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혁신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크리스텐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 대기업들의 인수합병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70%를 넘고, 그 주된 이유는 인수합병의 전략적 목표와 인수대상 기업의 선정이 처음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다각화된 기업에서 혁신의 두 가지 형태, 즉 선택과 집중으로 현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고 기존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leverage business model·LBM)하는 경우와,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신흥사업으로 사업구조를 변신해 비즈니스 모델을 개편(reinvent business model· RBM)하는 경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인수대상 기업 자원의 가치에 비해서 너무 높은 인수가격을 지불하거나, 인수합병 이후 과도한 조직통합으로 인수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서 보유 자원이나 투자 자본이 부족하고 시장과 제도적 환경이 미흡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조직 내부적으로 자원과 투자를 관리하는 다각화된 재벌 구조를 통해 성장해 왔다. 특히 과거 경제개발 시기부터 과감한 사업다각화 전략을 통해서 급속한 성장으로 이끈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이러한 전략에 대한 믿음과 관성으로 비(非)관련 사업다각화를 계속 추진해 왔다. 하지만 시장개방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비관련 사업다각화의 비효율성이 입증됐다.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비즈니스 환경으로 바뀔 때 부실한 비관련사업들을 제때 구조조정을 통해 통합하거나 정리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구조의 선진화나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는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떻게 선택과 집중 또는 사업구조 변신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혁신할 수 있을까.
사업영역·방식 혁신해야 경쟁력 높일 수 있어
기업 혁신은 신규창업이나 중소·중견기업만이 아니라 재벌그룹의 변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전략적 혁신은 기업의 사업 영역에서의 혁신과 사업 방식에서의 혁신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다각화된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의 관점에서 보면 혁신은 기존의 비관련다각화 사업구조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핵심 역량 중심의 관련다각화 혹은 전문화 사업구조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는 것과, 미래 성장 동력이 되는 신흥사업 영역에 진출해 기업 전체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변화의 실행을 의미한다.
급변하고 심화되는 경쟁상황에서는 동일한 자원을 활용한 지속적인 경쟁우위는 현실적이지 않다. 이보다는 혁신을 통한 일련의 한시적 경쟁우위를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의 시각에서 추구해야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위해 유용한 관점으로 점차 주목 받고 있는 것이 효율과 혁신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양손잡이 조직이론’이다. 양손잡이 조직이론에 따르면, 효율성을 강조하는 조직과 혁신성을 강조하는 조직은 투자전략 및 조직운영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효율성 위주의 조직에서는 기존 역량 활용을 위한 투자 및 조직관리를 강조해 기존 사업에서 핵심 역량을 활용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전략에 초점을 둔다. 반면 혁신성 위주의 조직에서는 신규 역량 탐색을 위한 투자 및 조직관리로 미래의 성장 사업에서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은 효율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현재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는 기업 특유의 자원을 개선 및 확장시키는 한편, 연구개발이나 인수합병을 통해 신흥사업에 필요한 보완적 자원을 경쟁사들보다 먼저 확보하고 또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활용하는 동적 역량이 요구된다.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에 성공한 우리나라 기업의 사례로 먼저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찾을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970~80년대 국내 화장품시장 확장으로 순조로운 성장을 이어가자 타 산업으로의 확장을 꾀하게 된다. 약 20년에 걸친 사업 다각화 결과, 199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은 4개 비관련 사업군에 25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화장품을 제외한 대부분 계열사들의 성과는 부진했고, 결국 화장품 사업을 통해 번 돈을 다른 계열사에 지원하느라 그룹 재무 상태는 악화됐다. 비관련 다각화의 후유증 속에서 주력인 화장품 사업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방문판매보다 일반적인 시판시장이 급성장하고, 1986년에는 미국과 유럽 등 외국 화장품기업의 한국 진출이 자유화되면서 경쟁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70년대에 70%를 웃돌았던 아모레퍼시픽의 시장점유율은 1991년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은 10여년에 걸친 사업 구조조정을 시작하게 된다.

