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1일 오후 9시 서울 고척동 제니스아이스링크장에서는 특별한 광경이 펼쳐졌다. 반팔 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겨울 점퍼를 들고 하나둘씩 몰려든 것이다. 이날 제니스아이스링크장에서는 한국독립아이스하키리그(KIHL·Korea Independent Hockey League) 경기가 열렸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고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사람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군데군데 응원 피켓과 맥주를 손에 든 외국인 관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족과 경기를 보러 왔다는 김형준(44)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 온 가족 모두가 아이스링크장으로 피서를 왔다”며 “입장료가 무료인데다 스피디(Speedy)한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마치 휴가를 온 느낌”이라며 즐거워했다.
오는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동계올림픽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세계 동계 스포츠 이벤트다. 동계올림픽 최대의 꽃은 단연 아이스하키다. 동계올림픽 전체 입장수입의 45%를 차지할 만큼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프로선수들이 고국 유니폼을 입고 격전을 치른다. 미국에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미국프로야구(MLB), 미국프로농구(NBA), 미국프로풋볼리그(NFL)와 더불어 4대 메이저 스포츠로 꼽힌다.

아이스하키, 동계올림픽 입장수입 45%
이런 이유로 주요 기업들도 아이스하키를 활용한 스포츠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넥센타이어는 체코 진출을 기념해 현지 인지도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체코 아이스하키팀 믈라다볼레슬라프(MladaBoleslav)를 후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도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권을 얻어 사상 처음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선다. 하지만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 아이스하키는 여전히 일반 대중과 거리가 멀다.
아이스하키의 매력은 스피드가 매우 빨라 단 0.1초 만에도 승패가 바뀌는 등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데 있다. 공수(攻守)전환이 빨라 전원 공격, 전원 수비 등 다양한 전술이 가능하다. 또 역전도 빈번하다. 이런 이유로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간혹 경기장 안에서 선수 간 1대 1 주먹다짐도 벌어져 재미를 더한다. 이러한 맞짱 싸움은 점수 차가 커 경기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뒤지는 쪽에서 분위기 반전 차원에서 벌이기도 한다.
워낙 빠른 속도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스하키는 TV 등 미디어를 통한 중계방송보다는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TV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것과 현장을 직접 찾아 관람하는 것은 경기 몰입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아이스하키를 보기란 쉽지 않다. 현재 국내 프로팀이 참가하는 아이스하키 프로리그는 일본, 러시아 등 해외 프로리그와 연계돼 있어 국제 하키 시즌인 가을과 겨울에만 경기가 열린다.
사실상 국내에서 연중 고정적으로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는 것은 매주 토요일 서울 고척동에서 열리는 KIHL 리그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이태원에서 출발하는 ‘전용버스’까지 등장
KIHL 리그전은 입장료를 받지 않아 경제적 부담도 적다. 참가 선수들도 대학선수 출신이거나 전직 프로리그 출신이어서 경기력 면에서 프로리그와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때문에 최근에는 서울 이태원에서 경기장을 논스톱으로 연결하는 팬 버스도 생겨날 정도로 인기다. 공식 홈페이지(www.koreaicehockey.com)와 페이스북(www.facebook.com/KIHLHOCKEY)에 당일 경기 결과와 사진이 업로드 되면서 팬들과 선수 간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독립리그’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전직 고교, 대학, 프로팀 선수들이 모여 결성한 독립구단들이 벌이는 대항전이다. 현재 국내 공식 아이스하키 프로팀은 안양한라, 하이원 두 개뿐이어서 고교, 대학을 거쳐 프로리그에서 활동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독립리그는 재기의 기회를 주는 발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프로팀 입장에서는 숨겨진 보석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KIHL 소속 독립구단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외국인들로 구성된 ‘스켈리도 타이탄스’, 국내 최초 독립구단 ‘인빅투스 웨이브즈’, 올해 태양광설비 제조업체 동양에서 세운 ‘동양이글스’ 등 3개다. 이 중 웨이브즈는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이다. 웨이브즈는 지난 2012년 창단돼 지금까지 9명을 프로구단으로 올려 보냈다. 미국 워싱턴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가족을 따라 한국에 온 저스틴 린지 타이탄스 선수는 “한국 선수들의 스케이팅 속도가 매우 빠르고 기술력이 예상 외로 높아서 놀랐다”며 “한국에서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하며 기량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Mini interview ● 김홍일 KIHL ㈜프라이드오브식스 대표]
“스피드와 파워 겸비한 최고의 빙상 스포츠”

