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아이스메어에서 출발한 산악 기차가 종착역인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 다다르자 머리를 짓누르는 압력의 힘이 한층 세졌다. 방법은 인공 동굴을 거쳐 밖으로 빨리 나가는 것. 내부 공기가 부족해 숨쉬기가 한층 더 힘들어서다. 어렵게 밖으로 나가니 영상 5℃의 시원한 공기와 함께 유럽 최대 빙하 알레취가 눈에 들어왔다. 먼 빙하 너머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왜일까. 찌는 여름 태양 아래 영상과 영하를 넘나드는 곳에서 고운 눈을 본다는 것은 여름 알프스만이 주는 묘한 매력일 것이다.

7월10일 금요일(현지 시각) 한국이 10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상 38℃를 넘나드는 폭염 소식을 확인한 뒤, 알프스의 명소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융프라우(Jungfrau)부터 설명해야겠다. 융프라우는 독일어로 젊은 아가씨 또는 처녀라는 뜻이다. 독일어 융(Jung)은 영어의 영(Young)과 같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제네바나 취리히는 수도가 아니다) 주변 알프스 지역은 베르너 오버란트라고 불린다. 이 베르너 오버란트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융프라우다.

기차 타고 올라가는 스위스 최고 명소
융프라우를 찾아가려면 베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인터라켄으로 가야 한다. 인터라켄(Interlaken)은 브리엔츠(Brienz)와 튠(Thun)이라는 큰 호수(Laken) 중간(Inter)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베른에서 출발한 기차는 인터라켄 베스트(West·西) 내지는 오스트(Ost·東)에 선다. 이 중 인터라켄 오스트역은 융프라우 관광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에 가면 하나의 슬로건이 눈에 들어온다.
‘Jungfrau-Top of Europe’
인터라켄에 본사를 둔 융프라우철도운영회사의 공식 슬로건이다.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그린델발트와 라우터부르넨까지 오르는 버니스 오버란트 철도는 융프라우 등정의 첫 시작이다. 여기서 기차를 벵엔알프철도로 갈아타면 종착역은 클라이네 샤이텍이다. 관광객은 여기서 한번 기차를 더 환승한다. 이제 남은 것은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가는 노선뿐. 이 외에도 융프라우철도회사는 그린델발트와 휘르스트를 잇는 곤돌라와 인터라켄 오스트에서 하더 쿨룸을 잇는 하더 철도, 빌더시블에서 쉬니케 플라테를 연결하는 쉬니케플라테 철도, 라우터부룬넨-뮤렌 구간을 운영하는 라우터부룬넨-뮤렌 철도 & 케이블카 등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당당하게 융프라우를 유럽의 정상이라고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알프스 최고봉은 해발 4810m의 몽블랑이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융프라우요흐까지 기차를 타고 오를 수 있어서다. 전문산악인이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유럽 정상급 고봉(高峰)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융프라우 뒤에 붙은 요흐(Joch)라는 접미사는 독일어로 산등성이, 산마루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융프라우산의 산등성이라는 뜻이다.
융프라우요흐는 한 집념어린 사나이의 걸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스위스 ‘철도왕’ 아돌프 구에르첼러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노스페이스(North Face)라고 불리는 아이거 북벽과 묀히 암벽을 뚫고 정상까지 철도를 잇겠다는 꿈을 세운 것이다. 당시 마을에서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융프라우요흐까지 안내해주는 가이드의 입에서도 아돌프 구에르첼러를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미치광이(Crazy Guy)였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력 끝에 인터라켄과 융프라우요흐는 톱니바퀴 철도가 오가는 명소로 바뀌었다.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알프스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알레취 빙하다. 여기서 시작된 알레취 빙하는 17㎞까지 이르며 장관을 자아낸다.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하자 융프라우 정상부를 뒤덮고 있는 빙하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빙하를 뚫고 만든 인공동굴 한 편에는 얼음 궁전까지 마련돼 있다. 양쪽 손잡이를 잡고 묀히요흐 산장 옆 출입구로 나가면 알레취 빙하에서 즐기는 눈썰매와 외줄에 자일을 묶어 빙하 위 200m를 나는 티롤리안이 기다린다. 여기서 반대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알레취 빙하와 융프라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플라테우가 나온다.
융프라우요흐 관광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스핑스라고 부르는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다. 해발 3571m에 조성된 스핑스에서는 융프라우와 묀히, 그리고 그 너머 아이거 북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융프라우요흐까지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오르는 길 또한 지루하지 않다. 맨 아래시점부터 굽이굽이 돌며 조성된 트레킹 코스를 걷는 사람들과 길 중간마다 핀 야생화, 여기에 알프스 빙하수가 산 이곳저곳에 모여 크고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융프라우철도가 전해주는 매력이다.

