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2009년 소설로 발간됐고, 2013년에는 동일한 제목으로 영화로 제작됐다. 연극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만큼 파란만장한 삶이 또 있을까. 이 소설은 주인공 ‘알란’ 할아버지의 현재와 과거 어릴 적 삶 두 시대가 넘나드는 구성을 갖췄다.
알란은 100번째 생일날 양로원에서 파티를 준비해줬지만 1시간 전에 1층 창문을 넘어 도망쳐 버린다. 계획 없이 도망쳐 나온 알란이 가진 돈은 달랑 동전 몇 개. 그는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가지고 있는 전 재산만큼 갈 수 있는 버스를 탄다. 이렇게 100세 노인 알란의 모험은 시작된다.
필자는 처음 책을 접하면서 “왜 100세 생일날, 주인공 알란이 창문을 넘어 도망치게 된 것일까?” “치매일까?” “양로원에서 학대를 받은 걸까?” “말 못한 사연이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을 품었다. 그러나 책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알란의 인생에 담긴 가치와 인생설계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 간 벌어지는 이야기로 볼 때 코미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폭탄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알란. 그리고 버려진 폐역(廢驛)에 살면서 건망증 때문에 사람을 얼려 죽이고 큰돈을 위해 알란과 동행하게 되는 ‘율리우스’,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전공만 수십 개를 바꾼 척척박사 ‘베니’, 친절하게 나그네들에게 잠자리를 빌려주며 코끼리를 키우는 마음씨 착한 ‘구닐라’. 이 네 사람이 일으키는 요절복통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히 알란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히틀러(Adolf Hitler), 스탈린(Joseph Stalin), 트루먼(Harry S. Truman), 김일성, 마오쩌둥(毛澤東) 등 역사적 인물의 삶에 끼어들면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알란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 덕분인지 스토리가 너무 담담하게 전개된다. 이런 알란의 성향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에서 비롯됐다. 알란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라는 유언을 듣는다. 이 말은 알란의 인생관이 되고,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보고 굴곡 있는 삶을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알란은 냉전의 시대에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의 이념적 대립을 떠나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하며 삶을 산다. 어려서부터 가장 잘 알고 할 수 있는 일이 ‘폭탄제조와 폭발’이었다는 점은 소설과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지만 이유야 어쨌든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학교를 다닌 건 고작 3년이다. 또 폭탄 폭발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사건으로 정신병원에서 생체실험 등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 속에 한 획을 긋는 인물들과 인맥을 유지하며 인정(認定)받고 자신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열정(熱情)적인 삶을 산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100세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이 아닐까.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창문’을 뛰어 넘어라”
어떤 일(work)을 함에 있어 ‘늦깎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떤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지” “마지막 남은 인생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인생 100세 시대에 알란처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알란은 늘 웃고 꿈꾸며 삶을 즐겼다. 어릴 적부터 폭탄을 제조하고 실험하면서 그리고 냉전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폭탄제조전문가로서 즐기며 살았다. 그는 스웨덴에서 태어나 스페인,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발리, 프랑스 등 전 세계를 누비게 된다. 러시아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고 히말라야를 넘기도 했지만, 알란은 언제나 여유롭다. 하지만 알란의 삶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굴곡 있는 인생이었다. 알란이 살아온 1905년부터 2005년은 전쟁과 냉전, 냉전의 종결로 이어지는 시대다. 이 시기에 알란은 늘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붙잡히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지금 알란은 100세 자신의 생일날 양로원에서 탈출해 본의 아니게 갱단과 형사에게 쫓기고 있어도 늘 여유만만이다. 그게 아마 자신의 삶의 연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알란은 그런 역동적인 삶을 찾아 답답하고 지루한 양로원을 벗어나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살다 보면 지루하고 반복되는 내 삶에서 창문을 넘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적인 이유를 둘러대며 자신의 꿈을 제한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 알란은 100세 자신의 생일날 용감하게 창문을 넘어 새 인생을 찾아 더 넓은 세상으로 향했다. 무릎의 통증을 느끼는 노인이 슬리퍼를 끌고 겨우 650크로나(약 10만원)의 돈이 든 지갑만을 든 채 양로원을 ‘탈출’한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100세 노인 알란이 답답하고 지루한 양로원이 아니라 눈부신 태양이 비치는 마지막 발리의 해변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알란이 창문을 넘지 않았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지금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창문은 무엇일까. 훌쩍 뛰어넘을지,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와 한계 때문에 창틀을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을지는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인생 뭐 있어? “소중한 순간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라”
