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 영화 <은교>를 개봉할 당시에 그를 만났다. 천재 시인이자 소녀에 대한 관능의 열망을 지닌 노작가 이적요는 박범신의 현현이었다. 그는 말했다. ‘내 안에는 늙지 않는 짐승이 산다’고. 그놈은 많이 달리고 예민한 짐승이며 그 자신, 그 짐승이 말하는 걸 받아쓰는 중이라고.

박범신의 내면에 사는 그 짐승은 나이가 없고 세상의 고정관념에도 순응하지 않고, 늘 반역을 꿈꾸는 듯 보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은회색으로 희끗했고, 그의 입 근육은 녹말처럼 풀어졌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힘이 너무 세다.’ 저 힘을 주체할 수 없어 밤마다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관능…, 그의 문장의 모터는 벼려진 관능이었다. 박범신에게선 오직 글을 쓰기 위해 온몸을, 온 영혼을 예민한 성감대로 만들어버린 자의 고독과 위험이 감지됐다. 바람만 지나가도 흔들리고 그림자만 깃들어도 숨을 죽일 사람이었다.

그렇게 적막한 밤에 일어나 본능의 힘으로 쓴 <은교>의 시간을 지나, 고향인 논산으로 내려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 이야기 <소금>을 썼다. 온 사회가 지난 시대의 엄숙한 아버지를 버리고 가족의 기쁨에 복무하는 ‘귀여운 아빠’를 찬양할 때, 박범신은 아들의 출세를 위해 부두 노동을 하고, 한여름 소금밭에서 아사한 아버지를 그렸다. 그리고 일흔을 맞은 그가 얼마 전 펴낸 소설이 <당신-꽃잎보다 붉던>이다. 칠순을 맞는 그만의 소소한 문학기념식 차원에서, 1973년부터 발표한 중단편 85편을 묶은 전집 7권과 작가의 한 생애를 압축한 비평집 <작가 이름, 박범신>까지 곁들여 냈다. 모두 합치면 아홉 권이다.

발매 열흘 만에 3쇄를 넘긴 박범신의 신작 <당신>은 치매를 앓는 노인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죽음을 앞에 둔 노년의 임상 보고서이기도 하지만, 잔잔한 간병 일기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한 생애를 반으로 접어 통렬하게 뒤집어 살아내는 가식 없는 연애 일기이자, 기어코 ‘기브앤테이크’의 정의가 실현되고야 마는 ‘인과응보’의 사랑 이야기다.

치매를 앓고 죽기까지의 5년, 두서없이 시공간을 헤매며 정신이 까무러치고 상대를 할퀴는 그 재앙의 시간이 ‘어여쁜’ 관능의 시간으로 환생하는 건 오로지 박범신의 문장과 서사의 힘이다. 소설 <당신>은 아내가 죽은 남편을 집 앞 매화나무 아래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장이 아주 젊습니다. 치매 간병의 순간이 이렇게 에로틱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똥오줌으로 범벅된 기저귀를 아내의 얼굴에 문지르며 개구쟁이처럼 웃고, 그런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라니요.
“죽음을 앞두었으니까요. 치매에 걸린 순간부터 딱 5년… 유효 기간이 정해진 사랑이니 가능하지요. 그런데 이게 노인이 파란 청바지를 입고 서 있는 것처럼, 에로스의 감수성이 살아 있게 쓰고 싶었어요. 내 정서의 나이는 젊어요. 그래서 문장의 나이도 젊어요.”

대단한 유미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시작, 아내가 치매와 합병증으로 죽은 남편의 시신을 자신의 드레스에 싸서 매화나무 아래 묻는 장면부터 충격적입니다. 가족자본주의의 폭력성으로부터 가출한 아버지를 그린 이전작 <소금>의 도입도 그랬습니다. 염부였던 남자가 햇빛 아래 소금밭에서 쓰러져 죽는 장면이었죠. 염전을 하던 양반이 소금기 부족으로 쓰러져 죽다니요…
“나는 어떤 이야기인가보다, 그 이야기를 얼마나 미학적인 보따리에 꾸려서 보여줄 것인가가 더 중요해요. 나에겐 선험적으로 깃든 관능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 문학이 관념 지향적인 세계를 우선시해서 관능을 폄훼해요. 그것이 나의 고통이지요. 서사의 기능이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비판이 될 수도 있지만, 내 궁극의 지향은 예술 그 자체예요.”

