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보호자가 걱정 않는 요양병원 건립 꿈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김철수 원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킴스패밀리의원, 한의원’, ‘건강백세 김철수 연구소’, ‘치매예방 치료’ 그리고 ‘양·한방의사 가정의학과 전문의’라는 소개가 나란히 적혀 있다. ‘양의학과 한의학을 접목해 건강한 100세 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의지와 꿈이 엿보인다.
김 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마쳤다.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1기다. 그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서였다.
“고등학교 때 사회 선생님께서 의대를 졸업하면 미국에서 인턴으로 취직할 수 있는데, 연봉이 자그마치 3만 달러라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엄청난 돈이었죠. 미국에도 가고, 큰돈도 벌고. 그때 의사가 꿈이 됐죠.”
그는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달려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그때부터였다. 의대에 들어가서도 쉴 새 없이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레지던트 때는 하루에 2시간도 채 눈 붙이기 힘들었다. 수술실에서 보조하는 어시스트로 들어가는 날이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서 있어야 했다. 가정의학과는 수련 기간 동안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위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임상과목분야까지 광범위하게 섭렵한다. 눈에 드러난 질병만 보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항상 환자 몸 전체를 대상으로 진찰하도록 훈련받는다.
과로로 병원 운영 쉬면서 한의학 공부
레지던트를 끝마치고 군의관으로 근무한 뒤 지금의 자리에서 ‘연세패밀리의원’ 문을 연 것은 1988년. 바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근처에 있던 올림픽선수촌 5500가구, 송파·강동구 주민들이 그의 고객들이었다. 매일같이 수백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그를 찾았다. 그래도 의사라는 직업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일이 좋았다. 하지만 병원을 연 뒤 정작 자신의 건강관리는 못했다.
“하루 보는 환자가 200~300명에 달했습니다.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신호가 왔어요. 그렇지만 도무지 쉴 수 있는 짬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어지러워 환자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죠. 계속 앉아있다 보니 움직임이 부족해 요로결석도 생겼어요. 통증이 너무 심해 수술을 했지만 바로 다음날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만나려고 찾아온 환자들에게 아파서 진료할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됐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고 그들의 건강을 돌보는 만큼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는 고민 끝에 병원 운영을 쉬기로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옆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도 그의 뜻을 따랐다. 그러면서 한의학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환자와 친밀한 신뢰관계를 쌓으면서 종합적인 건강상의 요구를 다루는 가정의학과는 한의학과 닮았다. 잠시 병원 일을 접어두고 건강도 챙길 겸 쉬려고 했는데 이참에 한의학 공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1995년 경희대 한의대에 들어갔다. 잠재의식 속에 한의학에 대한 동경(憧憬)도 있었다.
한의학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사실 잠을 많이 자는 게 가장 좋았어요. 즐겁게 공부해서 그런지 피곤한 줄 몰랐고요. 레지던트 생활 이후 원 없이 잠자는 게 소원이었죠.”
그가 한의학 공부를 마친 것은 2000년. 한의대를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진료를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가 한의사인 것을 모르는 단골도 많다.
그는 환자를 보면 양의학으로 치료할지, 한의학으로 할지, 아니면 동시에 치료할지 먼저 생각한다. 열이 심한 경우나 골절이 됐다면 당연히 양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양의학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면 한약 치료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가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눈을 뜬 분야가 ‘침(鍼)’이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도 한몫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팔이 골절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달간 했던 깁스를 풀었는데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침을 맞았더니 자유롭게 움직였습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부러진 팔을 고친 것은 양의학이고, 굳은 팔을 풀어준 것은 한의학이었다. 양의학으로 못 고친 병을 한의학으로 고치고, 한의학으로 못 고친 병을 양의학으로 고친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의학적 지식이 접목됐을 때 치료에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다.
