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자신을 알리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없다. 그 흔한 블로그도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찾는 환자는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다녀간 사람의 소개를 통해, 또 그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을 보고, 또는 인터넷에 퍼진 얘기만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은 성질이 너무 급하다고 말한다. 병만 빨리 치료해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암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용화당한의원의 간판에는 ‘밝은 미소가 있는 치료문화공간’이라는 특이한 문구가 있다. 침구과라든지 아니면 부인과와 같은 전문 진료과목도 없다. 김 원장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기면 웃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이 말할 땐 이야기하는 자신도, 듣는 사람도 짜증이 나요. 하지만 병을 극복한 사람은 이런 스트레스가 없어요. 저요? 여길 찾는 환자들이 저보고 모두 그래요. 치료비도 비싸면서, 선생님마저 꼬장꼬장하다고. 이까짓 ‘암’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벌써 병을 절반은 이긴 겁니다.”
대형 가마솥에서 일주일 동안 약 달여
그의 암 치료 성공률이 높은 것은 맞춤형 처방과 그에 따른 치료 덕분이다. 김 원장의 치료방식은 약물요법, 뜸, 내면상담 등 3가지로 나뉜다. 암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세 가지 방식을 동시에 처방하고, 동시에 치료한다.
먼저 약물요법은 누적된 스트레스성 물질을 해독하고, 조직의 건강한 재생을 촉진시키며, 기(氣)를 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해독약물은 암의 종류와 부위, 체질, 증상 등을 고려해 환자마다 적절하게 조합한다. 같은 암이라도 어떤 부위에 발생했는지, 환자의 체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처방도 달라진다.
특히 그가 처방하는 한약은 특이하다. 그는 한약을 대형 가마솥에서 일주일 동안 달인다. 한약은 3시간 정도 달이는 게 보통인데 이와 비교하면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쏟는 셈이다. 그는 경기도 남양주에 약을 달이는 시설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데, 가마솥은 300ℓ가 넘는 물이 들어갈 정도로 크다.
이러한 한약 달이는 방식은 인산의학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는 약을 오래 달이면 맵고 쓴맛이 없어지고, 복용 후 체내 흡수가 빠르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의 한약은 양방의 항암제와 다르게 천연물질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없다. 일반적으로 항암제를 투여하면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통증을 유발하고, 입맛을 잃는 부작용이 따른다. 그의 한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부작용도 없을 뿐더러 1년 정도 약을 복용한 후 암 크기 자체가 줄어들어 양방에서 수술에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한약 처방과 함께 뜸 치료도 병행한다. 그가 사용하는 대형 뜸(왕뜸)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여 내면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효과가 빠르고, 스트레스로 인한 병의 진행을 막는 역할이다. 그는 뜸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뜸 예찬론을 펼친다. “뜸은 한의원에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방법입니다. 특히 직접 혈자리에 뜸을 놓는 ‘직접구’의 효과가 큽니다. 그런데 화상, 흉터에 대한 두려움과 시술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뜸을 꺼려합니다. 하지만 뜸은 기혈순환을 개선하고, 식욕저하 등 암 치료 부작용과 면역강화 등에 도움이 됩니다.”
약물요법, 뜸과 함께 그가 암 등 난치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환자와의 교감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거나,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그는 항상 치료를 할 때 환자와 마음을 나누는 얘기를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고, 암과 같은 난치병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병에 대한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오히려 병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암을 극복한 환자들의 삶이 이전과 완전히 바뀌는 것도 내면의 변화가 치료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용서하고 화합하는 마음이면 낫지 않을 병이 없어요. 보통 암을 이겨낸 환자들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하죠. 그것은 병을 치료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이 아니라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치료법과 함께 필요한 경우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 종합적인 처방을 통해 병을 치료한다.
