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X 목포역에서 차로 3분 거리인 유달산에 도착하자, 푸르른 숲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정오의 햇살이 아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숲길로 들어서자 아왜나무, 비자나무, 후피향나무 등이 만들어낸 나뭇가지 가림막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우리를 보호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가설이 사실일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개미연구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생물학 교수는 이 가설로 인간의 숲에 대한 의존성을 설명했다. 바이오필리아란 생명을 뜻하는 ‘바이오’와 그리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의 합성어로 인간의 DNA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즉 자연사랑 정신이 녹아 있다는 의미다. 숲 해설가 황호림 작가는 “인간은 결국 숲에서 왔다가 숲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며 “나이가 들면 점점 숲과 산 등 자연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말했다.
“숲을 소개할 때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첫 번째는 숲의 지형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죠. 또 그 숲의 가장 대표적인 식물과 그 식물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짚습니다. 목포 유달산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밤마다 켜지는 야간조명입니다.”
목포에서 누구보다 왕성하게 숲 해설가 활동을 하고 있는 황 작가는 환경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꽃과 나무를 설명하는 숲 해설가는 많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드물다. 황 작가는 숲 해설을 하면서 환경문제와 생태윤리의식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다. 지역 일간지 등에 수차례 야간 조명의 폐해에 대해 기고한 바 있다.
“밤이면 그에 맞게 숲의 동식물도 잠을 자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곳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 것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행위예요. 처음 야간조명을 설치했을 땐 각종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도 아름다운 유달산을 구현했다며 찬사를 보냈지만 지금은 모두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밤에 산을 오르려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수십억원의 세금을 들이면서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손전등을 사용하는 등 개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2. 황호림 작가는 “하늘에 사는 신선들이 먹었다는 ‘천선과(天仙果)’”라며 천선과나무에서 딴 열매를 건넸다.
비 오는 날의 숲은 한 편의 오케스트라 연주회
“이 나무는 비파나무인데 중국에서 들여 온 나무예요. ‘비파나무 한 그루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이 있어요. 나무의 모든 부분을 약으로 써요. 심지어는 비파나무에 이슬이 맺히면 ‘비파결로’라 해서 이슬마저도 약으로 써요.”
황 작가의 이야기에 푹 빠진 사이 산뜻한 배경음악처럼 새들이 지저귀었다. 나무와 꽃들에 담긴 이야기를 차례차례 설명하는 황 작가를 따라 걸어가자 목포 유달산 내 명소 중 한 곳인 ‘난 전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 작가는 “이 곳에서 멸종위기종 식물 1급 4종의 난과 2급 2종의 난을 볼 수 있다”고 했다.
2급 멸종위기종인 ‘지네발난’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난의 이파리 모양이 지네의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왕자귀나무와 애기등과 함께 목포 유달산을 대표하는 식물 중 하나다.
“역설적이지만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난을 멸종위기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난을 좋아하면 자연 속의 난을 그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본인이 가져가기 위해 상처 입히고, 파괴하고 있어요. 숲 속 식물은 내 것이 아닌 공공의 소중한 자산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황 작가와 함께 이동한 곳은 특정자생식물원이다. 우리나라의 고유종 식물과 특정 희귀종 등을 한 데 모아놓은 이 곳은 공부를 위해 외지 사람들이 찾아 올 정도로 훌륭한 자연생태교육장이다. 황 작가는 숨겨 둔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설명을 시작했다. 먹으면 해충이 없어진다고 해서 구충제 대신 먹었다는 ‘비자’가 열리는 비자나무, 껍질이 두껍고 향이 나며 가꾸지 않아도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정원의 왕자’라고 불리는 후피향나무, 지구온난화 때문에 머지않아 소나무보다 먼저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구상나무 등 평소에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나무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들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아름’의 어원은 ‘알다(know)’에서 온 것이랍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구절초도 들국화, 쑥부쟁이, 개미취, 감국, 산국도 다 들국화인데 이런 꽃들의 이름을 각각 다 알게 되면 이 꽃들이 모두 친구가 되는 거예요.”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차분히 걸으며 주변을 보고 자연에 몰입하는 것이 포인트다. 황 작가는 숲길 오른편에 자리한 나무에 다가서더니 포도알 같은 열매를 따서 기자에게 건넸다.
“하늘에 사는 신선들이 먹었다고 하는 ‘천선과(天仙果)’입니다. 무화과랑 비슷한 느낌이죠? 옛날에는 달콤한 과일이 많지 않았잖아요. 조상들은 이런 것들을 즐겨 먹었답니다.”
황 작가는 여러 가지 형태의 숲을 즐겨볼 것을 권했다. “비 오는 날의 숲은 한 편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같습니다.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마치 일정한 리듬에 맞춰 연주를 하는 것 같아요. 또 숲 속의 흙길을 꼭 신발을 벗고 걸어보길 권해요. 자연을 온전히 내 몸으로 느끼는 겁니다.”