“양의학도 중요하고 한의학도 중요합니다. 양·한방 통합치료를 하면 더 빠르고 좋은 치료를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감기는 기가 허(虛)하고 몸이 차가워 오는 증상입니다. 그 땐 몸을 따뜻하게 하고 덥혀주는 약을 쓰면 편안하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단계를 지나 목이 붓고 열이 심해지거나 기침 등으로 증상이 악화되면 양의학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때로는 양약으로 잘 낫지 않는 경우 한약을 겸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약을 처방할 때는 같은 증상이더라도 환자의 몸 상태와 체질에 따라 약을 조금씩 달리 쓴다. 환자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 모두가 양·한방을 접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어려운 의학용어를 배제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한의학적으로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입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자연현상의 변화와 닮았다는 거죠. 그러므로 자연현상에 빗대 비유법으로 얘기하면 환자들도 잘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에는 검사에서 드러난 것이 아닌 그 이면을 이해하는 다른 시각이 있습니다. 추정적인 생각과 직관에 의존합니다. 인간은 지구라는 환경 즉 대우주에 적응하며 수만 년을 살아온 소우주(小宇宙)입니다. 그러니 자연에 순응하는 게 건강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독감 예방주사처럼 치매도 미리 대비해야
김 원장은 건강 100세의 비법은 건강한 습관을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소한 이것이 ‘비방(秘方)’이다. “누구나 100세 시대를 꿈꾸죠. 꿈을 현실로 이루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렇게나 몸을 혹사시켰던 사람은 의학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건강한 100세’를 보장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르게 먹는 습관과 열심히 사는 것, 그리고 적당한 휴식과 머리나 몸에 해로운 것을 멀리하고 하루하루를 반성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100세 시대가 열렸지만 아름답게 죽기는 쉽지 않다. 바로 치매(癡)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머리가 나빠진다. 머리가 나빠진 정도가 심해져 일상생활에 장애가 상당해지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그는 트럭의 타이어에 비유해 치매를 설명했다.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달리는 트럭의 타이어가 튼튼해 보이지만 바로 옆에서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인생이 그래요. 10만㎞를 탈 수 있는 타이어라도 4~5만㎞가 넘으면 닳기 마련이죠.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어떤 길을 달렸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더라도 내부에는 금이 갔다고 봐야 합니다. 미리 점검하고, 보수하면 더 오래 탈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간 펑크가 나 바로 주저앉아 버리죠.”
김 원장은 “건강한 40~50대 가운데 약 80%가 이미 치매를 향해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뇌 건강을 지키려면 독감에 걸리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치매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알츠하이머 치매고 다음이 혈관성 치매다. 치매에 걸리면 직장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지만 가족력이 있으면 65세 이전 젊은 나이에도 걸릴 위험이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초기에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더 이상의 악화를 막을 수도 있고, 때로는 완치도 가능하다. 반면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는 약간 호전되거나 진행을 조금 늦출 수 있는 정도다.
킴스패밀리의원, 한의원에서는 ‘청명 프로그램’이라는 치매 특화 클리닉을 운영한다. 치매에 걸린 장모를 치료한 김 원장의 경험과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한 치매 예방과 치료 프로그램이다.
“장모님은 6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치매가 의심돼 치매약을 복용해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봄부터 갑자기 증상이 심해지셨죠. 제 아내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하지만 지금은 경로당에서 친구분들과 스스럼없이 노실 정도로 좋아지셨어요.”
청명 프로그램은 치매를 예방하고 증상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게 목표다. 이미 치매가 진행된 상태라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욕설이나 폭력 등 문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덜 끼치는 ‘예쁜 치매’가 되게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청명프로그램은 일반 진료와 달리 오랜 시간 상담이 필요하므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그는 “양의학으론 신경전달물질을 개선시켜 치매의 증상호전과 진행을 더디게 하고, 한의학 통해선 뇌세포를 튼튼히 하고 기(氣)를 보하는 처방으로 건강한 뇌세포로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쓴다”며 “양·한방의 접목으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모의 치매를 치료하면서 느낀 게 많다. 요양병원도 그 중 하나다. “장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하는데 적당한 곳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치매환자가 갈 곳이 없더군요. 치매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닙니다.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어요. 치매 치료와 재활이 동시에 이뤄지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은 요양병원을 세울 계획입니다.”
그는 경기도 평택에 치매 환자의 가족이 마음 편히 환자를 맡길 수 있는 요양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치매 환자나 그 가족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병원 설립 목표다.
예방이 최선, 주치의 제도 잘 활용해야
치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은 예방이 최선이다. 조기발견이 차선이고, 치료는 차차선이다. 그는 “한의학에는 진단되기 전의 질병상태인 ‘병이 아니다’는 의미의 ‘미병(未病)’을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의술이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원장은 마음에 드는 동네병원을 정해 자신의 주치의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한다. “질병은 한 가지 요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깁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치의가 필요한 이유죠. 주치의에게 1차 진료는 물론 평생 병력 관리를 받을 수 있어요. 언제든지 개인이나 가족의 건강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나이가 들수록 주치의는 더 필요하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을 때 더 그렇다. 계속해서 의사가 바뀌는 것보다는 한 명의 의사가 환자의 증상과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와 단골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 듯 해외여행 중에 국제전화로 건강 상담을 하는 환자도 있고, 거의 매일 찾아오는 70대 할아버지도 있다. 병원이 자기집 안방처럼 편하다는 환자도 있다. 김 원장은 그들에게 잔소리 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그만큼 그들은 더 건강해진다.
김 원장은 이렇게 사랑방 같은 병원을 사랑한다. “저를 믿고 찾아오는 가족 같은 환자들에게 항상 감사해요. 대부분 20년 이상 된 단골 환자 가족들이죠. 어린아이였던 환자가 결혼해서 아기를 안고 오고, 부모와 같이 3대가 병원을 찾기도 해요. 그 가정의 주치의로 사는 생활이 한없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참고 : <동네 병원 의사 김철수>(김철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