그로부터 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드라마틱한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간암 말기의 한 환자는 2년 넘게 그가 달인 약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며 포기한 환자였다. 하지만 2년 넘도록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김 원장은 그 환자에게 약을 보내면서 동봉한 편지를 통해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간경화 말기의 환자도 3년째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간경화 합병증으로 피를 토한 환자였어요. 토혈은 간이 스스로의 역할을 하지 못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상입니다. 하지만 약물과 뜸 치료를 통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물론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가 ‘더 이상 해볼 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말기 암이라도 약물과 뜸 치료를 통해 암의 전이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그마저도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에는 통증을 줄이는 데 주력합니다. 말기 암 환자의 경우에는 병원에서 처방한 진통제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한약으로는 그 통증을 더욱 줄일 수 있어요. 단 며칠이라도 통증이 없었으면 하는 게 환자나 환자가족의 마음이거든요.”
서울대 공대 출신의 특이한 이력
김 원장이 타고난 한의사였을까. 그건 아니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1979년 서울대 공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창시절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쳤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10년 만인 1989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를 했어요. 그래도 나름 인기강사였어요. 4년 동안 강사하면서 집을 살 정도였죠. 그렇지만 학원강사를 평생 할 수는 없었고,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고 싶었어요.”
제2의 인생을 위해 한의학에 도전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형님이 월남 파병을 갔다 왔는데,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 생활을 했어요. 노숙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됐고, 동상에 걸린 엄지발가락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죠. 그 발에 3주 동안 뜸을 떴어요. 발톱이 3번 정도 빠지더니 새 살이 돋아나고, 절뚝거리면서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그 때 한의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워낙 공부를 좋아했고, 학원강사를 한 덕분에 대입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경희대 한의대에 1995년 입학했다. 그 해 교수로 임용된 필자도 그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당시 나이가 많은 학생이 몇몇 있었는데, 다들 강의실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강의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항상 나이 어린 동급생을 잘 챙겨주는 형이기도 했다. 성적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학생들이 편한 길을 택할 때 그는 신의학, 사상의학, 중치의학 등의 융합을 통한 난치병 도전에 나섰다.
2002년 졸업 후 그는 한 한의원에 취업했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한의학을 이용하는 데 실망했기 때문이다. 2003년 지금의 자리에 개업했다.
한의사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긴 했지만 그가 전공한 공학은 한의학을 공부하고, 이후 환자를 진료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줬다. “사실 한의학에서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전 공부할 때 원인과 결과가 확실한 것을 찾았어요. 치료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결과가 나와야 의미가 있잖아요.”
경기도 여주에 만든 대형 가마솥도 공학이 기반이 됐다. “한약을 달일 땐 20시간 연속 열을 가하고 몇 시간 동안 꺼두는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화력이 일정해야 하고, 온도를 내릴 때도 일정한 시간 동안 천천히 내려가야 합니다. 불완전 연소되거나 온도편차가 심하면 약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이런 점을 보완해 준 게 바로 공학이었죠.”
그가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도 지금은 ‘약’이 되고 있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어떤 직업군과도 말이 통한다는 점에서다. 사회적인 균형감각을 갖춘 것도 도움이 된다.
용화당한의원의 치료비는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그는 번 돈이 약재 구입, 연구비 등에 대부분 재투자되기 때문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며 웃었다. 한약 개발은 18년 동안 진행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방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철폐해야
암에 걸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스트레스를 암 발병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몸과 정신이 편안해져야 암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사회가 편안해지면 암 발병률도 낮아질 겁니다.”
그의 치료 목표는 따지고 보면 암의 완치가 아니다. 몸속에 암이 있더라도 아무런 제약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암과 함께 살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목표라는 얘기다.
그의 치료법이 아직 완성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한의학으로 암 정복이 가능하다고 그는 확신한다. 이미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면 한의학에 그 해답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한의학으로 암을 정복하기 위해선 각종 규제의 철폐 내지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 중국중의과학원(中國中醫科學院) 소속의 투요우요우 교수가 개똥쑥을 이용해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 지원과 규제 개선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의사가 마취제, 혈관제재 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초음파진단기기를 통한 진단도 허용되지 않고요. 건강보험도 침과 뜸에 한해 적용됩니다. 한약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러한 규제가 풀리면 한방을 통한 암 치료율이 대폭 증가할 겁니다.”
▒ 김현동 원장은…
1989년 서울대 졸(산업공학과), 2002년 경희대 한의대 졸, 2006년 상지대 한의학과 석사, 2013년 상지대 한의학과 박사, 2003~ 현재 용화당한의원 원장(서울 종로구 안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