최근에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았던 작품이 <은교>였지요? <은교>에서 어린 소녀와 젊은 제자 사이를 훔쳐보며 번뇌하는 자도 노인이고, <당신>에서 병든 남편을 간병하는 자도 노인입니다. 노인의 욕망은, 선생 자신의 욕망이지요?
“<은교>의 노시인 이적요도 나고, <당신>의 아내 윤희옥도 나요. 모두 슬픈 이야기지요. 그러나 <은교>는 사람들 생각처럼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존재론적 슬픔에 대한 거지요.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에 대한 반역. <은교>는 육체성을 지닌 여자가 아니라 불멸의 표상이에요. 그에 비해 <당신>이야말로 본격 연애 소설이에요. 일흔 중반에 평생 살던 남편에게 사랑을 느껴요. 치매 걸린 남편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면서… 애초에 정념의 화신이었던 그 여자는 나예요. 희생적인 남편의 모델은 내 아내지요. 노인이 겪은 사회적 경험, 윤리성, 죽음의 문제 등이 깔렸지만, 제 간절한 바람은 순애보로 읽어줬으면 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속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니까요.”

왜 치매라는 소재를 택하셨습니까?
“장인이 작년에 치매에 걸려서 돌아가셨어요. 8남매 키우셨는데, 제 아내가 셋째 딸이었어요. 그분이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으시고 자식들 있어도 혼자 방에 계시던 분이에요. 그런데 치매에 걸리고 나서는 밤중에 깨어 거실에 나와 그렇게 소리를 지르셨어요. 자식들에 대고 세상에 대고. 결국, 나중에는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주삿바늘을 빼고 몸부림을 쳐서 침대에 묶여계시더라고요. 가족을 위해 감정을 억압하고 살았는데, 이제 터놓으니 암호가 되어버린 거지요.”

스스로 치매에 대한 공포가 있으십니까?
“치매는 오래 진행이 돼요. 혹시 치매 아닌가? 하면 이미 그 사람은 10년 전부터 병이 시작된 거예요. 장인 돌아가신 후에 제가 치매에 걸린 꿈을 꿨어요. 공포가 생긴 거죠. 이걸 각개격파해야겠구나 싶었죠. 치매는 미래의 재앙이 될 거예요. 의학이 발전됐지만 지금도 65세 이상 5% 정도가 치매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앞으로 수백만명의 치매 노인은 자식들의 재앙이고 국가의 재앙일 수 있어요.  그런데 치매를 일찍 발견하면 진행이 안 될 정도로 치료할 수도 있고, 치료하면 행복한 말년을 보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지 못하던 그것을 이제는 보아야 해요. 개도 오래 키우니 치매에 걸려요. 12년 키운 개인데, 어느 날 한 번도 들어오지 않던 내 침대에 앉아 있더라고. 치매라는 게 사실 간단해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나쁜 단백질 때문이지요. 의학적으로가 아니라 문학적으로 나는 살아있는 동안 오욕칠정을 드러내며 살라고 그렇게 권해요.”

그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사셨습니다.
“원고료 앞에서 작가는 평등해요. 젊은 작가도 원고지 1매에 1만원, 나도 1만원이에요. 요즘엔 5만권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치는데, 베스트셀러 작가도 연봉으로 치면 5000만원이에요. 젊을 때는 베스트 10위권 안에 내 책이 3권이었어요. 연예인처럼 인기를 누리고 살았지요. 부자가 되려면 책을 팔아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서 살 길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평생 작가로 살면서 애들 셋 잘 키우고,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걸 행운으로 여겨요.”

소설가 김훈은 자신은 관능에 대해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선생은 거침이 없이 탐욕을 드러내고 관능으로 치달아갑니다. 선생의 글이 그토록 욕망에 가득 찬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념 때문이에요. 내 안의 우울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정념이에요. 우울은 죽음과 맞물려 있는데, 그 비극적 세계관이 깊어질수록 정념이 불타올라요.”

소설가 박범신(왼쪽)이 11월초 서울 평창동 자택인근에서 김지수 조선비즈 대중문화 전문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며 웃고있다.
소설가 박범신(왼쪽)이 11월초 서울 평창동 자택인근에서 김지수 조선비즈 대중문화 전문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며 웃고있다.

그게 박범신의 본질인가요?
“ 난 망설이지 않아요. 관능은 직관이면서 예술의 혼이에요. 빛과 같지요. 직관은 한순간에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힘이에요. 평생 서울 살아도 서울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 서울에 와서 남산에 올라가, “아! 서울은 불가사리네”라고 내지르는 식이지요.”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부싯돌이 벼락을 맞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왼쪽 오른쪽에 제각각 다른 욕망과 갈망의 불길이 일렁이는 늑대 한 마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치매를 인지한 후 그는 나를 당신, 이라고 자주 불렀다. 당신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눈물겨웠다. 그와 나의 관계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가닿고 싶었던 수평적 관계가 완성되는 느낌이 그 호칭에 깃들어 있었다.”-박범신 <당신>에서.

