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철 마누크리스탈 대표는 42년 동안 ‘유리제작’ 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고 말한다.
- 이민철 마누크리스탈 대표는 42년 동안 ‘유리제작’ 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고 말한다.

7월6일 경기도 이천 마누크리스탈 공장. “와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양한 크기의 컵부터 초록색 꽃병, 작은 유리구두, 부엉이, 알록달록한 무당벌레, 유리시계까지… 화려했다. 특히 투명한 컵은 유독 반짝반짝했다. 보통 컵과는 달라 보였다. 이민철(66) 마누크리스탈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며 놀란 기자에게 설명했다.

“일반 유리컵과는 다른 ‘크리스털(Crystal) 컵’입니다. 반짝거리고 묵직하죠. 또 컵끼리 부딪히면 소리가 경쾌합니다. 예전 TV 광고에서 수십 개의 컵을 가지고 연주한 것을 본 적이 있죠? 바로 이 크리스털 컵을 사용한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할 때 이 컵을 사용하면 좋은 분위기를 낼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건배할 때도 소리가 좋으니까요.”

이민철 마누크리스탈 대표를 만났다. “커피 한잔 하시죠.” 첫 만남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情)이 갔다. 그의 목소리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선배가 베푸는 배려 때문이었을까.

마누크리스탈은 유리·크리스털 제조업체다. 주로 가정·업소용 컵과 그릇, 인테리어용 제품을 만든다. 지난해에는 매출 16억원을 기록했다. 이 대표는 마누크리스탈의 창업자다. 1998년 설립해서 현재까지 17년 동안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가 유리산업에 첫 발을 내디딘 1973년부터 따지면 이 대표의 ‘업력(業歷)’은 무려 42년에 달한다. 어떻게 유리 제작 한 길만을 갈 수 있었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유리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물론 즐거웠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무엇인가 만들고 성취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 즐거움을 준 게 유리였다”며 “이제 유리는 내 일상이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73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유리에 입사했다. 크리스털 생산 파트에서 일했고 이후 과장, 부장, 공장장을 지냈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두산그룹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두산유리가 그 대상에 포함됐다. 이 대표 역시 24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야 했다. “첫 직장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연히 슬펐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을 국내 유리제조 ‘1인자’라고 여겼고, 곧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두산그룹이 ‘생산시설은 매각하지만 브랜드는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청(下請) 생산을 하고, 브랜드 장사만 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두산유리의 브랜드는 ‘박가(PARKA) 크리스탈’. 그룹 오너의 성(박)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이후 두산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았다. 공장장 ‘이민철’이었다. 이 대표는 두산유리의 설비를 매입했고, 그렇게 마누크리스탈이 탄생했다. 1998년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유리 제작은 제가 평생 한 일이고 가장 자신 있는 일입니다. 주위에서 사업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죽어도 공장에서 죽는다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이민철 대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업(業)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 이민철 대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업(業)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매출 ‘제로(0)’에서 16억원으로 끌어올린 비결
이 대표가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 사명은 마누크리스탈이 아니었다. ‘만우유리’였다. 찰 ‘만(滿)’ 집 ‘우(宇)’자로, “집안 나아가 우주를 부와 행복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만우절 유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표는 2004년 마누크리스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선 ‘두산’이라는 안정적인 공급처가 있었다. 당연히 영업 걱정도 없었다. 이 대표는 품질과 생산에만 힘쓰면 됐다. 당시 마누크리스탈의 매출은 5억원가량. 그러나 두산유리와의 끈끈했던 관계가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설마 거래가 끊어지겠어?’라며 반신반의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두산유리가 하청생산업체를 늘리기 시작했고, 2005년 두산유리와 마누크리스탈의 거래가 종료됐다. 마누크리스탈의 매출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5년부터 맨땅에 헤딩한다고 생각하며 거래처를 찾아다녔습니다. 유리 관련 전시회가 열리면 무조건 찾아가 홍보하고, 업계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중소기업청도 내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매출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했고 돌이켜보면 이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06년 이후 국내시장에 와인 열풍이 불었다. 이 대표에게 또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와인잔’이다. 이 대표는 한국 곳곳에 있는 수입 와인업체를 찾아다녔다. 업체가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 들어가는 와인잔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와인업체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것은 마누크리스탈의 뛰어난 유리·크리스털 제작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며 “이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면서 업체가 지닌 네트워크(와인바, 레스토랑 등)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바닥을 헤매던 마누크리스탈의 매출은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7억원을 찍었고, 지난해에는 16억원을 기록했다.

마누크리스탈은 2007년부터 중국에 주문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 대표는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장설비를 매각하고 생산을 중국으로 돌렸다”며 “정교한 제품을 만들 때는 중국에 직접 가서 하나하나 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공장은 간단한 가공이 가능하고, 물류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커피 붐’도 이 대표에겐 훈풍이었다. 그는 지난해 스타벅스코리아와 협력한 사례를 설명했다. “지난해 스타벅스코리아와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15주년 기념 글라스’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 등 12만 개의 스타벅스 컵을 만들었습니다. 이 컵은 전국에서 한정 판매됐습니다.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는 “이런 협력 프로젝트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리제작 체험관 만들고 싶어”
이 대표에게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요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전문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42년 동안 ‘유리제작’ 한 길을 걸어온 그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답이었다. 이 대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업(業)을 선택해야 한다”며 “그래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직을 이끄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리더가 전문성을 지녀야 조직원을 이끌 수 있다. 가르칠 게 없는데 후배들이 따라오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믿음과 신뢰도 강조했다. “과거 두산유리에서 일할 때 공장장이 저를 믿어줬어요. 저 역시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제가 공장장이 됐을 때도 똑같이 조직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말미 이 대표는 “유리산업은 단순 제조가 아닌 ‘예술’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유리 공장도 100% 자동화하기 어렵습니다. 창의성, 다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해외 유리제조업체를 보면, 그들은 최고의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유리산업을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는 이 대표가 바라는 바람과 회사의 미래와 일맥상통한다. “마누크리스탈 이천공장에 제조설비를 작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유리·크리스털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직접 체험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미 해외에선 ‘핸드메이드 투어(Handmade tour)’로 인기가 많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평생 한 것(유리제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아가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제가 42년 동안 유리와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고 놀랍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 이민철 대표는…
1949년생. 1973년 서울대(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두산유리에 입사했다. 1997년 두산유리에서 나와 1년 후 크리스털·유리제조업체 마누크리스탈을 창업했다.  업력(業歷)만 42년에 달한다. 업계에서 유리제조 ‘1인자’로 통한다.

이천(경기도) =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사진 임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