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너 비(妃)를 죽인 지뢰’.
지뢰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 사이에선 정설로 통하는 ‘썰’이 있다. 대인지뢰 반대운동을 활발히 벌이던 영국 다이애너 황태자비가 갑작스럽게 죽은 배후에 군수산업체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 1997년 6월 12일 다이애너비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행사에서 대인지뢰를 쓰지 말자는 연설을 했다. 두 달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연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 사고로 사망했다. 인권 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을 활발히 벌이던 그녀가 죽기 직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운동이 바로 대인지뢰 사용금지 운동이었다.
2천원이면 지뢰 1발 만들어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지뢰사고는 아프리카의 르완다나 소말리아에서 일어나는 먼 얘기로 느껴질지 모른다. 최근 일어난 북한의 지뢰 테러는 지뢰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초기의 지뢰는 금속 재질이었다. 1977년,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플라스틱 지뢰가 개발됐다. 플라스틱 지뢰는 1978년부터 전 세계에 보급됐다. 북한이 이번에 매설한 지뢰는 목함 지뢰, 즉 나무로 만든 지뢰다. 플라스틱 지뢰보다도 생산 단가가 더 낮다. 구소련에서 생산하던 지뢰를 가져다가 본떠서 만들었다. 나무 필통처럼 생겼다. 10kg 중반대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면 터진다. 전문가들은 미화 2~3달러만 들이면 목함 지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목함 지뢰의 일련번호는 PMD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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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목함 지뢰. 나무 필통 모양이다 (합참 제공) |
목함 지뢰를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 정도다. 나머지 나라는 대부분 플라스틱 지뢰를 쓴다. ‘플라스틱’. 이것이 지뢰 사용 문제를 꼬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플라스틱 지뢰는 탐지가 불가능하다. 탐지가 거의 완벽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플라스틱 지뢰 개발 3년 후인 1980년에야 알려졌다. 그래서 최소한 지뢰 내부의 ‘공이’라도 금속으로 만들자는 합의가 한때 국제적으로 이뤄졌다. 애초부터 상대를 살상하기 위해 만드는 무기에 ‘도의적’인 제한을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터...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80여 개국에 1억 6천만 발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이 수치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지뢰 매설 숫자는 저절로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밟아서 터져야만 없어진다. 지뢰는 인기 있는 거래품이기도 하다. 한 해에만 1천만발이 넘는 지뢰가 거래된다. 이 중 .백만~6백만 발의 지뢰가 매설된다.
UN에는 지뢰 제거만을 다루는 조직이 있다. UN의 한 해 예산이 약 51억 달러. 이 중 지뢰 관련 예산이 .억 달러, 지뢰제거와 지뢰로 인한 희생자 구제를 위해 쓰인다. 매년 제거되는 지뢰는 20만 발 가량이다.
한반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방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한 지역에 매설된 지뢰는 112만 .천발이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휴전선 인접 지역뿐 아니라 후방의 각종 군사기지 부근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전세계 지뢰 밀집도 1위 지역은 DMZ
문제는 지뢰가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지표에서 약 10cm 아래에 매설하는 지뢰는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오면 유실될 수 있다. 올해엔 뜸했지만, 홍수 후 엉뚱한 곳에서 지뢰가 발견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이유다. 어디에 얼만큼의 지뢰가 묻혀 있는지 아직도 파악이 안된 곳도 여러 곳이다. 국회가 지난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최소한 209곳이 ‘미확인 지뢰지대’다. 지뢰가 묻혀 있는 건 아는데, 어느 지점에 몇 발이나 묻혀 있는지 정부도 누구도 모른다는 말이다.
부산 태종대 해역은 대인지뢰 때문에 아예 폐쇄가 된 경우다. 태종대에서는 대인지뢰 뿐 아니라 대전차지뢰도 발견됐다. DMZ 지대는 전 세계에서 지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말 그대로 지뢰밭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몇 번이나 DMZ 평화공원 조성을 언급했다. 지뢰 전문가들은 이를 ‘꿈같은 얘기’로 평가한다. 현재 같은 속도라면 지뢰제거에만 500년 가까이 걸릴 텐데 언제 터를 닦아 공원으로 만드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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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영 광운대 국방융합과학기술연구소장 |
“지뢰 탐지 기술 개발은 전 세계적인 이슈예요. 플라스틱은 비금속물질입니다. 금속탐지기는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눈을 돌린 게 폭약입니다. 대인지뢰의 경우 25~28그램의 화약이 들어가요. 폭약을 찾는 기술이 연구되어 온 이유예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폭약 속에는 질소가 들어있지요. 질소를 찾는 겁니다. 예를 들면 NQR방식(핵사극자공명), TNA방식 등이 있어요.
미국에서 연구한 기술로 엑스레이 이미징 테크놀로지라는 기술이 있어요. 쉽게 생각하면 공항 검색대에 있는 ‘알몸 투시기’가 그겁니다. 이게 원래는 지뢰를 찾기 위해 개발했는데 현장에서 쓸 수가 없는 걸로 판명됐어요. 그러니 용도를 공항 검색대용으로 바꾼 겁니다. 대당 약 100억 원에 팔았지요. 한국도 .대를 들여와서 인천공항에 1대, 김해공항에 1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실용성이 없어요. 너무 비싸거나, 이동식으로 개발이 안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만 해도 산악 지형이 많은데 쉽게 옮길 수 없으면 어떻게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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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 탐지를 하는 모습. 사진에 등장한 금속탐지기로는 기존에 널리 쓰이고 있는 플라스틱 지뢰를 찾아낼 수 없다. |
외국에서는 개나 쥐를 이용해 지뢰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김 교수는 지뢰 탐지견 캠프를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국제적인 지뢰 관련 단체들의 본부는 모두 캄보디아에 있어요. 크메르 루주 정권이 국토 전역을 지뢰밭으로 만들었거든요. 그 나라 인구수보다 많은 지뢰가 아직도 깔려있으니까요. 캄보디아에 있는 지뢰 탐지견 훈련 캠프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지뢰 탐지견을 이용한 탐지도 결국 폭약을 찾는 거예요. 후각을 이용하겠다는 거죠.
예전에는 독일산 셰퍼드를 이용했는데 이제는 몸이 작고 가벼운 견종을 훈련시킵니다. 예전 지뢰는 약 25kg의 압력이 가해져야 터졌는데 중국산 지뢰는 10kg만 넘어도 터지는 거예요. 아이들이 밟아도 터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셰퍼드가 밟아도 터지는 거죠. 지금은 코커스패니얼 같이 체구가 작은 견종을 훈련시켜요. 지뢰 탐지견을 훈련시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려요. 비용도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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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독일산 셰퍼드를 지뢰탐지견으로 훈련했으나, 현재는 체구가 작은 견종을 이용한다. |
.천 원짜리 ‘스텔스 지뢰’로 한국사회를 흔들어 놓는 재미를 본 북한은 앞으로도 지뢰를 애용할 터다. 지난 2010년에도 홍수 후 북한에서 목함 지뢰가 수십 개 떠내려 왔다. 수거된 것만 82발이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흘려보낸 것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세계적인 ‘지뢰밭’ DMZ와 지뢰 테러분자들을 지척에 두고 우리 군당국 및 정부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는 걸까. 국방부는 지난 2013년 ‘지뢰제거업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일정한 자본금과 기술인력 및 장비를 갖춘 지뢰제거업 희망자가 국방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지뢰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이 법안은 이렇다 할 논의도 없이 국회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민간 차원의 지뢰 탐지 연구도 자연스럽게 전면 정지된 상황이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리 병사들은 .천원 짜리 지뢰로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