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인희 교수는 최근의 웨딩 촬영 세태에 대해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그 순간이 너나없이 연예인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연출되고 표준화된 형식으로 찍혀 나오는 것만은 필히 경계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 함인희 교수는 최근의 웨딩 촬영 세태에 대해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그 순간이 너나없이 연예인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연출되고 표준화된 형식으로 찍혀 나오는 것만은 필히 경계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인터넷과 SNS에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나영과 원빈의 결혼식 서약 장면이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한 지인(知人)이 호밀밭을 배경으로 신랑 신부가 함께 서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Facebook)에 올렸다는데,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진정 아름다운 커플의 용기 있는 결단이란 칭송이 이어졌다. 명실 공히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이 두 사람이라면 온갖 종류의 협찬을 받으며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결혼예식을 올릴 수도 있었건만, 신랑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과 친지 40여명만 초대해 조촐하고도 소박한 결혼식을 치렀다는 소식 자체가 대중의 찬사를 받는 뉴스가 되었음에랴.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난 서슴없이 10년 전 삼월 마지막 날의 결혼식을 꼽을 것이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자를 위해 주례를 섰던 그 결혼식 말이다. 당시 40대 중반의 여자교수를 주례로 초대한 결혼식이었으니 그 분위기가 얼마나 파격적이었겠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 날 결혼식 스냅 사진을 찍던 신랑 후배 왈 “선배들 결혼식 정말 셀 수 없이 다녀봤지만 이토록 감동적인 결혼식은 처음”이라 했단다.

동네 청소년 회관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신랑 신부는 우아하고 격조 있는 개량 한복을 차려입었고, 신부는 부케 대신 화관을 썼는데 화가 천경자의 화폭에 담긴 멋진 여인을 연상시켰다. 신랑 신부의 절친한 친구들이 신랑 신부를 재치 있게 소개하는 순서를 지나 주례답지 않은 주례의 의미심장한(?) 주례사에 뒤이어, 신부 부모님께서 현악 4중주를 배경으로 김용택의 시 <내게 당신은 첫 눈 같은 이>를 낭송하는 동안, 평소에도 울보라 불리던 신부의 두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나치게 상품화되고 정형화되고 있는 결혼의례
그 날의 백미는 신랑 신부가 하객들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함께 노래를 불러준 시간이었던 듯하다. 노래 제목은 가사를 조금 수정한 <삼월의 어느 날에>였는데, 신랑의 노래 솜씨가 음치 수준이었던 덕분에, 하객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마침 그 날의 결혼식에선 비디오 촬영을 과감히 거부했기에, 감격과 감동의 순간들이 예식에 참석했던 이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덧붙여지면서 ‘전설’로 남게 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남들 하는 대로’의 관례를 뛰어넘은 제자의 결혼식은 두 사람이 ‘진정 어떤 결혼을 원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뜻 깊은 자리였음은 물론이다.  

날이 갈수록 10년이나 지난 제자의 결혼식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다가옴은 실상 우리네 결혼의례가 지나치게 상품화되고 판에 박은 듯 정형화되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게다. 언젠가 퇴근 길 전철을 타고 동호대교 남단을 지나는데,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가 강변북로의 야경을 뒤로 하고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호대교 남단에서 올림픽대로로 나가는 길은 대체로 한산하긴 하지만 그래도 차가 달리는 길인데, 그 곳에 사진기를 세워두고 신랑신부에게 다양한 포즈를 주문하는 모습이라니…. 위험천만한 광경은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목격됐다. 

비슷한 시기 도산공원 산책길에서도 난감한 장면과 마주쳤다. 도산공원이야 사시사철 신랑 신부들이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기에 여러 쌍의 예비부부들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마침 한 쌍의 신랑 신부가 화장실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니 와이셔츠 바람의 신랑이 드레스 차림의 신부 어깨를 감싼 후 신랑의 윗저고리를 뒤집어 쓴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젊은 여성이 화장실에서 빼낸 호스를 흔들며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영화 포스터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 사진을 찍는 중이란 설명에 아연실색했던 기억도 있다. 

- 최근 톱스타 이나영과 원빈은 원빈의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과 친지 40여명만 초대해 조촐하고도 소박한 결혼식을 치러 화제가 됐다.
- 최근 톱스타 이나영과 원빈은 원빈의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과 친지 40여명만 초대해 조촐하고도 소박한 결혼식을 치러 화제가 됐다.

리퀴드 러브 시대, 개성 있는 나만의 의례 어떨는지
요즘은 ‘스드메’라 하여 스튜디오 촬영과 웨딩드레스 대여 그리고 신랑신부 메이크업을 패키지로 구입하는 것이 대세라지만,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그 순간이 너나없이 연예인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연출되고 주인공 얼굴만 다를 뿐 표준화된 형식으로 찍혀 나오는 것만은 필히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사진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다가올수록 실상 나의 소외감은 깊어만 가고, 사진 속 추억들이 빛을 발할수록 우리의 일상은 더욱 남루하게 비치는 것 아니겠는지.

그러고 보니 요즘 연인들 사랑을 일컬어 ‘리퀴드 러브(Liquid Love)’라 칭한 폴란드 태생의 유태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장이 떠오른다. 바우만은 현대인의 관계성에 투영된 특징을 적절히 포착한 개념으로 ‘리퀴디티’를 제안하고 있다. 리퀴디티의 사전적 의미라면 ‘액체성·유동성’이랄 수 있겠는데,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유연성·개방성이 될 것이요,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불확실성·가변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리퀴드 러브 시대의 아이러니인 즉, 연인 관계가 불확실해질수록 연인임을 확인하고 이어가는 의례가 정교하게 발달해간다는 사실이요, 결혼제도의 영속성을 향한 믿음이 희미해질수록 부부관계의 환상을 강화시키는 상품화의 논리가 깊숙이 파고든다는 점일 게다. 밸런타인 데이가 무언지 화이트 데이가 언젠지 몰라도,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 그 추억’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던 아날로그 세대 입장에선, 조이혼율(粗離婚率·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 45%를 넘나드는 시대, 판에 박은 듯한 미소에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낭만적 결혼의 기억을 연출함은 왠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연인 관계의 소중함, 부부 관계의 진정성이 과도하게 상품화되고 때론 희화화된 채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는지 노파심이 고개를 드는 요즘, ‘개성 있는 나만의 결혼의례’를 통해 결혼의 진정성과 관계의 포만감을 깊이 음미해보길 소망해본다.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에모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족과 생애주기 그리고 세대 공존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상과 예술 속의 커뮤니케이션>(공저) <다양한 가족제도와 미완의 양성평등>(공저) <현대 한국인의 세대 경험과 문화>(공저) <60세 정년연장 의무화법에 대한 근로자 인식과 정책 니즈> <한국 가족연구 50년의 평가와 전망>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