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일본생존전략 한국기업이 배워야

- 일본기업들은 현장을 가장 중요시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 일본기업들은 현장을 가장 중요시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저성장기의 일본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 경제성장기의 일본기업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경제성장기의 일본기업들은 현장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재미난 예로 서울대가 오래 전에 도요타자동차의 최고경영자를 초대해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강연 제목이 ‘현장에서의 도요타 웨이’(Toyota Way at Genba)였다. ‘겐바(げんば)’란 ‘현장’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학생들에게 일본어 겐바가 낯서니 주최 측에 강연 제목을 도요타 웨이로 줄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도요타 쪽에서는 반드시 겐바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원안대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조그마한 에피소드에서 보았듯이 일본기업에게 현장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본기업에 있어서 대표적인 현장은 두 군데다. 하나가 생산현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업현장이다. 생산현장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지만 작업자의 혼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생산은 그냥 한자로 생산이라 표기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어 발음 그대로 ‘모노즈쿠리(ものつくり)’라고도 표기한다.

전후 이 생산현장의 기본적인 사명을 확립한 사람이 지금의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는 기업인의 사명은 생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후 각 가정마다 수도관이 연결돼 모든 가정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던 수돗물을 예로 들면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좋은 물품을 값싸게 생산해 무궁무진하게 공급하는 것이 기업인의 기본 사명이라고 정의했다.

문제는 수돗물처럼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제품을 어떻게 판매하느냐다. 이를 위해 일본기업들이 고안해 낸 방법이 유통의 계열화다. 유통의 계열화란 유통을 담당하는 도매기업이나 소매기업들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만을 우월적으로 판매하도록 만든 시스템을 말한다. 마쓰시타 전기점이 마쓰시타 제품만을 판매하고 도요타 딜러들이 도요타 자동차만을 판매하는 식이다.

이 때 유통을 계열화하고 계열화된 유통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일본기업의 영업이다. 생산과 더불어 또 하나의 현장이 바로 이 영업이다. 생산이 모노즈쿠리라는 일본어로 표현되듯이 영업도 영업의 일본어 발음인 ‘에이교’로 직접 표현할 정도로 일본기업에 있어서는 중요한 현장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빨리 대응해야
오랜 저성장기를 거치면서 일본기업인들 사이에 유행한 농담이 있었다. 연못에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냐는 물음이었다. 1980년대나 버블 때처럼 일본기업들이 한창 잘 나갈 때는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답이었다.

옛날부터 일본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강조해 왔었다. 역사적으로는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일본의 아스카(飛鳥) 시대에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율령으로 만들어 공포한 적이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판매의 신’으로 추앙 받던 도요타자동차의 가미야 쇼타로(神谷正太郞) 사장의 동반성장론도 있다. 그는 “판매점의 번영이 있어야 비로소 생산자의 번영이 있다. 판매점 착취를 통한 번영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통이 여러 기업들에게 공유되면서 ‘동반성장’과 ‘상생경영’이 일본기업의 기본적인 윤리규범으로 정착됐다. 그러나 오랜 저성장은 기업들의 이러한 전통과 윤리규범을 바꿔 놓았다. 장기침체를 버티지 못한 기업들이 자기만 살겠다는 극한상황까지 가게 됐다. 이 때문에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이제는 빠른 고기가 느린 고기를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대답으로 바뀌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자 중의 한 사람인 세븐 아이 홀딩스의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 회장은 “지금 일본기업들에게 조령모개(朝令暮改)가 상식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신뢰를 중시하고 경솔한 판단을 죄악시하던 일본 경영자들이 ‘아침에 내린 의사결정을 저녁에 뒤집는 일’을 다반사처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환경이 급변하니 이러한 환경에 빠르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극한상황은 저성장기에 한국기업들에게도 똑같이 닥칠 것이다. 빠르다는 한국기업들이 지금보다도 더 빠른 스피드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현장대응력·경영능력 동시에 강화
전통적으로 한국기업들은 ‘빨리 빨리’ 정신을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에 대단히 빠른 것으로 인식돼 왔다. 사실 일본기업 중에 빠른 기업으로 소문났던 소고기 덮밥 가게인 요시노야(Yoshinoya)조차도 한국시장에 진출한 뒤 한국 국밥집의 스피드를 당해 내지 못하고 철수했을 정도였다.

