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마트 벽에서 종종 만나는 문구가 있다. “딱 1주일간 합리적인 가격으로 모십니다.” 아니 그럼 나머지 358일은 ‘비합리적인 가격’에 모신다는 소린가? 이런 황당한 경우는 또 있다. 먹거리 X파일의 착한식당! 이 세상 식당들이 얼마나 안 착하면 착한 식당을 뽑겠는가! 그것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데리고 말이다. 이 프로그램에 초기에 투입된 덕분에 제작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이들도 ‘착한 식당’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나쁜 식당의 기준을 먼저 찾자고. 꽤 긴 시간 토의가 이어졌고 결론이 내려졌다. 맛없고, 비싸고, 더럽고, 불친절하고, 재료 속이는 식당. 그 덕에 착한 식당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이 생긴 셈이다.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원산지 속이지 않는 식당. 나중에 조미료 사용 여부가 보태졌지만 초기에는 그랬다. 착한 식당에 선정되고 나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는다. 근 한 달 가까이 손님들이 몰려든다. 허나 대부분은 기념으로 끝난다. 그리 대중적인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는 소위 대박의 천운(天運)을 받는다. 눈치들 채셨겠지만 오늘은 착한 식당이 주인공이다.

한 달 전으로 시계 침을 돌린다. ‘띠리리 디리리~’ 무한도전 ‘쩐의 전쟁편’에 출연했던 창업 컨설턴트이자 후배 녀석의 전화다.

“형님, 원 플러스 삼겹살 드셔보셨어요?”

마치 국보급 문화재라도 발굴한 양 의기양양이다. 이틀 뒤 그를 따라 나섰다. 서울 문래역 홈플러스 뒤 식당가를 ‘로데오’라 부른다. 패션타운으로 개발된 덕에 이리 근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역에서 내려 꽤 걸었다. 치킨, 양 꼬치, 부대찌개, 생맥주, 감자탕…. 종합선물세트 같다. 상가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착한 삼겹살, 원래 이름은 ‘월화고기’다. 고기를 꼬챙이 꿰어 구운 음식을 ‘적(炙)’이라 한다. 차례 상에 올리는 산적도 이 ‘적’자를 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풀어보니 ‘월(月)’과 ‘화(火)’ 두 자가 보였다. 그래서 단박에 월화고기라 이름 지었단다. 재치 있는 해석이다. 식당 앞에는 큼직한 현수막이 두 장 걸려있다.

‘돼지고기도 1+ 등급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14일 숙성, 3.5cm 두께. 지금까지의 돼지고기는 잊어라’

호기(豪氣)가 대단하다. 맛을 보기도 전에 기에 눌린다. 난 이런 자신감이 좋다. 당당하다는 건 꿀릴 것이 없다는 소리다. 최고의 재료와 장사 DNA로 무장한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오후 6시가 되려면 아직 15분이나 남았는데 만석이다. 주인장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모양이다. 메르스로 초토화된 외식업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가장 먼저 고기 숙성고가 눈에 들어온다. 정육점의 그것과 똑 같은 붉은색 조명이다. 대신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박스에 적힌 브랜드와 등급이 선명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코를 찌른다. 질 좋은 고기는 굽는 향이 일품이다. 내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꼬르륵’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데 고기가 다가온다. 스테인리스 접시 위에 담긴 고기색이 선정적이다. 어라! 이건 뭐지?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스티커가 접시에 붙어 있다. 원산지와 무게가 적혀 있다. 신뢰다.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숙성고, 육색, 중량 확인. 주인장 전준형은 이미 손님들의 뇌를 설득한 상태다. 이런 장치나 설계가 없으니 의심을 하는 거다. 돌아서는 종업원을 무심코 바라봤다. 티셔츠 등에 이렇게 적혀있다.

- 월화고기에는 ‘돼지고기도 1+ 등급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라는 자신만만한 문구가 걸려 있다.
- 월화고기에는 ‘돼지고기도 1+ 등급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라는 자신만만한 문구가 걸려 있다.

돼지고기에 등급 매기는 자신감
“육질, 육즙, 맛, 건강, 위생. 무엇 하나도 포기 없다!”