‘꽃보다 할배’가 아닌 ‘폭탄 든 할배’가 어울릴 정도로 알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주인공 알란의 10대 시절은 폭탄 제조의 달인으로 남다른 능력을 보유하게 됐고, 20대에는 폭탄 실험 중 실수로 이웃 식료품 가게 주인을 죽게 만들어 위험인물로 분류,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30대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되고 다리폭파 실험 중 우연히 지나가던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의 목숨을 우연히 구해 그의 최측근이 되기도 한다. 40대에는 미국 원자폭탄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치명적 결함을 우연히 해결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고, 50대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발탁돼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로 활약하고 어쩌다 보니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다. 이처럼 알란은 마냥 행복하게만 살아온 인물은 아니다. 그의 긴 삶은 아픔과 불행, 고난으로 얼룩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모진 풍파는 노년에 양로원에서 나와 쫓기는 삶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알란은 웃고 꿈꾸며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노인이었다. 물론 어처구니없이 사람을 죽이고도 너무나 태연한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알란은 어려서부터 제대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또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는 인생이었다. 그는 평생 남 좋은 일만 하고 살았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살 수 없었던 주인공 알란은 마지막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서 굴곡 많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2015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발표한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 뜻대로 살 걸, 둘째 일 좀 덜할 걸, 셋째 화 좀 더 낼 걸, 넷째 친구들 챙길 걸, 다섯째 도전하면서 살 걸이다. ‘베니’가 100세 노인 할아버지 알란에게 발리 해변에서 한 조언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라”와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삶을 살 때는 움직이고 할 수 있을 때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현재 인구는 5143만명을 넘었다. 이 중 100세 이상 인구는 1만5629명으로, 여성이 1만1940명이고 남성이 3600명이다. 한 해 동안 사망한 사람들을 나이별로 나열할 경우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을 최빈(最頻)사망연령 또는 최빈수명이라고 한다. 최빈수명이 90세 이상 되는 사회를 100세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경제인문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최빈수명이 이미 85세를 넘어섰고 이 추세라면 2020년경 90세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00세 시대가 바로 코앞에 다가 온 셈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면서 우리 인생을 하루 24시에 비유하면, 필자와 독자의 나이는 현재 몇 시에 해당될까. 100세를 기준으로 4등분해 나이를 적어보고 그 옆에 시간을 적어보자. 100세가 24시라면, 25세는 아침 6시, 50세는 낮 12시, 그럼 75세는 오후 몇 시에 해당될까. 밤 9시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 계산해보면 24÷4×3은 18시(오후 6시)다.

물러나는 은퇴(隱退)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은퇴(銀退) 준비하라
서울시 복지재단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 은퇴 시기는 54.6세, 여성은 49.7세로 남녀평균 52.6세로 점점 은퇴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72.2세까지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0대 초 중반에 주(主) 직장에서 은퇴해도 70세 전후까지 어떤 형태로든 근로활동 지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은퇴를 앞둔 준(準)고령자(50~64세)는 이제 내 인생의 황금기는 지났다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생 50~64세는 점심을 먹고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100세 노인 알란은 젊은 시절(10~40대) 폭탄제조전문가로서 일했지만 50대 이후에는 그간 쌓은 많은 인맥 덕분에 CIA 지국장에게 정보원 제의를 받고 일을 하게 된다.
은퇴를 말하는 영어단어 ‘retire’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우는 것(re-tire)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뒤로 물러나서 숨는 은퇴(隱退)가 아닌 물러나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은퇴(銀退)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끔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이’ 때문에 스스로 누워 버리거나 포기하는 우리네 인생을 볼 때 100세 노인 알란은 희망 같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