2. 융프라우요흐까지 오르는 철도 레일은 가운데 톱니바퀴가 있다.
3. 융프라우철도의 시작점인 인터라켄 오스트 역.
4. 융프라우에서 흘러내려온 빙하수가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인터라켄.
스핑스 전망대에서 만년설 알레취를 보다
개인적으로 인터라켄 관광으로 특별한 감흥을 얻기는 힘들다고 본다. 전형적인 관광지이자 융프라우의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매력이 없다. 스위스 명품 시계 매장이 줄지어 들어선 전형적인 관광지다.
어릴 적 즐겨본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등장하는 스위스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그린델발트와 벵엔, 라우터부룬넨을 추천한다. 융프라우철도의 맨 첫 기착지인 그린델발트는 해발 1034m에 위치한 산악마을로 빙하에 의해 움푹하게 패이면서 마을이 생겨났다. 융프라우가 간직한 ‘비밀의 화원’이라는 애칭을 가진 공중정원 쉬니케 플라테는 그 아래쪽에 있다.
그린델발트는 트레킹코스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휘르스트가 대표적이다. 해발 2163m에 위치한 휘르스트까지 가는 길은 스위스의 전통 가옥과 목장, 트레킹코스가 쭉 펼쳐져 있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곤돌라 아래로 보이는 스위스 전통 가옥은 우리로 치면 별장과도 같다. 도시에서 바쁜 생활을 보내는 스위스 사람들은 한번쯤 이곳에 별장 형식의 전통 가옥 하나 갖기를 꿈꾼다는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오로지 자가 발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데도 이곳의 허름한 가옥을 구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린델발트 앞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아이거 북벽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벽이 가로 막고 있는 그린델발트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전기 따위는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휘르스트 정상에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직접 걸어봤다. 이곳은 인터라켄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걷고 싶은 유명 트레킹코스다. 3㎞에 달하는 왕복 2시간 코스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건너편 아이거 북벽의 장관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모이게 만드는 이유다.
숨이 조금 차오른다 싶으니 어느새 바흐알프 호수에 도착했다. 알프스의 만년설을 앞에 둔 파란 호수 물빛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흰색과 파란색이 이리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무작정 걷는 이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길가에 핀 야생화는 그렇게 그 자리에 누군가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참으로 자연스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발걸음을 다시 돌려 휘르스트 정상으로 오니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산 아래까지 곤돌라를 타고 다시 내려가기가 쉽지 않아 정상 2층에 마련된 베르크레스토랑 휘르스트로 향했다. 아이거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데 까마귀 떼로 추정되는 까만 새 무리가 정상 주위를 빙빙 돌았다. 새의 색깔이 까맣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융프라우 만년설 탓이다. 어쩌면 새들은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휘르스트는 트레킹코스로 유명하지만 액티비티 시설도 다양하다. 아래쪽 그린델발트로 향하는 방법의 하나로 정상에서 중간 슈렉펠트 역까지 800m를 외줄 하나 타고 시속 84㎞로 날아가는 휘르스트 플라이어가 있다. 하지만 이날 휘르스트 일대에 광풍이 휘몰아쳐 아쉽게도 휘르스트 플라이어의 짜릿한 매력을 맛보지는 못했다.
대신 선택한 것은 트로티바이크. 중간 보어트 역에서 맨 마지막 종착역인 그린델발트까지 내리막길을 페달 없는 자전거인 트로티바이크를 타고 내려가면서 올라올 때 곤돌라 위에서 본 풍경을 지상에서 그대로 봤다.

2. 휘르스트 일대는 겨울철이면 유명 스키 슬로프로 변한다.
휘르스트-바흐알프 호수 길, 트레킹 천국
인터라켄에서도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는 다양하다. 빅토리아-그랜드 융프라우호텔 앞 잔디광장은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이들의 착륙지점이다. 여름철에는 저녁 6시 넘어서까지 창공에서 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인터라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인터라켄 오스트 역 근처 휘니클러에서 해발 1322m 지점 하더 쿨룸까지 오르는 노선을 추천하고 싶다. 정상까지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10분 내 도착하는 하더 쿨룸은 인터라켄이 왜 두 개의 호수 사이에 들어선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단번에 알게 해주는 곳이다.
스위스에서 11번째로 큰 도시인 튠(Thun)은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도중에 갈 수 있다. 그러나 튠 호수의 푸른 물빛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인터라켄 베스트 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권한다. 2시간 만에 도착한 7월11일 토요일 튠에서는 오르골 축제가 한창이었다. 거리 곳곳은 물론 도시 중앙광장에는 스위스 전통악기 호른과 오르골 연주자들이 짝을 이뤄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청중들의 박수에 맞춰 악기 소리를 들어보니 알프스의 여운이 느껴진다. 소들의 목에 달린 커다란 종만 있으면 알프스 소리의 3박자가 그대로 재현될 듯싶다.

2. 두 명의 연주자가 튠 시내에서 오르골을 연주하고 있다.
3. 융프라우 정상에서 즐기는 액티비티 티롤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