연기가 날 정도로 뜨거운 불판에 삼겹살을 올린다. ‘치지지직~’

고기가 약간 덜 구워진 상태지만 참을 수가 없다. 월화고기의 시그니처 메뉴인 파김치와 함께 입으로 옮긴다. 뜨끈한 열기가 확 퍼졌다가 이내 사라진다. 조심스레 고기를 깨문다. 크래커 같은 표면과 달리 속살은 촉촉하다. ‘혈중 삼겹살 농도’가 높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소하다는 표현이 부족하다. ‘꼬소하다’라 적고 싶다. 지난 수년간 먹었던 돼지고기 중 단연코 으뜸이다. 삼겹살이 이 정도니 항정살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문래동 로데오 거리의 전설을 만든 전준형 대표는 올해 39세다. 23세에 장사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16년차 중견이다. 그 시작은 일본의 나고야(名古屋)였다. 제대 하자마자 다니던 학교를 포기하고 연수를 떠난 게 인연이 되었다. 아르바이트 하던 가라오케의 2부 영업권(자정 이후의 영업)을 따냈다. 유학생으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비웃었다.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

“일본 땅에서 한국 학생이 가라오케를?”

영업권을 따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와 밴드를 구했다. 가라오케의 음악은 ‘기계가 만드는 음’이라는 것에 착안했다. 당시 나고야의 가라오케는 점잖은 중년들의 2차 장소였다. 전준형 대표는 문화를 바꿔보고 싶었다. 라이브 밴드를 이끌고 나고야에 재입성한 전 대표는 ‘DANCE BAR(댄스 바)’라는 콘셉트를 만들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아저씨들의 아지트’라 기피하던 젊은 층이 대거 몰려들었다. 나고야의 밤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전준형 대표가 주목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그는 손님을 읽는 데 집중했다. 단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손님들의 신청곡을 암기하고, 기념일을 챙겼다. 성공 비결이 고작 ‘신청곡’이야? 웃으실 분도 있을 줄 안다. 하지만 장사의 신들은 교집합이 있다. 손님 대신 내가 번거롭기를 자처한다. 주인이 피곤하면 손님이 행복하고, 주인이 행복하면 손님이 고달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남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밤새 억울하고 속상해 하는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주었다. 원가 계산 하지 않고 원 없이 퍼줬다. 그런 그의 진심은 통했다. ‘민나노 도모다치(모두의 친구)’라는 별명과 함께 10억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딱 4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종잣돈으로 일본 중고차 중개업을 하고 싶었다. 나고야에 든든한 지원군들도 만들어 둔 상태였다. 하지만 법이 바뀌며 방황이 시작된다. 조급함이 화를 불렀다. 나고야의 코코이치방처럼 근사한 프랜차이즈를 단기간에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브랜드를 카레하우스로 바꾸었지만 시작은 ‘투리(카레)’였다. 자금도 있겠다, 초반부터 직원을 20명 가까이 고용하며 공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가맹점이 10여개까지 늘었지만 결국 망하고 만다. 욕심이 앞선 것도 원인이지만 맛을 너무 몰랐다. 건강한 음식이면 되는 줄 알고 덤빈 결과였다. 또 한 가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도 한 몫을 했다. 나고야에서는 나이 어린 사장이지만 지시가 먹혔다. 한국은 달랐다. 부잣집 막내 도련님쯤으로 취급당하니 그의 철학이 먹힐 리 없었다.

