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도레이는 한국법인 도레이첨단소재를 통해 경북 구미 3공장에서 ‘꿈의 신소재’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의 엔지니어가 특수필름을 살펴보고 있다.
- 일본 도레이는 한국법인 도레이첨단소재를 통해 경북 구미 3공장에서 ‘꿈의 신소재’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도레이첨단소재의 엔지니어가 특수필름을 살펴보고 있다.

베어링(축이 회전 운동을 할 때 마찰 저항을 작게 해 운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계요소)을 전문으로 만드는 일본기업 ‘니들베어링’은 올 초 니들베어링코리아(NSK)를 세우고 한국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니들베어링코리아가 한국산업단지공단과 계약을 맺고 토지를 매입한 곳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화리에 위치한 천안5산단이다. 천안5산단은 기본 계획 상, 고도(高度) 기술을 보유한 첨단 부품·기계, 화학분야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천안5산단의 부지면적은 33만6200㎡이다. 이 중 니들베이링코리아는 전체 규모의 25.2%에 해당하는 8만~9만㎡ 토지를 매입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계 기업이 한국에 생산기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시한 것은 △환율 △전력·도로 등 인프라 △판로 확대였다. 하지만 최근 엔화 약세로 통화기조가 바뀌면서 환율이라는 변수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곳일까.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계 기업 관계자는 “엔저 효과와 같은 단기변수만을 보고 해외 진출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면서 “최근 한국 진출을 선언하는 기업들은 대개 4~5년 전부터 진출을 준비했던 곳들”이라고 말했다. 박종용 한국산업단지공단 차장은 “현재 일본 내 전력다소비 기업들의 사업 증설은 사실상 막혀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인근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의 절반 수준인 한국의 전기료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 LG 등 가전기업과 현대차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64만1000㎡ 규모로 조성된 파주 당동공단만 해도 입주기업 6곳 중 5곳이 일본계 기업이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인근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에 관련 제품을 납품한다. 세계자동차 부품 생산 1위 기업인 덴소가 경기도 의왕에 연구개발센터를 건립한 것도 인근 현대차그룹 연구센터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덴소는 의왕시 포일 인텔리전트 타운지역 2만586㎡ 부지에 건축 연면적 7197㎡ 규모로 지상 4층과 2층 건물 2개동(棟)을 완공, 운영하고 있다. 경북 구미와 충남 천안에는 휴대폰 및 TV 액정디스플레이 관련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기술 중시·투명 경영, 한국화 성공비결
한국 진출에 성공한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도레이첨단소재도 경북 구미에서 시작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삼성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새한과 일본 도레이(Toray)가 지난 1999년 합작으로 설립한 소재기업이다. 그러나 이듬해 새한이 워크아웃으로 어려움을 겪자 지난 2008년 도레이는 새한 지분을 모두 인수,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후 지난 2010년에는 사명까지 도레이첨단소재로 바꿨다. 구미 1, 2공장이 도레이새한 시절 지은 곳이라면 3공장은 도레이첨단소재가 지난 2013년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를 생산하기 위해 신설한 곳이다. 주로 일본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탄소섬유는 무게가 가볍고 강도는 세서 우주선, 항공기, F(포뮬러)-1 경주용 자동차 등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강철의 20% 무게면서 강도는 10배에 달한다. 도레이는 올 4월 생산규모를 2500톤으로 늘리는 증설 공사까지 완료했다. 도레이가 일본 이외 국가 중에서 탄소섬유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미국, 프랑스와 우리나라 등 3곳뿐이다.

일본 도레이는 한국을 핵심 생산거점으로 여긴다. 현재 도레이첨단소재는 전북 새만금지구에 PPS(폴리페닐렌 설파이드)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오는 2018년까지 3000억원을 들여 짓는 도레이 PPS 군산공장에서는 세계 최초 PPS 수지와 컴파운드, 원료인 황화수소나트륨, 파라디클로로벤젠 등이 생산된다. PPS수지는 강도, 내열성이 강한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자동차 엔진, 모터 주변 및 전기 전자 부품으로 많이 쓰인다. 이밖에도 현재 도레이는 구미 5국가산업단지 내 4공장을 준비 중이다.

아사히(朝日)글라스는 2010년 11월 구미에 연간 10%씩 수요가 커지는 TFT-LCD(박막 트렌지스터방식 액정디스플레이)를 제작하기 위해 1억5000만달러를 들여 ‘무알카리 유리 기판’ 생산시설을 확충하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현대, 기아차와 디스플레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삼성, LG전자에 제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일본 도쿄(東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사히글라스는 세계 평판유리 시장의 15%를 점유한 회사로, 자동차유리(30%), CRT유리(30%), PDP유리시장의 시장점유율이 90%를 넘는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효과를 보기 위한 측면도 있다. 현재 미국, 일본이 참여하는 TPP(환태평양경제협력체) 구성이 미 의회 반대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으로는 한국에서 부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판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낫다는 판단이다. 대표적인 화학기업인 스미토모화학은 지난 6월 “자회사 SSLM이 건립, 운영하는 형식으로 전기자동차(EV)용 중대형 2차 전지에 쓰이는 분리막 생산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주 거래처인 파나소닉을 통해 대형 전기자동차 메이커인 미국 테슬라모터스에 납품하기 위해 공장을 신설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SSLM은 지난 2010년 삼성과 스미토모(住友)화학이 사파이어 웨이퍼 생산을 위해 설립했지만 지난 2013년 삼성이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지금은 100% 스미토모화학 계열사로 들어갔다. 이외에도 스미토모화학은 지난 1991년 동양화학과 동우반도체약품을 공동으로 세웠지만 1999년 사명을 동우화인켐으로 바꾸고 자회사로 편입했다. 도레이첨단소재 역시 지난해 3월 옛 웅진케미칼(現 도레이케미칼)을 인수, 현재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일본인 특유의 세밀한 경영은 우리 기술자와 어우러지면서 좋은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도레이의 경우 매월 직원이 참여하는 월례조회를 통해 전월 경영성과를 직원들에게 모두 밝히고 있다. 김용진 도레이첨단소재 차장은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인위적인 인력조정을 하지 않은 것이나 기능직에 대한 정년 보장 등이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