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로그 네이션(Rogue Nation)’이라는 특이한 부제가 붙었다. 본디 ‘로그’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는 ‘악당, 불한당’ 정도로 정의돼 있다. 미국이 북한이나 이란 등 테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를 지칭할 때 쓴 ‘로그 스테이트(Rogue State·불량국가)’란 말도 이런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조직에서 나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라는 뜻도 있는데 앞서 언급된 영화에서도 이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금융계에서 이 용어는 다른 단어와 결합돼 잘 쓰인다. ‘로그 트레이더(Rogue Trader)’가 그것이다.
1995년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의 싱가포르 지점에서 ‘닉 리슨(Nick Leeson)’이라는 27살 먹은 직원이 ‘회사에서 인가 받지 않은’ 투기적인 외환거래에 손을 댔다가 이 은행 자본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내고 잠적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투자은행은 단돈 1파운드에 네덜란드 금융그룹인 ING에 팔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곧 붙잡혀 24년 형을 받았으나 교도소 내에서 ‘로그 트레이더’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몇 년 후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즉 로그 트레이더란 ‘위에서 인가 받지 않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 회사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것이다.
올해 9월 하순 독일 내의 최대 자동차 메이커이자 도요타와 세계 정상의 자리를 다투는 자동차 메이커 폴크스바겐이 위기에 봉착했다. 자사의 여러 승용차 모델에 탑재된 디젤엔진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질소산화물 등 배기가스 배출량을 속인 혐의로 미국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렇게 조작된 소프트웨어를 가진 엔진이 1000만대 이상의 차량에 장착돼 판매됐고 이를 리콜해 수리하는 데만 수십조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주가 폭락 이외에도 이 회사가 입을 경제적 손실의 총액은 소비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 따라 아직은 잘 가늠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의 여파가 이 회사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벤츠 등 다른 독일 자동차 업체로 의심의 눈초리가 집중되는 것은 물론 독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및 관련 부품 산업은 독일 수출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이 그리스의 유럽연합(EU) 탈퇴보다 독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회사를 떠난 전임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빈터코른이 이 사실을 알고 있거나 지시했다는 정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도 또 다른 로그 트레이더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 주주나 이사회는 물론 독일 국민이 이런 행위를 결코 ‘인가해줄 리 없으며’, 회사는 물론 ‘독일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국내시장을 넘어 글로벌 자이언트가 되면서 벌어진 결과라 하겠다. ‘욕조(국내시장)’보다 커진 ‘고래(글로벌 기업)’가 많이 생기면서 최고경영진의 오판뿐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국가경제를 뒤흔들 여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나타나게 된 한국이 그 예외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볼 대목이다.
-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前 CJ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