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제프리 이멜트 GE(제너럴일렉트릭) 회장은 “금융부문을 정리하겠다”고 밝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GE 창립 137년 만에 감행한 파격적인 변화다. 이날 발표된 보도자료를 통해 GE는 한때 350개까지 늘렸던 산업군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가정조명&산업설비·헬스케어·에너지분야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오는 2018년까지 전체 수익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90%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멜트 회장의 빠르고 과감한 결단에 시장은 GE주식을 10% 넘게 끌어올리며 화답했다. 외신들은 “제프리 이멜트가 잭 웰치(전 GE 회장)의 금융 괴물을 없앴다”며 일제히 반겼다. 

-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지난 4월, “금융부문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산업 비중을 전체 순익의 90%까지 차지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제조업공룡 GE가 산업인터넷공룡으로 변신하고 있다.
-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지난 4월, “금융부문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산업 비중을 전체 순익의 90%까지 차지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제조업공룡 GE가 산업인터넷공룡으로 변신하고 있다.

금융 포기하고 산업인터넷에서 승부
GE가 변화를 감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주도권 싸움에서 승기(勝機)를 잡기 위해서다. GE는 지난 2012년부터 ‘산업인터넷’이라는 용어를 만드는 등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GE가 만든 산업인터넷은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 제조, 시제품, 테스트 등 산업 전반에 걸쳐 IoT 기술을 활용한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관련 산업계에서는 유비쿼터스, 정보통신 융합, 기계 간 통신 등 IoT와 관련된 용어들이 여러 가지 혼재돼 사용됐다. 이 중 각축을 벌인 게 독일 주도의 산업4.0(Industry 4.0)과 GE의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이다.

독일은 지난 2011년부터 산업4.0을 홍보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부차원에서 산업4.0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혁신을 촉진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표준화에 대한 토론만 했지 구체적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한 해만 해도 2억 유로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지만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완벽한 표준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속도가 지연됐고 보안정책도 없었다. 중소기업들의 거부반응도 있었다”며 산업4.0의 한계를 지적했다. 독일 IT(정보기술)컨설팅 업계 1위 티시스템즈(T-systems)의 최고경영자(CEO)인 라인하르트 클레멘스(Reinhard Clemens)도 “정부, 기업체 등이 협의회에서 서로의 입장을 표명한 것 외에는 진행된 것이 없다”며 “인더스트리 4.0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후발주자인 GE가 내놓은 청사진은 보다 명확했다. 대상을 구체화시키고 효과를 분명히 제시한 것이 산업4.0과 다른 점이다. GE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인터넷으로 효율성이 1%만 높아져도 항공, 철도, 에너지, 헬스케어 등 6개 산업이 향후 15년간 총 276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GE의 산업인터넷은 산업4.0과 달리 표준화에 매달리기보다는 관련 기술 상용화 및 시장 확대에 중점을 뒀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게 산업인터넷컨소시엄(IIC)이다. 기술 독점보다는 확산에 주력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IIC에는 GE 외에 AT&T, 시스코, IBM, 인텔이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IIC는  다국적 기업과 학계, 정부 등이 참여해 당장 상용화시킬 수 있는 기계, 기술 등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밖에도 기업들 간 아이디어와 기술을 공유하는 ‘오픈소스’ 형태라는 점이 GE의 산업인터넷 기술이 빠르게 확산된 비결이다. 

그 결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줄지어 합류하면서 GE의 산업인터넷은 IoT 시대의 ‘대세’가 됐다. 애플, 시스코, 화웨이, 삼성전자가 모두 IIC 회원이다. 급기야 산업4.0 컨소시엄의 주축이던 독일 기업 지멘스까지 올해 1월 IIC에 가입하면서 영향력은 더 커졌다. 8월 말 현재 IIC에는 21개국 159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산업인터넷시대 도입을 가속화하겠다는 IIC의 목표가 이뤄지면 가장 득을 보는 기업은 GE다. 현재 산업장비를 제조하는 동시에 소프트웨어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기업은 GE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GE는 지난 2012년 산업인터넷 기술 10종을 출시한 후 2013년에는 14종을 추가로 발표했다. 2014년엔 산업인터넷 기술로 벌어들인 돈만 10억 달러가 넘는다.

이 중 지난 2013년 발표한 스마트 플랫폼 프레딕스(Predix)는 GE의 야심작이다. 데이브 바틀렛 GE항공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프레딕스의 목표는 산업인터넷의 언어가 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PC 플랫폼인 ‘윈도’나 모바일 플랫폼 ‘안드로이드’처럼 산업 플랫폼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혜리 GE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GE의 고객사들은 산업인터넷을 통해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효율성 증대와 비용 절감효과를 보고 있다”며 “특히 올해부터 모든 기업에 프레딕스를 전면 개방해 일반 기업들이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사에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연료 절감·발전소 출력 증대 효과
시간이 지나면서 프레딕스를 활용해 실제 효과를 본 사례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적항공사 에어아시아는 프레딕스를 토대로 GE의 산업인터넷 솔루션 ‘플라이트 이피션시 서비스(FES)’를 적용해 2014년 한 해 동안 연료비 1000만 달러를 아꼈다. 에어아시아는 오는 2017년까지 연료비용만 3000만 달러를 절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캐나다 에너지기업 트랜스캐나다도 미국 뉴욕 발전소에 프레딕스 기반 솔루션 ‘플렉스 이피션시 어드밴티지 어드밴스드 가스 패스’를 적용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트랜스캐나다는 발전소 출력을 5%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는 1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뿐만 아니라 GE는 지난해 10월 프레딕스 앱 팩토리(Predix App Factory)를 공개하는가 하면, 지난 8월6일에는 프레딕스 클라우드(Predix Cloud) 출시 계획을 발표해 산업인터넷 분야의 선두주자 지위를 굳혀가고 있다.

프레딕스 앱 팩토리는 산업인터넷 앱 개발 도구로 앱 개발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프레딕스 클라우드는 빅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주는 플랫폼이다. 산업기계 정보를 분석해, 기계와 기계가 소통하게 해준다는 게 특징이다. 제프리 회장은 “프레딕스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산업 부문에서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와 성과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