맛있는 곱창 만들기 위해 수백 번 테스트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고야에서 밤을 새며 벌어온 10억 원을 다 날리고도 3억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 후 4년은 암흑이었다. 2009년까지 빚을 갚고, 먹고 살기 위해 인테리어에 매달렸다. 문래동 로데오 골목을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짚동가리 생주’와 ‘피시앤그릴’의 인테리어 하청을 맡으며 그곳을 처음 만났다. 철퇴를 맞은 패션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수도권 외곽으로 짐을 빼던 시기였다. 텅 빈 매장을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혈관이 꿈틀거려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돼지곱창으로 아이템을 정했다. 당시 돼지곱창은 왕십리가 메카였다. 영등포구에서는 낯선 음식이었다. 수소문 끝에 ‘선수’를 만나 50만 원에 양념 기술을 배웠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그간 기다려 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세상의 모든 영웅은 그냥 태어나는 법이 없다. 꼭 결정적 순간에 위기와 함정이 기다린다. 이순신 장군도 그랬고,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훼방꾼이 등장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MBC ‘불만제로’에서 세제로 닦은 돼지곱창이 소개되었다. 청천벽력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나 나오는 줄 알았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싶었다. 더 이상 돈도 없었다. 세팅을 그리 했으니 소 곱창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장동으로 뛰어갔다. 도매업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당신 곱창을 쓸 테니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졸랐다. 급전을 당겨 전수비 70만 원을 마련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던가? 달랑 1주일 배워 손님상에 낸다는 건 무리였다. 날이 갈수록 손님이 줄었다. 가게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아내와 직원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또 고비가 왔다. 낮 시간에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뛰며 직원들 월급을 충당했다. 음식은 결국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육제와 소주를 넣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수백 번 테스트를 거쳤다. 대한민국에서 파는 과일은 다 동원했다. <중용(中庸)> 23장에 등장하는 구절이 있다. 곡능유성(曲能有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성실함이 있다는 뜻이다. 이 성실함은 결국 드러나게 되고,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다. 남편은 양념에 집중하고, 아내는 김치에 몰입했다. 김치명인 강순의 선생에게 사사를 받아 지금도 계절 김치를 손님상에 내고 있다. 맛이 좋아지자 손님들이 다가왔다. 소비량이 많아지자 도매업자들이 앞을 다투어 공급을 하겠다고 나섰다. 장사의 신이 되는 공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운도 잇따랐다. 오픈한 지 1년 만에 ‘식신로드’에 출연하며 ‘연육제 사용하지 않는 최고의 곱창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루 매출 100만 원이 꿈이었는데, 100만 원만 팔면 소원이 없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일 매출 400만 원을 선회하며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다. 마포의 직영점을 비롯해 가맹점, 전수창업점 등 20여개의 업장에 ‘곱’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지금도 가맹점을 내달라는 부탁이 끊어지지 않는다. 음식이 맛있는 집에는 손님만 몰리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곱’은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다. 전준형 대표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다.

“월화고기든 곱이든 주방과 홀에서 한 달간 교육을 실시한 후에 가맹 여부를 결정해요. 제가 1주일 배운 탓에 이 고생을 했잖아요. 레시피만 배워서는 소용없어요. 운영방식을 배워야지요.”

5년을 꽉 채우고 다시 론칭한 브랜드가 바로 ‘두잇고기’. 문래동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어 삼겹살과 뒷고기, 그리고 껍데기를 팔기 시작했다. 오산(誤算)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문래동에서 보냈는데도 다른 아이템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것이다. 작업복 차림의 손님들이 사실은 빌딩을 몇 채씩 보유한 알부자들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전략을 수정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고기를 파는 집으로. 그래서 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하이포크 대리점도 계약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원 플러스 숙성 삼겹살을 정량 그대로 내는 집은 월화고기가 유일하다. 곱창과 삼겹살로 골목을 장악하자 주변의 시샘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육회를 서비스로 내는 집도 생겨났다. 선육후탕(先肉後湯)의 탄생배경이다. 경쟁이 심해지자 전 대표는 강수를 둔다. 차별화의 시작! 다르기 위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경쟁자와는 멀어지고 고객에게 가까워지는 전술을 구사한다. 고기 먹은 손님에게 된장찌개 대신 내장탕을 냈다. 신의 한수였다. 곱창 전문점을 운영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객은 감동했고 주류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최근 방송국과 언론사가 밀집해 있는 상암동에 제대로 된 고기 맛을 보여주겠다며 월화고기 직영점 매장을 계약했다. 또 한양대학교 앞에 한우버거 전문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왜 하필 한우버거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입을 연다.

“이제 고기가 보여요. 손님도 보이고 시장도 보여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새로운 버거 프로젝트에 최고의 전문가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귀재, 사진의 장인, 주방의 달인…. 하지만 무리한 확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절대 대출은 받지 않는다. 운영비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불안하면 초조해지고, 오판(誤判)을 하기 쉽다. 그러면 손님이 눈치 채고 떠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 전준형 대표는 서울 문래동 로데오 거리의 전설을 만든 인물이다.
- 전준형 대표는 서울 문래동 로데오 거리의 전설을 만든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