요시노야가 운영되는 방식은 이렇다. 고객이 가게에 들어 온 뒤 먼저 자판기에 있는 다양한 메뉴 중에 하나를 골라 점원에게 주문한다. 주문을 받은 점원은 고객에게 차를 내주고 주방에 있는 점장은 밥을 담고 불고기를 얹은 뒤 내 놓는다.

하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한국의 국밥집보다 길었다. 한국의 국밥집은 메뉴를 고를 필요도 없이 고객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아줌마 국밥 하나 주세요”라고 외친다. 그러면 한 아줌마는 반찬을 가져오고 다른 아줌마는 밥에 국을 부어 나른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이런 스피드에 못 이겨 결국 요시노야가 한국에서 철수한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밥집의 스피드는 많은 직원들의 숫자에서 나온다. 반찬을 나르는 직원과 주방의 여러 직원들, 카운터를 보는 직원들이 총 동원돼 이러한 스피드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밥집은 업무의 기계화와 표준화, 매뉴얼화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국밥집을 프랜차이즈 등으로 확대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어렵게 다점포화 하더라도 동일한 스피드와 맛이 나오지 않는다.

일본기업도 저성장기에 이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저성장으로 각 부문마다 인력이 남아돌자 많은 인력을 현장으로 보냈다. 하지만 현장에 인원만 많이 투입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상황 대처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민첩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일본기업들은 우선 현장인력을 대폭 줄이는 작업을 실시했다. 필요하면 설비나 기계화로 작업을 보완하거나 대체했다. 또 소수 정예요원만을 정사원으로 둔 뒤 나머지 인력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워 넣었다.

제조현장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판매현장에서의 변화도 함께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일본기업들은 고객만족을 최고의 기업가치로 여겨왔다. 이러한 가치관은 최고경영자에서 말단 판매원까지 모두 공유됐고 또 실천됐다. 이것이 과거 일본기업 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고객만족이 저성장기에 일본기업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 됐다. 지나친 고객대응이 과잉 서비스와 과잉 만족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성장기 일본기업은 목표 만족도를 설정한 뒤 이것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재의 고객뿐만 아니라 잠재고객까지 고려하며 시장을 보다 넓게 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또 판매현장 직원들에게는 마켓 센싱(Market Sensing) 교육을 강화해 고객과 시장의 움직임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했다. 2001년 마쓰시타전기의 개혁에서 마케팅본부가 새롭게 신설돼 시장 대응력을 강화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의 대응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영자의 경영능력 또한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 앞의 것이 조직의 원심력이라면 뒤의 것이 조직의 구심력에 해당된다.

일본기업의 구심력 개혁은 전통적인 주군경영(主君經營)을 타파하는 데 있었다. 존재만 하고 군림하지 않는 경영자나 현장에 모든 것을 위임한 뒤 기업의 얼굴마담 노릇만 하는 경영자로는 저성장기의 오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성장기에는 기존의 주군형 경영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경영자들이 탄생해 기업을 변혁시켜 나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후지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사장이다.

- 신사업으로 후지필름의 고성장을 이끈 고모리 시게타카 사장.
- 신사업으로 후지필름의 고성장을 이끈 고모리 시게타카 사장.

기업 변혁 앞장선 고모리·스즈키
후지필름은 코닥(Kodak)과 더불어 전 세계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양분하던 회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 내장 휴대폰 등이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필름 수요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사장에 취임한 사람이 고모리였다.

