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사내에 ‘모자이크(MOSAIC)’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모자이크는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플랫폼으로, 사내(社內) 임직원들 간 지식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집단지성시스템이다. 지식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제도·보상정책 및 교육·문화 개선을 통해 뒷받침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출범 이후 1년 이상 지난 2015년 6월, 페이지 뷰는 약 5700만 건, 하루 평균 접속자수는 5만7000여 명에 달했다. 삼성전자 임직원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인 모자이크에 오른 전체 제안과 게시글수는 210만 건이 넘었다. ‘아이디어(idea)’에 ‘사람(people)’을 더한다는 기본 콘셉트에서 시작한 이 집단지성시스템은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 운영해오던 ‘S-KMS’를 좀 더 발전시킨 형태로, 도입 후 사내 제안은 3배로, 공동참여율은 36배 증가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 의견공유로 아이디어 선순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이학주(가명) 책임은 지난해부터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업무회의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모자이크에 접속해 사내 의견 제안·토론장인 ‘스파크(Spark)’의 관련 글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팀 내·외부의 목소리를 듣고 작업 중인 제품에 실질적으로 피드백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오늘 회의에 앞서 그가 스파크에 올려놓은 제안 창을 확인해보니 벌써 댓글이 30여개 달려 있다. 보통 10~20개가 달리는데 이 건에 대해선 평소보다 많은 것이다. 조회 수 역시 평소보다 많은 2만 뷰 이상을 찍었다. 이 정도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제안창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해보니 실질적인 조언들이 많다.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에서 솔루션의 실마리를 주는 글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그는 유용한 피드백들을 차곡차곡 모아 파일로 정리해 회의실로 향한다. 스파크를 통해 수집한 피드백들을 팀원들과 공유해 제품 개발에 반영할 예정이다.
“모자이크가 도입된 이후 이 시스템으로부터 정말 많은 업무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거든요. 저 같은 개발자들이 개발에만 매여 있다 보면 창의력이 고갈되곤 하는데 모자이크 시스템에 마련된 아이디어마켓에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 그 갈증을 상당히 해결해줍니다. 평소라면 만날 일이 없는 사내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결국 이런 아이디어들이 회사 전체의 건설적 발전을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자이크엔 크게 다섯 가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오픈 디스커션(discussion) 서비스인 ‘스파크’,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아이디어 마켓(Idea Market)’, 누구나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퀘스천즈(Questions)’, 온라인 협업공간인 ‘커뮤니티(Community)’, 여기서 파생된 오프라인 모임인 ‘스퀘어(Square)’가 주된 서비스이며, 필요한 전문가를 검색할 수 있는 ‘휴먼 라이브러리(Human Library)’, 연구 및 개발의 결과물을 공개하고 임직원에게 평가·검증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인 ‘모자이크 스토어(MOSAIC Store)’ 등도 제공된다.
삼성전자는 국내뿐 아니라, 20만 명의 해외 임직원들의 참여를 위해 ‘모자이크 글로벌(MOSAIC Global)’ 버전도 운영 중이다. 올 초 영어 버전이 오픈됐으며, 지난 4월부터 번역 서비스와 글로벌 설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014년 3월 모자이크가 베타 오픈된 이래 삼성전자 사내에선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한 삼성전자 소속 개발자는 “처음 모자이크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의 예상보다 훨씬 더 참여자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점점 더 뜨거워져가고 있다”며 “새로운 집단지성시스템이 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집단지성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 모자이크의 아이디어마켓에 제안된 전체 아이디어 6335건 가운데 70건이 사업화에 기여했으며 상품화로까지 연계된 것은 31건이었다. A급 특허출원에 기여한 아이디어는 39건이었다.
여기에 더해 전사적으로 이 시스템을 확실히 밀어주고 있다는 점도 제도 안착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모자이크 활동자들에 대해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함과 동시에 활동이 우수한 참여자들을 위한 금전적, 비금전적인 다양한 포상책을 운영하고 있다. 모자이크를 통해 조직된 사내 스터디 그룹에 대해선 장소 지원 및 활동비 지원까지 이뤄지며 집단지성, 즉 ‘Collective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코인(COIN) 제도’를 통해, 참여자의 활동은 실시간으로 금전적으로 적립된다.
