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신과 인간의 합작품, 카파도키아의 풍물을 찾는 여정이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아침 9시50분 출발 예정이던 터키항공이 40여분 지연되는 바람에 11시50분에 카파도키아 여행의 관문인 카이세르 공항에 착륙했다. 예약했던 호텔 리무진을 타고 1시간여를 달려 카파도키아 비경 지역 내의 우치히사르에 있는 카파도키아 케이브 리조트 스파 호텔(CCR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위치나 시설, 서비스 면에서 완벽했다. 동굴 호텔의 묘미가 가득 차 있고 밤에는 온돌식으로 바닥에 불을 넣어주기도 했다. 과연 고품격의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 지구를 떠나 우주선을 타고 수십광년 떨어진 행성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주변을 볼 때마다 눈이 쉴 틈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 외계인들이 보이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게까지 하게끔 한다.
체크인 후 호텔 바로 뒤편에 있는 우치히사르성(UCHISAR Castle)에 걷거니 뛰거니 하면서 한 달음에 올랐다. 히타이트 시대부터 천연요새였고 비잔틴제국이 아랍 세력에 대항할 때도 요새로 쓰였던 곳이다. 우치히사르성의 정상에 서니 카파도키아 전경이 사방으로 한눈에 펼쳐진다. 신의 기예를 뛰어넘는 자연의 조화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인간의 알량한 필력으로 어떻게 이 대자연의 조화로움을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쯤에서 풍광묘사의 붓을 놓기로 한다. 붓을 던지고 나니 어쩐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한 바탕 울고 싶은 심정이 북받쳐 오른다. 갑자기 평소 즐겨 읊던 당시(唐詩)와 <열하일기>의 한 구절이 연상(聯想)작용으로 떠오른다.
전불견고인(前不見古人)
후불견래자(後不見來者)
염천지지유유(念天地之悠悠)
독창연이제하(獨愴然而涕下)
앞을 봐도 옛사람 보이지 않고
뒤를 돌아보아도 오는 사람 보이지 않네
천지의 아득함을 생각하니
홀로 서글퍼 눈물 떨구네
중국 당나라 초기의 시인이자 장수였던 진자앙(陳子昻)의 ‘유주대에 올라’는 장부의 웅지와 현실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명시(名詩)이다.
조선 후기의 천재 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탁 트인 천릿길 요동벌을 바라보면서 그 감격을 한바탕 울 만하다고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요동벌에서 산해관까지 1200리 길,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은 마치 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놓은 것만 같아 옛날의 비, 지금의 구름이 오직 푸르고 푸를 뿐이니 한바탕 울어 봄직 하지 아니한가?”
마치 지금의 내 처지와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주변의 풍광도 잊은 채 벌써 이 구절을 몇 번째 되뇌고 있었다.
호텔식당에서 바라보는 황혼녘에 검게 물들어가는 카파도키아 전경, 마치 눈이 덮인 산과 골짜기처럼 변하는 모습이 또 다른 장관이었다. 호텔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나는 여행의 멋과 품격, 인생의 의의와 격조 등에 대하여 카파도키아산(産) 와인 잔을 기울이면서 담소했다.

(左사진제공 : 이석연 변호사)
50여개 기구비행선 이륙, 또 다른 장관
이튿날(2013년 5월12일)엔 새벽 4시에 기상했다. 기구비행선(Balloon flight)을 타기 위해서다. 4시45분 호텔을 출발해 기구비행선 주선사인 ‘레인보우’ 사무실에 집합하여 각자 탈 기구와 파일럿을 배정받고 5시45분경 비행선 출발 현장에 도착했다. 비용은 1인당 150유로(22만원)로 싼 편은 아니다. 내가 탄 비행선은 20명이 승선하였고 5시55분경 이륙했다. 파일럿은 스페인인 아르투르(ARTURO)로 멋진 외모에 능숙한 비행기술을 자랑하는 조종사다. 50여개의 기구비행선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이륙하는 모습은 카파도키아의 장관 못지않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비행기구에서 본 카파도키아 일대는 일생 한번 보고 감탄하기에는 우리의 생이 너무 짧을 정도로 환희의 시간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이 장엄한 풍광을 유창하고 낭랑한 언어로 옷을 입힐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날씨는 흐리고 쌀쌀했으나 그리 추운 날은 아니다. 바람이 좀 불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기구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잠잠해지고 착륙해서도 사위(四圍)는 비교적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구름이 짙게 끼어 일출 장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나 주변 풍광의 수려함에 비추어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파일럿은 과연 베테랑답게 기구의 흔들림이 거의 없이 완벽하게 착륙시켰다. 다른 기구 중 상당수가 착륙 때 크게 요동치면서 탑승자들이 놀라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행시간 45분 포함하여 착륙 후 간단한 칵테일 세리머니를 마치고 호텔에 당도하니 오전 8시다.
