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린 영화 사도.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린 영화 사도.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사는 자녀 교육일 것이다. 오늘은 아들의 교육에 과도하게 몰입한 아버지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일탈을 선택한 한 문제아의 이야기를 살펴볼까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이씨는 마흔둘에 어렵게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집안을 이끌 소중한 아이라는 생각에 두 살 무렵부터 유명한 과외 선생을 불러다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고, 미리 실무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아 아들이 성인식을 치르자마자 가업도 맡겼다. 물론 회의 때마다 꼬박꼬박 같이 들어가 사람들과 의견은 잘 조율하는지, 성급한 판단은 하지 않는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들은 점점 삐뚤어졌다. 아랫사람을 막 대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경찰의 힘을 빌려 혼도 내 봤지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의 자살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씨는 결국 아들이 28세가 되던 해에 아들을 포기하고, 손자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아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아들에게 아버지는 항상 화가 나 있는 존재였다. 세 살 때부터 과외를 받았는데,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아버지는 선생님 앞에서 자신을 꾸짖었다. 아들이 사춘기가 끝날 무렵에는 아버지 대신 회의를 주관하게 했는데, 회의 중에도 아들이 무슨 말만 하면 생각이 짧다는 둥, 우유부단하다는 둥 직원들 앞에서도 사정 없이 호통을 쳤다. 결국 아들은 어차피 무슨 일을 해도 아버지한테 혼이 날 거, 화라도 풀어야겠다 싶어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까짓 거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아버지가 드디어 터졌다. 아들에게 모든 것을 상속하기로 했던 유언을 철회하기로 한 것이다. 아들도 자기가 좀 심했다는 건 알지만, ‘아버지가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줬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이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영화 베테랑 속의 망나니 재벌 3세 조태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뉴스에서 접하는 건방지고 말 안 듣는 부잣집 아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실 이 부자는 바로 영화 사도의 주인공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소설 <영원한 제국>이나 영화 역린, 드라마 이산 등 뒤주에 갇혀 죽은 세자와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인해 이 부자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이 있지만, 영조와 사도세자 두 사람만 놓고 보면 아버지의 과욕과 자녀의 중압감으로 엇나간 지독히도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과욕과 자녀의 중압감
요즘 사회 문제 중 하나가 청소년 일탈과 자살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매년 10만명당 8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내 자녀가 도태되는 일을 막기 위해 자녀의 성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자녀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과보호하는 경향까지 보이곤 하는데,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의존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문제해결 능력까지 떨어진다.

또 과도한 관심은 자녀에게 엄청난 중압감으로 작용해 우울, 불안 등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심한 경우 분노, 폭력, 자살과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긴 조선왕조 역사 속에서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대표적인 문제아가 바로 사도세자다.

사도세자는 두 살 때 이미 왕세자로 책봉됐고, 걸음마를 할 무렵부터 제왕학을 공부해야 했다. 영조는 세자가 읽을 책을 직접 필사했을 정도로 세자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너 살짜리 세자에게 책 한권을 외우게 하고, 한 문장만 빠뜨려도 신하들 앞에서 호되게 혼을 냈다. 세자가 열네 살이 되던 무렵부터 대리청정을 시켰는데, 대전 회의 때마다 세자 바로 뒤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토를 달았다. 표면적으로는 세자를 믿고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손바닥 위에 세자를 두고 무려 13년이 넘도록 시험을 한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부담감이 컸을 텐데, 이러한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는 훗날 세자의 광증 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과도한 교육열은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나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좌절을 맛본 요즘 부모들이 내 자녀만큼은 그런 가시밭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다는 애정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내 자녀에게 강요하기에 앞서 왜 부모가 교육을 강조하는지 자녀에게 이해시키고, 자녀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도세자는 백일 무렵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영조는 경희궁(지금의 서대문 근처), 세자는 창덕궁(지금의 동대문 근처)에서 기거했는데, 어릴 때부터 서로 얼굴을 맞댈 시간이 없어 가족이라는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 했다. 또 영조는 세자를 오로지 왕위의 후계자로만 여겨 조금이라도 법도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학문을 게을리 하는 모습을 보이면 불같이 화를 냈다. 혼이 날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심지어 세자로서의 체통도 버리고 창문을 넘어 도망치기도 했다고 한다.

세자는 어릴 때부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아버지만을 봐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했을 것이다. 영조는 주눅 든 그런 아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 매사 마음에 들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해서 악화됐을 것이다.

이러한 부자의 모습 역시 요즘 가족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들은 좀처럼 자신의 자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자녀의 나이가 예순이 넘어도 넘어질까 걱정스럽고 못 미더운 것이 부모 마음이다. 반대로 자녀들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내린 결정에 자꾸만 부모님이 간섭을 하거나 내 말을 좀처럼 믿어주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문제는 설문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진학사에 따르면 고등학생 10명 중 7명이 부모의 일방적인 잔소리를 듣거나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에 1시간도 되지 않았다. 또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공부 열심히 해라’, ‘TV·게임·스마트폰·컴퓨터 그만해라’ 등 잔소리가 1, 2위를 차지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도 되지 않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속에 담은 이야기보다 잔소리가 앞서게 되기 십상이다. 반면 자녀 입장에서는 눈만 마주치면 나를 몰아세우는 것 같아 더욱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 간에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훗날 정조)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영조는 세손이 왕실의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자 이를 꾸짖기에 앞서 이유를 물었는데, 세손은 “사람이 있어 법도와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찌 법도와 예법이 먼저이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불과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눈에도 예법에 어긋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읽어 행하려는 자세가 있었던 것이다.

가족의 소통이라는 것은 바로 이 세손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족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 어떤 조직보다 배타적이면서도 친밀한 조직이다. 실제 가족 관계가 친하건, 친하지 않건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가족은 혈연(혹은 결혼이나 입양 등의 계약)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고,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한 가족 구성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탄탄하고 지속적인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내 치부를 드러내도 이해해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내 편이 될 수 있다. 영조가 왕이 되지 못할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만큼 엄격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콤플렉스를 아들에게 들려줬다면 어떤 아들이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또 아들이 느꼈을 막중한 중압감을 이해하고,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만 건네줬다면 조선의 역사에는 또 다른 자유분방하고 호탕한 왕이 기록될 수 있지 않았을까.

법도와 예법보다 사람이 먼저다
공자는 50세는 지천명(知天命)으로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순은 이순(耳順)으로 귀가 열린다고 했다. 이순은 귀가 열려 무슨 말이든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지만,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50세에 이미 하늘의 뜻을 알게 되어 굳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 이를 경계해 60세가 되면 스스로를 낮추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세자가 사망할 무렵 영조의 나이는 69세로 왕위에 오른 지도 40년 가까이 흘러 역대 어떤 왕에 견줘도 왕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했고, 나라도 태평성대를 이뤘으니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하늘의 뜻을 충분히 안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순이 되어도 미처 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해 결국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자녀들은 부모의 작은 행동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혹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부모의 오해를 사면서 점점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틀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좋은 소통은 관계가 나빠지기 전에 언제나 귀를 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고, 관계가 나빠졌더라도 서로를 비난하고 질책하기 전에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부모이기 때문에 내 자녀가 선택한 행동보다 더 나은 답을 안다고 단정하고 강요하기에 앞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먼저 생각해본다면 보다 나은 새로운 선택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조처럼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귀를 씻어내지 말고, 내 가족의 표정과 말 속에 담긴 진짜 마음을 찾아내기 위해 귀를 너그럽게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