전문가들은 “컴퓨터 환경과 온라인 시스템이 뒷받침돼 원활한 온라인 네트워킹이 가능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별적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모자이크가 집단지성 플랫폼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 두 가지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사무국은 “질의응답 서비스인 ‘퀘스천즈’ 서비스의 답변율은 90%를 넘으며 삼성전자 전 직군에서 4200여 개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협업 중”이라며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모자이크 활용빈도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시공간적 제약 뛰어넘은 브레인스토밍
집단지성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21세기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구적 환경문제인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와 같은 거시적인 어젠다(agenda)에서부터 장애인용 손목시계의 마케팅 같은 소규모 과제까지, 여러 사람들이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그 대상이 된다.
최근의 집단지성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비용으로, 더 큰 규모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이다. 특정 과제들에 대해 온라인으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두면, 뉴욕의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근무시간 중 잠깐 짬을 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정주부, 베이징대학 도서관의 학생, 한국 홍대 앞 카페에 앉아 있는 프리랜서 작가 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토론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몇 명에서 몇백만 명까지, 하려고 한다면 거의 무한대로 참여 규모를 오픈할 수 있다. 또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구상 다양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 어려움 없이 이 브레인스토밍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집단지성을 가리켜 ‘글로벌 브레인(Global Brain)’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도 집단지성시스템을 주목해왔고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에 도입해왔다. 인터넷 기반의 집단지성으로 유명한 사례는 구글, 위키피디아 등 소비자의 귀에 익숙한 이름이 많다. 누구든지 들어와서 새로운 모듈을 제안할 수 있는 ‘리눅스(Linux)’ 오픈 소스 운영 시스템, 엔지니어링·컴퓨터 과학·생명과학·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개발 과제에 대한 솔루션을 공모해 채택되면 상금을 주는 ‘이노센티브(InnoCentive)’ 등도 집단지성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MIT 집단지성센터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책을 제시하는 온라인 플랫폼 ‘기후 공동실험실(Climate CoLab)’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역시 집단지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집단지성이라는 점에서 최근 가장 돋보이는 사례로는 단연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Xiaomi)’를 꼽을 수 있다. 2010년 창사해 2011년 처음 스마트폰을 출시한, 아주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샤오미는 몇 가지 특이한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오픈 포럼(open forum)’이다.
샤오미 제품을 써보고 건의할 의견이 있는 소비자라면 누구라도 오픈 포럼에 접속해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제언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회사는 바로 답을 하며, 만일 의미가 있는 제언이라면, 즉각 엔지니어들에게 전달해 빠르면 일주일 안에 그 제언을 반영한 제품이 나온다. 이렇게 해서 업데이트된 제품은 일주일 간격으로 새로 출시된다.
샤오미의 야심찬 모토 중 하나인 ‘당신이 쌓아가는 디자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시작한 지 5~6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삼성과 애플에 이어 세계 3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자리를 꿰차고 2014년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고 1위를 달성한 샤오미의 힘은 기본적으로 오픈 포럼을 통한 집단지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평이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티브사이언스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초연결(Hyperconnectivity) 시대에 접어든 지금, (집단지성 활용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스마트 시대에 기업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회사 내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집단지성’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단지성시스템은 기업의 제품 혁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사내 소통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업무 효율 전반을 개선시키는 기능도 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처럼 큰 조직에서 볼 수 있는 단점이 바로 부서 간 소통부족인데, 모자이크와 같은 집단지성 채널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증대시키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모자이크가 당초 예상보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자, 삼성 관계사 및 타사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이용대상이 사내 구성원으로 한정돼 있어 완전히 개방된 집단지성시스템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신 교수는 “현재의 모자이크는 삼성전자 내 직원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며 “모자이크가 보다 보편적인 집단지성시스템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참여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대중을 제품이나 창작물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식)이 성공적인 이유는 일반 대중을 전체 참여자로 한다는 것입니다. 참여자가 많으니 더욱 신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죠. 모자이크가 성공하려면 참여 채널과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