숲을 좋아하는 만큼 숲을 자주 찾는 그이기에 벌레를 피하기 위한 남다른 팁도 들려줬다. “산초나무, 초피나무 잎을 따서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 벌레들이 기피합니다. 잎을 모자나 옷에 둘러메고 다니는 사람을 보셨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은 숲을 즐길 줄 아는 ‘숲 고수’일지도 모릅니다.(웃음)”
▒ 황호림 작가는…
1962년생, 현재 숲 해설가, 식물 파라택소노미스트(준분류학자), 생태환경 칼럼니스트, 숲에 관한 에세이집 <라온제나>, 목포의 숲과 꽃 이야기를 다룬 <우리동네 숲 돋보기> 저자, 목포기독병원 사무국장.
[Mini interview ● 숲 해설가 황호림 작가]
“숲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요즘 참 행복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황호림 작가는 숲과 자연이 좋았다. 대학 졸업 후 도시에서 직장생활도 해봤지만, 그에겐 잘 맞지 않았다. 고향은 전라도 광주이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목포로 와 두 번째 직장을 구했다. 현재 25년째 목포기독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30대에 건강을 관리하지 않아 종합병원 수준으로 몸이 좋지 않았던 황 작가는 산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회복했다. 1년 6개월 만에 90㎏에서 17㎏를 감량했다. 등반 도중 문득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뒷산인 부흥산을 매일같이 찾았어요. 자세히 보니 야트막한 산인데도 식생(植生)이 굉장히 풍부하더라고요. 6개월에 걸쳐 나무, 풀, 꽃, 곤충, 동물 등을 전수조사했어요. 도감도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했죠. 나중에는 목포 일대의 14개 산을 속속들이 파악할 정도가 된 거예요.”
공부 욕심도 커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주 서울을 찾아 생물다양성교육센터에서 ‘식물 파라택소노미스트 과정’을 들었다. 준 식물분류학자 교육이다. 이 과정에서 남도의 생태계뿐 아니라 제주도, 일본 대마도, 백두산 등 다른 기후대의 식물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혔다. 황 작가만큼 목포의 숲과 생태를 분석하고 기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목포를 잘 아는 그이기에 원고 청탁, 방송 강연 등 관련 일이 많이 들어왔다. 신문에 ‘부흥산 생태보고서’, ‘목포의 숲을 찾아서’ 등을 연재했고, 2013년에는 KBS목포방송국 ‘유달아카데미’에서 ‘건강한 숲이 우리의 미래다’라는 주제로 방송 강연을 했다. MBC생방송전국에는 ‘황호림의 숲 이야기’를 방송했다.
“2014년 봄 학기부터 목포대 평생교육원에서 ‘들꽃교실’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학교 측도 누가 들꽃을 배우러 오겠냐며 반신반의했지만, 24명 정원의 수강신청이 두 번째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얻자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황 작가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젊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야생의 꽃을 보기 위해 멈춰서 본 적 없던 이들이 이제는 무릎을 꿇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수업은 총 15강으로 이뤄져 있어요. 7시간은 실내수업, 8시간은 현장수업으로 진행돼요. 커리큘럼은 숲과 생명, 숲과 문화, 생명윤리, GMO, 수목장 등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데 가장 초점을 둡니다.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동식물이에요. 우리가 남의 집에 가서 그 집 물건을 마음대로 손대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죠? 숲에 들어갈 때 우리의 자세도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황 작가가 직접 구성하고 준비한 커리큘럼대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재수강률도 40%로 높다. 벌써 세 번째 황 작가의 수업을 듣는 사람도 있다. 현재 공식 인증기관인 산림청의 숲 해설가 양성과정을 들은 현직 숲 해설가들도 황 작가를 찾는다.
“1997년 외환위기(IMF) 때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숲 해설가를 많이 양성했어요. 지금까지 1만명 가량의 숲 해설가가 나왔을 겁니다. 매년 1000명씩 숲 해설가가 배출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채용으로는 연계가 되지 않는 거죠. 그곳에서 배운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숲에 대해 공부하고 푹 빠져야 해요.”
황 작가는 숲 해설가에 그치지 않고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을 얻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1급과 2급으로 나뉘는데 2급 지도사는 현장에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지도하며, 1급 지도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1급은 최근 늘고 있는 ‘치유의 숲’ 등에 소장으로 부임할 수 있다. 1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관련 석사 학위가 필요하기 때문에 황 작가는 현재 전남대 임학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석사과정을 마치면 박사과정을 밟을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서울대 농대가 운영하는 나무병원에서 나무를 관리해보고 싶고, 산림선진국인 캐나다와 독일에 연수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산림치유지도사가 되면 제가 생각한 그림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현재 80% 진행 중입니다.” 장래희망을 말하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얼굴엔 끝나지 않을 법한 희망이 보였다. 55세 황 작가의 인생 2막은 이제 시작인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