선택과 집중으로 전문화한 아모레퍼시픽그룹
아모레퍼시픽의 사업 구조조정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부실사업 정리 단계이고, 둘째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핵심분야 집중 단계로 특징지어진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했지만 아모레퍼시픽은 1단계 구조조정으로 경영난을 극복하고 금융위기 당시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에 더해서 아모레퍼시픽은 1998년부터 핵심 사업분야로의 집중이라는 제2단계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룹 비전을 뷰티 앤 헬스(Beauty & Health)로 정하고 관련 사업분야에 집중하기로 선언한다. 신규 설립 및 분사 등 유기적 성장을 통해 화장품과 향수, 바디용품이라는 제품 라인업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핵심 사업으로의 집중은 큰 성과를 가져왔다. 당기순이익은 1996년 51억원에서 2000년에는 847억원으로 5년 만에 16배 이상 늘었고, 2005년에는 1650억원으로 10년 만에 32배 이상 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진출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국내 화장품으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기초화장품과 국내에서 인기가 있던 미백 화장품을 만들어 프랑스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백인 소비자들에게 한국산 미백화장품은 통하지 않았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1995년에 현지법인 PLL(Pacific Lolita Lempicka)을 세워 화장품이 아닌 향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향수는 종류가 다양하고 원산지보다는 향의 독특함에 의해 선택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에 침투하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과거 조직 운영상의 실패 경험을 반영해서 PLL 인력의 대부분을 프랑스 현지인으로 채용하고 경영상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했다. 뿐만 아니라 향 제조 및 용기 디자인까지 당시 선진기업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을 영입해 추진했을 만큼 향수의 현지화와 완성도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 경쟁이 매우 치열해 업계 1위 시장점유율이 4% 정도에 불과한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2002년에는 시장점유율 2.6%를 돌파하면서 프랑스 향수 업계 4위로 올라섰다.
한편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93년이었다. 동북 3성(하얼빈, 선양, 창춘)을 중심으로 현지 업체인 보암과 합작해 중국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과 비슷한 시장에 한국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겠다는 전략은 현지에서 통하지 않았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부터 3년간에 걸쳐 대규모 현지 소비자 조사를 실시해 젊고 밝은 이미지의 라네즈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적합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당시 유행을 선도하는 홍콩에서 브랜드 명성을 얻을 경우, 중국 본토 진출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학습하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은 먼저 2002년 홍콩의 1급 백화점 가운데 하나인 소고(SOGO) 백화점에 1호점을 입점시켰다. 신중한 분석에 따른 결과로 6개월 만에 판매량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은 다른 브랜드의 중국 진출보다는 라네즈의 본토 진출에만 집중했다. 2002년 9월 상하이에 진출해 성공을 시키고, 2003년에는 베이징에 차례대로 진출하면서 라네즈 중국 진출의 성공 방정식을 얻게 된 것이다. 라네즈가 3년에 걸쳐 중국에서 완전히 정착하고 난 뒤, 2005년에는 마몽드 브랜드를 동일한 성공 방정식에 따라 중국 진출을 시도해 2년 만에 시장 정착을 이뤄낸다. 한류 열풍을 기반으로 2007년에는 설화수 브랜드 역시 동일한 방식을 적용해서 2011년까지 브랜드들을 순차적으로 중국시장에 진출시켜 왔다.
소비재에서 산업재 사업구조로 변신한 두산그룹
1896년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하여 동양맥주, 두산식품 등 소비재 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두산그룹은 1991년 계열사인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고로 인해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 사고로 시민단체 등이 두산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한편, 기업 이익만 앞세워 공공시설인 상수원을 오염시켰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 영향으로 주력사업인 맥주 사업도 흔들렸다. 당시 주요 경쟁사인 조선맥주는 하이트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시장을 잠식해 들어 왔다. 이로 인해 1993년 70 대 30의 우위에 있던 동양맥주의 시장점유율은 1996년에는 41 대 43으로 역전됐다. 특히 두산은 1990년대 초 내수시장 수요에 대응하고자 대대적으로 설비 투자를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300%를 넘어섰다. 경쟁 심화에 따른 매출 부진으로 급기야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두산그룹은 창업 100주년인 1996년 사업구조를 소비재 중심에서 산업재 중심으로 바꾸기로 선포했다. 그 핵심은 본업인 식품 사업을 버리는 것이었다. 소비재의 핵심 역량과 산업재의 핵심 역량은 크게 차이가 난다. 소비재의 경우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과 조직문화가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독점 공급업체 시절에 형성된 기업문화에서 그다지 변화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점차 빠른 대응을 필요로 하는 소비재 사업에서 주도권을 잡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이것이 부실한 사업 성과로 나타났다. 냉정한 자기반성 끝에 두산은 사업구조 변신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두산그룹은 본격적인 사업구조 혁신을 위해 우선적으로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들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했는데, 당시는 외환위기 전이라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 먼저 1995년에 영등포공장 등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1996년에 한국3M, 한국코닥, 한국네슬레 등에 대해 보유하고 있던 지분들을 각 사의 본사에 매각했다. 1997년에는 한국에서의 코카콜라 사업권을 미국 본사에 매각하고 음료사업에서 철수했다. 1998년에는 그룹의 핵심 사업인 맥주 사업에서의 철수를 선언했다. 