그는 사장 취임과 함께 필름관련 사업을 신속히 구조조정하면서 동시에 신규사업을 새롭게 육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그는 우선 2004년 대대적인 조직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국내에 있던 판매법인과 지점 등을 통폐합하고 생산공장도 재편했다. 이를 통해 7000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그리고 연구개발 부문을 모두 뒤져 활용 가능한 기술과 개척 가능한 신규사업들을 발굴했다. 그 중 하나가 액정필름 사업이었다. 액정필름은 디지털TV와 PC 모니터에 붙이는 필름으로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분야였다. 고모리 사장은 이 사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신규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2006년에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해 필름 관련 인력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또 M&A(인수합병)도 적극적으로 실시해 복사기 회사와 프린트 회사, 의료기기 회사, 의약품 회사 등을 사들였다.

지금 후지필름은 창사 이래 최고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아날로그 필름 위주의 사업도 완전히 개편돼 매출액의 45%가 복사기 관련 사업으로부터 나오고 나머지 41%가 전자 재료나 의료기기 관련 사업으로부터, 13%가 카메라 관련 사업으로부터 나온다. 과거의 주력이었던 사진필름 관련 사업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고모리 사장이 결단형 경영자라면 세븐 아이 홀딩스의 스즈키 회장은 대화형 경영자다. 그는 조그마한 할인점인 이토요카도에 입사해 신규사업을 담당하는 부장이었다. 그때 그는 미국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도입해 일본 내 1등 편의점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세븐일레븐 본사까지 인수해 세계 최고의 편의점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즈키 회장은 시장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조직도를 거꾸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과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 그는 매주 화요일에는 수천 명의 전 사원을 본사에 모아 놓고 회의를 했다. 홋카이도로부터 오키나와까지 전 지역의 영업 담당자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출장비만 연간 수백억원이 든다. 이 회의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전원이 모여 회사의 주요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린다. 특히 이 회의에선 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상품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나 특정 점주를 잘못 관리함으로써 생겨난 실패사례까지 세세히 분석해서 보고하고 공유한다.

-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왼쪽)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왼쪽)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경영의 神 등극한 마쓰시타·이나모리
일본은 전통적으로 사업부제 조직으로 운영돼 왔다. 사업부제란 기업의 각 사업단위별로 조직화해 그 조직 내에 구매와 생산, 판매와 같은 여러 기능을 모두 가지게 하는 조직형태를 말한다.

사업부제 조직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1933년부터 실시한 조직형태다. 이 조직이 다른 일본기업들에게도 전파돼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했다.

하지만 저성장기가 되면서 사업부제의 문제점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업부제의 사업부장은 현재의 제품에 집착해 장기적인 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소홀하기 쉽고, 사업부가 자기중심적으로 운영돼 전사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기업들은 몇몇 사업부들을 통폐합해 사내 컴퍼니로 개편하거나 아니면 아예 독립법인으로 분사화해 자회사로 만든 뒤 이를 총괄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직이 변경돼도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조직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메바 경영이다. 아메바 경영이란 회사의 조직을 아메바라고 부르는 6~7명 단위의 소집단으로 나눈 뒤 각 아메바가 회사 전체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자주적으로 이를 달성해 가는 경영 형태를 말한다.

아메바 경영은 이나모리 가즈오(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이 개발한 제도다. 그는 1959년 벤처기업인 교세라를 창업할 때부터 이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한 뒤 1984년에는 KDDI에 이 제도를 적용해 크게 성공했다. 그를 추앙하는 관련 기업 400여사에 아메바 경영을 전파해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메바 경영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일본항공(JAL) 재건 때다. 지난 2000년 도산 위기에 빠진 일본항공 회장으로 부임한 그는 곧 일본항공 전 조직을 아메바로 나눈 뒤 각 아메바의 목표와 책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를 통해 2년 만에 거대 적자기업인 일본항공을 회생시켰다.

아메바 경영의 확립과 성과로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현대의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리게 됐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사업부제를 활용해 경영의 신에 등극한 사람이 마쓰시타라면 저성장기에 아메바 경영을 통해 경영의 신에 등극한 사람이 이나모리 명예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