전(前) 안양한라 선수이자 국가대표 출신인 김홍일 KIHL(한국독립아이스하키리그) 대표는 국내 최초로 아이스하키독립구단 ‘웨이브즈’와 ‘타이탄스’를 만드는 산파(産婆) 역할을 했다. 그가 독립구단을 만들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개인이 나서서 팀이나 리그를 운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김 대표는 “평생 아이스하키 하나만 바라본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구단이 없어 바로 은퇴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며 리그 출범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독립리그 수준은 대학팀과 프로팀의 중간 지점이다. 프로팀 선수만큼 훈련을 하지는 못하지만 기본 실력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현재 아이스하키 독립리그 선수들은 낮에는 각자 직장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오후 10시에 경기장에 모여 훈련한다.
주위 시선과 달리 김 대표의 무모한 도전은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가 창단한 웨이브즈는 약체라는 평가를 뒤엎고 서울동계체육대회에서 2년 연속 동메달을 땄다. 지난 2013년 코리아아이스하키리그 준우승, 2014년 전국종합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면서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창단 당시 단 한명이라도 프로팀에 간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김 대표의 바람도 이뤄졌다. 지난해 웨이브즈 소속선수 2명은 안양한라, 3명이 대명 상무에 입단했다. 올해는 4명이 하이원 소속이 됐다. 이밖에 일본 HC닛코아이스벅스에 1명이 입단하며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해외 우수 선수들을 포함시킨 타이탄스를 창단한 것도 김 대표의 아이디어다. 그가 캐나다 유학시설 본 북미 아이스하키의 강점은 강력한 보디체크를 바탕으로 한 파워다. 그는 북미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한 아이스하키 기술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캐나다와 미국 출신 외국인 선수들을 모아 타이탄스를 창단했다. 지난 3월 태양광설비 제조업체 동양이 독립구단을 만들자 그는 여러 독립구단을 한 데 묶은 리그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독립아이스하키리그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다. 아직까지 리그의 존속이 걸린 메인스폰서 부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웨이브즈의 ‘자매 구단‘이었던 독립야구팀 고양원더스가 작년 재정 문제로 해체된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김 대표는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아이스하키만이 가진 ‘스피드’와 ‘파워’라는 매력과 독립구단이 가진 진취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체험기]
20분 만에 15㎏짜리 장비 입으니 무릎이 휘청
송창섭 기자 realsong@chosun.com

“아이스하키 기사를 쓴다고? 그럼 직접 타봐야지.”
“저는 스케이트를 잘 못타는 데다 여자라서….”
“그래? 그럼 내가 해볼게. 나도 스케이트는 잘 못 타지만, 그래도 나 같은 초보가 해봐야 실감나지 않겠어?”
아이스하키 체험기는 점심 먹다가 아주 즉흥적으로 기획됐다. 의욕만 앞섰다고 할까. 이내 ‘내뱉은 말을 어찌 주워 담을까’라는 고민이 뒤따랐다.
나의 취향은 굳이 따지면 비주류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반대로 관심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메이저리그(MLB), 미국프로농구(NBA)보다는 미국프로풋볼리그(NFL)나 포뮬러(F)-1 게임에 더 관심이 많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를 즐겨 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축구, 야구 PC게임에 열중할 때 나는 EA(일렉트로릭 아츠)스포츠의 NHL에 열광했다. NHL이 낳은 슈퍼스타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는 나에게는 우상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보는’ 아이스하키와 ‘직접 뛰는’ 아이스하키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前) 국가대표 출신인 김홍일 한국독립아이스하키리그 ㈜프라이드오브식스 대표에게서 체험 전날 ‘내복과 긴 양말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내복, 겨울옷은 이미 옷장 속 깊숙이 넣었는데…’
귀찮은 마음에 그냥 무작정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위치한 제니스아이스링크를 찾았다. 도착 시간은 오후 9시. 아이스링크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유소년 팀이 한창 훈련을 받고 있었다. 마치 운동화를 신고 맨땅을 달리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내달리는 유소년팀 선수들의 모습을 한참 지켜봐야 했다.
아이스하키는 격렬한 몸싸움이 매력 포인트다. 격한 보디체크(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몸으로 막거나 몸으로 상대방을 강하게 밀치는 행동)는 아이스하키의 꽃과 같다. 때문에 보호장비가 중요하다. 김 대표가 들고 온 보호장비 수만 족히 10개는 넘어 보였다. 우선 내복 위에 정강이 보호대(레그 가드), 골반 및 복부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런 다음 팔꿈치 보호대, 가슴보호대(숄더 패드)를 차고 스케이트와 유니폼을 겉에 입으면 이론적으로는 끝이 난다. 그러나 초보자가 혼자 보호장비를 입는 데 20분은 족히 걸린다. 마지막으로 장갑과 헬멧을 쓰고 일어서니 무릎이 후들거렸다.
슛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는 이보다 더 많은 보호 장비가 필요하다. 무게만 15〜20㎏ 나가니, 입고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이스하키에서 20㎏이나 되는 무거운 장비를 입는 게 힘들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보디체킹 등 과격한 기술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보호장비만 착용하면 오히려 축구나 야구처럼 맨몸으로 하는 운동보다 부상이 적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스틱(Stick) 끝 ‘ㄴ’자형으로 구부러진 블레이드를 이용해 퍽(Puck)을 골대 안으로 집어넣는 게임이다. 공인구인 퍽은 작은 원반 모양으로 재질은 고무다. 두께는 2.54cm, 지름은 7.62cm다.
기본자세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허리는 쭉 뻗은 모습이다. 두 발은 어깨 넓이로 벌린다. 스틱의 옆면을 감싸면서 잡되, 블레이드를 좌우로 흔드는 드리블 시 중요한 것은 왼손의 힘이다. 오른손은 방향만 가리킬 뿐, 힘 조절은 왼손의 몫이다. 스틱을 가운데에 놓고 양 손 사이 공간은 삼각형을 만들어야 한다. 마치 두 팔 사이 품안에 어린아이를 살짝 안 듯 팔을 벌리면 된다.
아이스하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슛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무작정 퍽을 쳐서는 안 된다. 스틱을 직선 방향으로 쭉 뻗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블레이드로 퍽에 스핀을 걸어줘야 한다. 그래야 회전하면서 강력한 속도를 낸다. 보통 NHL 공격수가 친 퍽의 속도는 시속 160㎞다. 국내 선수들은 그보다는 낮은 시속 140~150㎞ 수준이다. 강력한 슛을 위해서는 강한 손목 힘과 안정된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초보는 빙판에서 드리블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연습장에서 실시된 기초교육을 받은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보호 장비 안에 착용한 내복이 축축할 정도로 땀이 흠뻑 났다. 거울을 보며 헬멧을 벗으니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아이스링크가 추워서일까. 아니면 내 몸에 열이 많이 나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