이러한 과감한 매각 결과 재무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중공업을 비롯한 산업재 사업 진출을 위한 인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두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라는 훨씬 더 큰 위기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들어 두산그룹은 주력사업 변신을 위한 본격적인 인수합병에 돌입했다. 두산그룹의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확장은 크게 중공업 분야와 건설기계 분야의 두 부류로 나뉜다. 2000년 정부는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민영화함에 있어서 4대 기업집단을 경쟁 입찰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했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두산그룹은 산업재 기업집단으로 변신의 방향을 잡았다. 산업재 사업은 본질상 단기간 내에 핵심 역량을 구축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기적 성장보다는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장의 매출을 넘어서 원천기술의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에 노력했다. 두산그룹은 중공업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인수합병을 추진해 2009년까지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발전소의 3대 핵심설비의 원천기술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이후에도 다양한 국내외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두산그룹은 조직통합에 있어서 먼저 피인수 기업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조직문화 유지에 노력했다. 이는 중공업분야에서 지식과 경험 등 노하우가 단기간에 축적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CEO 강력한 리더십과 체계적인 준비 필요
소비재에서 산업재 기업집단으로 변신한 두산그룹은 2010년 그룹 매출액이 18조4074억원, 영업이익이 1조8338억원에 이르게 된다. 1995년 대비 외형은 4.5배이며, 영업이익은 9배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변신이 완전히 성공적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특히 건설기계 분야의 경우에는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두산그룹은 시장 지위를 단숨에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엿보다 2007년 밥캣이 매물로 나오자 신속히 인수했으나, 49억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는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변신 이후 인수합병에 있어 과거 신규 사업으로의 변신(RBM)과 주력 사업의 개선(LBM)이라는 접근방법을 구분해 적용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그리고 이제는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 자체에만 노력하기보다는 인수합병 이후에 체계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서 자신의 지식기반인 핵심 역량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 중국에서의 경쟁과 건설경기 위축으로 실적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건설기계 산업으로의 변신은 아직 미생이다. 따라서 인수합병과 중국 시장에만 의존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 등으로 점차 시장 다변화를 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길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은 새로운 기술 또는 시장기회의 발견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소비재에서 산업재 위주로 주력 사업의 변신이 이루어진 두산그룹과, 뷰티 앤 헬스라는 그룹 비전을 기준으로 핵심 사업의 선택 및 집중이 이뤄진 아모레퍼시픽의 사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실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10여년에 걸친 체계적 준비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위기 순간에 그 빛을 발한다. 두산그룹과 아모레퍼시픽은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위해 1990년대에 걸쳐 과거 주력 사업을 포함한 상당수의 사업들을 자발적으로 매각했다. 이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이 비자발적 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업들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도산했던 경우와 대비된다.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은 단순히 운이 좋은 기업들이 아니라 준비된 기업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다음으로 혁신을 위한 사업 구조조정을 경쟁사들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는 ‘전략적 민첩성’이 요구된다. 전략적 민첩성이란 첫째, 혁신적 사업의 기회를 발견하고 둘째, 사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셋째, 자원을 조달해 활용하는 세 단계에서 기업조직이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의사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제도화된 경영 능력을 말한다. 특히 제품 및 기술의 수명주기가 짧고 경쟁환경의 변화가 빠른 사업분야에서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인수합병이나 매각을 경쟁사들보다 단호하고 민첩하게 실행해 왔다. 더 나아가서 인수합병을 통해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업무 절차를 학습해 조직내부의 핵심 역량을 더욱 강화시켜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은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의 관건이 단순히 브랜드나 기술 자체가 아니라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경영자 자신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 김성민 로욜라시카고대 교수 / 홍덕표 LG경제연구원 자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