

최고급 전통차호로 유명
중국은 특색 있는 도자기와 다양한 다구(茶具)를 전국각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 중 자사호(紫砂壺)는 차를 우려내는 차호(茶壺) 중에서 으뜸이다. 오색토라 불리는 자사(紫砂)로 만든 자그마한 주전자가 자사호다. 자사는 장쑤성(江蘇省) 남쪽에 있는 이싱(宜興)의 딩수진(丁蜀鎭) 일대에서 나오는 철분이 많은 점토질의 분사암(粉砂巖)으로, 국가에서 통제하는 희토류의 일종이다. 자사호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1200도의 고온에서 소성(燒成)돼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난 무독성 차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싱의 자사(紫砂)제품은 2014년 1월24일 ‘중국국가지리표지보호산품’으로 등재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호는 자사호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자사호의 고향 이싱시는 장쑤성 성도인 난징(南京)에서 120㎞ 떨어진 태호(太湖)와 인접해 있다. 태호(太湖)는 서울 면적의 4배만한 호수로, 중국 제일의 경제권인 상하이와 난징 사이에 있다. 40여개 다국적 기업이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몰려 있는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한국이 의료시스템을 수출한 곳인 이싱 세브란스검진센터가 개관을 앞두고 있다. 도자기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도도(陶都)라고 불리는 이싱은 인구 200만명 중 26만명이 자사 관련 일에 종사한다. 자사를 만드는 작가 중에 중국정부에서 정한 13개의 등급에 속한 작가는 중국공예미술대사(中國工藝美術大師)를 필두로 2300여명에 불과하다. 중국공예미술대사는 중국국무원에서 4년마다 엄선해 임명하는 명예직이다. 우리로 보면 무형문화재보유자에 해당한다.

34도가 넘는 6월의 무더위 속에 난징까지 필자를 마중 나온 다이준제(戴俊傑·42)는 21년 경력의 국가급공예미술원(國家級工藝美術員)이다. 국가급공예미술원은 자사명인 13개 등급 중 끝에서 2번째다. 경력에 비해 높은 급수는 아니지만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아 칭화(淸華)대 미술학부수석사범으로 근무한다. 부부가 함께 공예작업을 하는데 부인의 직급이 2단계나 높다. 상위등급작가의 작품이 늘 우수하진 않지만 작품가격은 직급별로 비교적 엄격한 차등이 있다.

그와 함께 7000년이 넘어가는 이 지역의 도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싱도자박물관을 찾았다. 한적한 신시가지에 위치한 박물관은 고대 도자의 파편에서부터 역대 명장들의 작품을 시대별로 잘 전시해놓았다. 전통에서 벗어난 현대 작가들의 파격적인 작품도 눈여겨볼만했다. 전문지식을 갖춘 해설사의 설명 중에 자사호의 창제자로 알려진 공춘(供春·1506~66)에 대한 소개는 재미났다. 해설사는 “16세기 명나라 때 금사사(金砂寺)의 스님이 차호 만들기를 즐겼다. 절에 공부하러 온 선비의 어린 노비였던 공춘이 스님의 차호를 흉내내어 만들었다. 이를 본 스님이 공춘에게 자사호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 스님은 차호에 낙관을 찍지 않았지만 공춘은 차호 밑바닥에 서명을 남긴 덕에 스님 대신 자사호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다”고 했다.

600여 년 전 명나라 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사용하는 용요(龍窯)를 보러 이싱의 구시가지인 수산(蜀山)의 옛 마을로 향했다. 청말 때 지어진 주택이 모여 있어 마을 전체가 문물보호단지로 보호되고 있다. 특별한 안내간판이 없어 이싱에 사는 지인도 한참을 헤매다가 용요를 발견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형태로 만들어진 장작 가마는 48.6m의 길이를 자랑한다. 원래는 7개의 용요가 있었는데 현재는 유일하게 이곳만 남아 있다. 용요 입구는 커다란 문으로 막아놓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용요 맞은편에 관리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데 약간의 용돈을 쥐어주면 미소와 함께 출입문을 열어준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가마에 불을 지피고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의 자사호 작가들은 실패율이 적고 불조절하기 쉬운 전기가마와 가스가마를 쓴다고 한다.

1. 수십년에서 수백년 동안 자연 풍화를 거친 자사를 이용해 자사호를 만든다. 2. 600여 년 전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용요(龍窯). 3. 청나라 시절 만들어진 자사호.
1. 수십년에서 수백년 동안 자연 풍화를 거친 자사를 이용해 자사호를 만든다.
2. 600여 년 전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용요(龍窯).
3. 청나라 시절 만들어진 자사호.

최고의 紫砂 제공하던 황룡산은 이제 채굴 금지
보이차가 세월과 함께 익어가듯이 자사호를 만드는 자사도 채굴해 짧게는 1년, 길게는 수십 년을 쌓아놓고 자연 풍화(風化)시킨 후에 제련해 다시 숙성시켜 점성을 증가시킨 다음 사용한다. 가공된 자사를 ‘니(泥)’라고 하는데 색상에 따라 자니(紫泥), 녹니(綠泥), 홍니(紅泥) 등으로 나뉘게 된다. 최고의 자사를 제공하던 황룡산은 지금은 채굴이 금지돼 입구를 막아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자사 채굴로 피폐해진 청룡산은 움푹 파여 호수로 변했다. 호수 입구에 수영금지팻말이 커다랗게 붙어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료 샤워실과 탈의실도 있는 것이 의아해서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수영금지 경고문은 얼마 전 시에서 만든 것이고 수영하는 사람들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곳에서 수영을 하던 사람이어서 막을 수가 없다”며 말은 되지만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해질 무렵 자사 작가들의 성지로 불리는 자사 1창에 있는 다이준제의 공방을 찾았다. 공방은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과 작업실로 이뤄져 있다. 1954년 국영기업으로 출발한 자사 1창의 정식 명칭은 이싱자사공예창이다. 자사의 수요가 한창일 때 1부터 5창까지 설립됐는데 1창의 작가들이 가장 우수해 예술품을 창작하는 명인들이 1창에서 배출됐다. 민영화된 지금도 이곳에 입주한 공예가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