조식 후 호텔에서 주선해 준 그룹투어에 참여했다. 점심식사를 포함해 6시간 30분간 진행되는 카파도키아 일대 유명 포인트를 들르는 일정이다. 10시30분 호텔을 출발한 우리팀은 네덜란드인 모녀, 미국인, 인도인 젊은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등 8명으로 구성됐다. 카파도키아 절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설치된 파노라마 전망대 두 곳과 어제 호텔에서 산책 삼아 오른 우치히사르 캐슬을 어제와는 다른 방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 등을 거쳐 괴레메 야외박물관에 당도했다. 날씨는 여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조망 포인트 중 하나인 아우클라르의 ‘오스만 집’에서 구운 땅콩과 호박씨 맛을 보았다. 직접 손으로 호박씨를 까서 먹는 즐거움을 통해 오랜만에 잊었던 젊은 날의 향수가 묻어 나온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는 많은 동굴 교회(암굴교회)와 그 안의 성화(프레스코화)가 있어 초기 기독교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초기 기독교 성지 괴레메 야외 박물관 관람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의 교역 중심지인 관계로 기독교가 일찍 전파되었다. 특히 위대한 신학자 세 명의 고향으로 초대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대(大) 바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방교회수도원의 기초를 닦은 신학자 카이제리의 ‘바실’, 그의 동생이자 신비한 명상적 분위기를 띤 작품으로 유명한 니사의 ‘그레고리’, 그리고 이들의 친구로서 시인이자 웅변가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동굴교회와 수도원이 가장 많은 곳이 괴레메다. 이곳에는 초기 비잔틴 시대부터 13세기 말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걸친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있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은 오스만 제국 말기까지도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로 사용되었다. 석회질의 바위를 파서 만든 교회는 단순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돔과 기둥이 있고 설교를 하는 엡스가 있으며 벽이나 천장에는 프레스코화로 된 성화가 그려져 있다. 괴레메 수도원 입구의 정면에 있는 ‘바위 속의 여자수도원(크를 킬리세)’을 시작으로 ‘성 바실교회’, ‘엠마 킬리세교회(사회 교회)’, ‘성 바르바라교회’ 등의 순서로 둘러보았다. 가이드의 설명보다도 암굴 속 교회의 형태와 벽화가 더 생생한 당시의 상황과 종교적인 거룩함을 말해주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도자기와 카펫 마을로 유명한 아와노스로 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담한 이 소도시 한가운데로 붉은 강이라는 뜻의 크즐으르막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전장(全長) 1355km로, 터키땅에서 발원하여 흑해로 흘러드는 강 중 가장 긴 강이며 이곳 아와노스는 그 상류지역이다. 이곳의 흙은 붉은 빛깔을 띠고 있어 항아리를 빚는 데 적당해서 도공들이 직접 운영하는 도자기 공방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4000여 년 전 히타이트인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지 토기항아리를 굽던 지역이다. 식사장소는 시내 소파호텔 옆에 있는 터키식 전통식당이다. 음식맛이 일품이고 분위기 또한 산뜻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우리 일행은 한 테이블에 앉아 주요리와 음료 등을 각자 취향대로 선택했다. 나는 생선구이를, 아내는 버섯치즈요리를 선택하고 음료는 로컬 레드와인을 시켰다. 분위기와 음식맛이 어우러져 모두는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젊은 미국 부인의 수다가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식사 후 아와노스 근교에 있는 도자기 공방인 베네사 세라믹(Venessa Seramik)에 들렀다. 이 도자기 공방은 아와노스에서도 가문의 전통을 이어온 유명한 공방으로, 공방 주인 조카의 설명 하에 직접 주인 도공 아저씨가 도자기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4000여 년 전 히타이트 민족이 만들었던 대표적인 손잡이가 달린 호른 모양의 큰 와인잔을 흙으로 빚어 완성하는 데 5분도 채 안 걸린다. 능숙한 도공의 장인정신이 엿보였다. 수 대째 가문을 이어 도예에 종사한다는 그가 흙 묻은 손을 추스르기 전에 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여행 중 사진을, 특히 특정인들과 어울리는 연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편인데 이번은 내가 관심이 있는 옛 도자기 관련인데다 장인정신이 우러나오는 도공아저씨의 매력에 끌려 모처럼 한 컷 찍었다.
이어 옆방으로 옮겨, 구운 도자기에 아름다운 채색을 하는 전문 화공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윗층의 아트갤러리에는 터키 전통의 도자기와 타일 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이곳 아와노스의 도자기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즈닉 세라믹 도자기와 타일 작품이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과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즈닉 세라믹은 더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왕의 행차를 담은 20cm×20cm 크기의 평면 이즈닉 세라믹 작품 한 점을 기념으로 구입했다. 해외여행 중 내가 기념품을 산 것은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내가 관심 있고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는 도자기 분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특히 탐구하고 있는 도자기 분야는 중국 도자기의 해외 수출 경로와 현지 도자기에 미친 영향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즈닉 세라믹 도자기
도자기 공방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기암괴석의 열병식이 펄럭거리는 포인트에서 잠시 경관을 감상했다. 낙타, 뱀, 버섯, 손바닥 모양의 바위가 폼을 잡고 있는 가운데, 뒤편에 있는 ‘나폴레옹 모자’ 바위가 그럴 듯하게 보인다. 참 기발한 작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 ‘파보비스’라는 카파도키아 기암괴석 열병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찾았다. 카파도키아를 소개하는 방송 등 언론과 책자에서 단골메뉴로 올라 있는 지점이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알려진 곳보다 무명인 채로 나름의 자태를 드러내는 장소와 지역을 더 좋아한다.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5시, 적당한 귀가 시간이었다. 호텔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시작하려는데 밖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휘몰아치는 광풍과 함께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1시간가량 내리다가 저녁까지 이슬비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적당하게 맑고 개이기를 반복하면서 여행의 흥을 돋우던 날씨가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오자마자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보고 행운을 잡았다고 자평했다. 저녁식사는 역시 호텔의 격조 높은 어제의 그 레스토랑에서 토속 맥주를 곁들여 느긋한 마음으로 들면서 카파도키아 여정의 뜻 깊고 고이 간직하고 싶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