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푼 만큼 돌아옵니다.” 현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눔이 부(富)의 원천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가 있다. 바로 원영식(55) SH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대부’로 불린다. 양현석의 YG엔터테인먼트,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 배용준의 키이스트. 그가 투자하거나 경영 지원에 나선 업체다. 투자한 만큼 이익도 거뒀다. 원 회장은 지난해 YG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한 보광그룹 광고계열사 휘닉스홀딩스(현 YG플러스)에 투자해 세 배가량의 차익을 냈다.
현재는 김종학프로덕션(드라마 제작업체), 에이나인 미디어(예능 제작업체), 파워엠이엔티(모델 에이전시) 3개 회사를 합병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SH엔터그룹”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투자한 드라마 제작업체 초록뱀미디어를 활용한 중국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원 회장은 왜 나눔과 기부를 강조할까. 9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SH홀딩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호탕하고 열정적이었다.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성격이 시원시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투자와 나눔도 시원하게 하는 건가요?” 기자가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며 설명했다. “제가 땀 흘리고 노력해서 번 돈입니다. 13년 동안 기부를 했지만 매번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한번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선 돈을 먼저 내지 않으면 수술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당연히 수술비를 지원했습니다. 내 돈과 남의 목숨, 박 기자라면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가진 게 많다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답하자 예상이라도 한 듯 원 회장은 나눔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눔과 기부는 큰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남을 돕고 나누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또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나눔입니다.” 그는 “남을 도울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며 “그 여유가 원동력이 돼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나눔, 보여야 행할 수 있어
그는 나눔의 가치를 어머니께 배웠다고 말했다. “제가 나눔의 삶을 실천하게 된 것은 어머니 영향이 컸습니다. 어릴 때 식구들 먹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어머니께선 어려운 이웃에게 팥죽 등 음식을 나줘 주시곤 했어요. 그런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선행이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시작은 2003년이었다. 그는 “독거노인, 저소득층 학생을 돕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다”며 “무작정 동네에 있는 동사무소에 찾아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고 소개 받은 사람들에게 한 달에 30만~40만원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본격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동사무소에서 만난 사회복지사와 의견을 나눴고, 한 사람에게 많이 지원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을 지원하는 게 더 좋다는 결론을 냈다. 그래서 200명을 도왔다. 가정환경에 따라 5만~10만원을 지원했다.
그는 “처음부터 누구를 돕는 것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며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경험한 사연을 하나 소개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후원한 여고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학생을 포함해 2명을 어머니 혼자 키우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30만원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대학을 가려면 학원을 다녀야 되지 않겠냐며 5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을 도우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학생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지금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사회에 나가면 당연히 남을 도울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어요. 그는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눔이 나눔을 낳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나눔을 실천할 것입니다. 바로 제가 바라는 나눔 사회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부는 그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도왔다는 것을 칭찬받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나눔이 얼마나 좋은 가치인지, 어떻게 사회 전체에 퍼지고 행복을 만드는지 볼 수 있어야 나눔을 행할 수 있거든요.”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다. 1억원을 기부하면 회원이 되는데, 그가 현재까지 기부한 금액은 10억원을 넘어섰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중에는 1억원 이상 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10억원을 냈습니다. 단순히 한번 기부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나눔을 행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회원끼리 일종의 나눔 펀드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준 장학회도 운영하며 고등학생 32명을 지원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돕는 게 아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 중에 돈이 없어서 학원을 못가거나 뮤지컬 등 문화생활을 못하는 아이들을 지원한다. 그는 “준 장학회 학생들과 1년에 한 번 만나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성공한 젊은 벤처 창업가도 이 자리에 함께 갑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죠. 이날 벤처 창업가와 아이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즐깁니다. 이 모임은 아무리 바빠도 꼭 참석합니다.” 그는 어머니께 배운 나눔의 정신을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준 장학회는 제 아들 이름을 딴 것입니다. 제가 하는 나눔, 봉사 활동 대부분을 아들과 함께 합니다. 아이에게 나눔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추후 아들이 저를 이어 나눔 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활용한 사업 본격 시작
원 회장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기부를 할까’ 등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눔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떻게 많은 돈을 벌었지’라며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나눔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도 넘쳐났다. 어느 날 친분이 있는 한 사람이 원 회장을 찾았다. ‘아들이 유학을 갔는데 돈을 못 보내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벤츠 할부금을 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200명을 도와주는데 나는 왜 안 도와주냐는 게 이유였다.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나눔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친구가 암에 걸려 수술비가 없다고 했을 때는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삶이 힘든 사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도와주지만 그런 게 아니면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돕고 나눔을 베푸는 것은 축복이다”며 “남을 도와서 성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더 성공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투자 이야기로 돌아갔다. 원 회장은 2006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투자했다. 당시 엔터산업은 영세했다. 회계처리가 주먹구구식이었고, 수익구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회사가 많았다. 자금 조달도 일반 개인 투자에 그쳐 한계가 있었다. 그는 이를 주목했다. 특히 한류(韓流)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키이스트, 웰메이드스타엠, 제이튠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삼화프로덕션 등 모두 그가 투자하거나 경영 지원에 나선 업체다. 그는 투자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를 할지 안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감(感)은 자식에게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회사의 실적은 재무제표에 나옵니다. 누구나 보는 투자 기준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합니다. 바로 오너입니다. 회사를 이끄는 사람을 보면 감이 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투자의 감과 함께 부지런함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보다 무식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원 회장의 좌우명이다. 열정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일을 하나 하면 거기에 빠진다. 마무리하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하는데 왜 성공하지 못하냐고 반문한다. 그는 “그건 진짜로 열심히 한 게 아니다”며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음악에 미쳤어요. 아무리 말려도 노래를 만들고 가수를 키웁니다. 하기 싫어서 하는 ‘열심히’와 즐기면서 스스로 하는 ‘열심히’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과거 투자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SH엔터그룹과 초록뱀미디어를 통해서다. 그는 초록뱀미디어에 약 20억원을 투자했다. 중국 미디어그룹 DMG도 250억원가량을 투자했고, 일본 소니도 주주로 있다. “SH엔터그룹이 제작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가지고 중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마케팅·유통업체 인수도 생각하고 있어요. SH홀딩스 자회사인 포인트아이를 통해 중국과 한국에서 화장품 사업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 원영식 회장은…
1961년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대부’로 불린다. 양현석의 YG엔터테인먼트,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 배용준의 키이스트 등 모두 그가 투자하거나 경영 지원에 나선 업체다. 나눔과 기부를 강조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