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U법은 자금 흐름 조사를 사전 세무조사 단계부터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다.
- FIU법은 자금 흐름 조사를 사전 세무조사 단계부터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다.

지난해 연말 도매업종을 운영하는 나인출(가명)씨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낸 ‘고액 현금거래 정보의 제공사실 통보서’를 받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FIU가 나씨의 고액 현금거래 내역을 국세청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직업이 세무사다보니 작년 연말부터 올 4월까지 나씨처럼 통보서를 받았다는 사람을 꽤 많이 만난다. 그 중에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별히 직업이 없는 전업주부도 있었다. 이들이 갑자기 통보서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3년 7월 국회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명 FIU법, 특금법이라고 부르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해 11월1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법은 자금세탁행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FIU를 통한 특정금융거래의 정보에 대한 보고·이용 등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

FIU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자금세탁 관련 혐의거래 보고 등 금융정보를 수집·분석해 이를 경찰이나 검찰, 국세청 등 집행기관에 제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제도가 눈여겨볼 부분이다.

사고 후 뒤지기보다 사전단계부터 철저히 조사
첫 번째,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Currency Transaction Reporting System)는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거래를 FIU에 보고토록 한 제도다. 이 법에 따르면, 하루 동안 2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한 경우 거래자의 신원과 거래일시, 거래금액 등이 전산으로 자동 보고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에는 보고 기준금액을 5000만원으로 정했으나 2008년부터는 3000만원, 2010년부터는 2000만원으로 낮춰 적용하고 있다.

의심거래보고제도(STR·Suspicious Transaction Report)는 금융거래와 관련해 특정 재산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보고하는 규정이다. 1000만원 이상의 원화거래나 5000달러 이상의 외환거래만 보고하던 것을 금액에 상관없이 보고하는 것으로 개정했다.

그렇다면 법령 개정과 이 두 가지 제도가 통보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FIU에는 검찰, 경찰뿐만 아니라 국세청 직원들도 소수 파견돼 앞서 언급한 고액현금거래와 의심거래에 대해 과세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양의 정보가 거래되고 생산되는 터라 그동안 원하는 만큼의 자료를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2013년 법 개정 당시 자산가들의 변칙증여라든지 사업소득의 탈루 등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기 위해 열람권한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국세청에서 원한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전과 비교해서는 상당한 변화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무엇일까? 쉽게 얘기하면 과거에는 굵직굵직한 자금세탁 사건이나 조세범칙사건 조사처럼 뉴스에 나올 법한 정보에 대한 정보열람권이 있었다면, 이제는 세무조사대상자로 선정된 납세자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체납자에 대해서도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더 많은 정보로 납세자를 압박할 수 있게 됐다.

즉,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측면에서 사전 세무조사 단계부터 활용하게 됐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지금까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하는 방법은 PCI(Property, Consumption and Income Analysis System) 분석을 통해 이뤄졌다. 간단히 설명하면, ‘보유자산현황+지출금액 = 신고된 소득금액’ 이라는 산식을 풀어서 부족한 신고 소득금액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분석방법의 경우에는 원천적으로 신고되지 않거나 소비되지 않는 자금 등에 대하여는 반영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고가의 미술품을 현금으로 매각한 경우, 매출의 일부를 현금으로 받아 신고하지 않는 경우, 자금을 자녀의 전세금 지원이나 현금 지출을 통한 소비를 할 경우에는 국세청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이제는 길이 열렸다.

특히 국세청은 2015년 국세행정의 중점추진과제 중 성실납세기반 확충의 일환으로 ‘FIU정보통합분석시스템(FOCAS)’을 구축, 분석기능을 강화하고 FIU 정보의 활용범위를 확대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즉, 기존에 수동으로 관리되던 FIU 정보를 국세청의 과세자료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해 다양한 분석을 통해 차명계좌 및 변칙 고액 현금 거래 등을 이용한 탈세행위를 적발할 예정이다.

흔히들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다 보면 흥정하기 마련이고 판매자 또는 소비자 누구나 할 것 없이 현금거래를 제시해 가격을 낮추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금거래 유도가 단지 카드수수료의 절감을 위한 목적이라면 현명할 수도 있겠지만 나아가 소득금액을 줄여보고자 하는 욕심이라면 더 이상의 과욕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

합법적인 신고·납부만이 유일한 해결책
신고되지 않은 소득은 내가 아무리 꽁꽁 숨겨놓고 있다 하더라도 투자를 하든지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단계에서 반드시 노출되기 마련이다. 또 나에게서 무사히 넘어갔다 하더라도 물건을 사는 사람이나 돈을 받는 이가 나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금융거래를 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보는 과세관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솝 우화 중에 ‘토끼와 거북이’라는 얘기가 있다. 처음에는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는 것처럼 절세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너무 답답하고 원칙적인 것 같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면 이런 느리고 원칙적인 신고·납부가 향후의 세무조사라는 빗속에서 우리를 가려줄 든든한 우산이 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