행복한가요?
“저는 행복을 모르겠어요. 가족도 단란하고 걱정거리도 크게 없어요. 그런데 개인의 불행이 작가로서의 에너지가 돼요. 나에겐 자기 살해의 마음과 자애심이 동시에 있어요.”

어떤 작가에게 충격을 받았습니까?
“젊을 때 장용학 작가의 실존주의 소설 <요한 시집>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소설이 삶을 뒤흔들었고, 자살 시도를 했어요. 그때부터 비극적이고 저항적인 감수성이 자라난 셈이지요. 김승옥 작가에게서도 영향을 받았지요.”

노벨문학상에 대한 욕망은 없었나요?
“노벨문학상…, (망설이며) 그런 욕망은 없어요. 한국문학의 수준은 노벨문학상에 도달해 있다고 봐요. 일본 문학에 절대 뒤지지 않았죠. 그런데 그 상이 단순히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는 상은 아니에요. 국가의 문학 정책과 위상, 번역의 뒷받침, 그리고 반체제적인 이슈 등과 맞물려 있지요. 나는 문학상 심사도 안 해요. 심사하면서 이름 올리고 용돈 벌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신춘문예 심사조차도 안 해요. 현역 작가로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게 내 꿈이에요.”

42년 작가로서의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소회를 느끼나요?
“난 두 개의 인생을 살았어요. 작가로서 매우 드물지요. 대중 작가로 인기를 끌다가 1993년도에 절필하고 1996년부터 다시 문학의 본류로 들어왔어요. 젊을 땐 젊으니까 사랑을 받으면 엔돌핀이 솟구쳤지요. 10만부가 팔리면 10만명에게 사랑받는 쾌감이 있었어요. 절필 이후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온 다음에는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았지요.

작가로서 욕망의 빛깔이 바뀌었어요. 중년 이후엔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기보다 소수 정예라도 깊이 있게 사랑받고 싶어졌어요. 자기 명성에 취하면, 문단에선 조로하기 쉬운데 저는 나이 들수록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요.”

왜 쓰나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작가로서의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에요. 평창동 주택을 모기지로 잡히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는 있어요. 저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써요. 창작이 되지 않을 땐 벽에 머리를 박지요. 저한테는 거대한 우울이 있어요. 젊어서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어요. 예민한 부모였다면 나를 치료받게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거대한 우울이 나를 결박하고 글을 쓰게 만들어요.”

그는 소설로 쌓인 스트레스는 소설로 풀어낸다. 소설을 쓸 때 가장 황홀해진다. 소설에 비하면 20대의 육체를 품는 황홀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때로는 불을 뿜어내는 용처럼, 때로는 불 꺼진 화로 안의 식은 재처럼 그가 들숨과 날숨 사이로 온도 차가 나는 말을 토해낸다.

“30대에 사람들은 내 눈빛을 똑바로 못 쳐다봤어요. 눈빛이 너무 세서 가슴이 철렁한다고. 지금은 부드러워졌어요. 얼굴로 긴장시키는 건 죄야. 그걸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안 변해. 들키지 않으려고 위장할 뿐이지.”

논산 탑정호 부근에 있던 작업실에서는 창밖으로 호수가 아니라 길만 보게 된다고 했는데, 여전히 외로우신가요?
“서울에서 반, 논산 작업실에서 반 그렇게 살아요. 광장으로도 가고 싶고 골방으로도 가고 싶고, 그런 내적 갈등이 타협한 결과지요. 애초에 상처받기 쉬운 종자인데, 후천적으로도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또 내버려둬요. 윤동주의 시를 봐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게 작가예요. 논산집 현관에 홀로 가득 차고 따뜻하게 비어있는 집이라고 썼어요. 홀로 있을 때 나는 우주도 품을 수 있어요. 놀라운 순정으로 통념에 굴복하지 않아요. 나이가 없죠. 사회적인 관계 속의 나는 아집을 비우고 칠십 노인으로 맞춰서 또 살아야지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그 갈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한때 히말라야를 돌면서 그걸 극복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사랑이 최고의 에너지고 권력이었죠.”

칠십을 맞은 기분은 어떠신가요?
“칠십이 연애 한번 한 것처럼 훌쩍 지나갔어요. 작가는 매일 죽고 매일 살아요. 추락 비상을 반복해요. 위태롭죠. 나는 뜨겁게 연애하듯이 살았어요. 내 삶은 에로스와 슬픔 사이의 골짜기에 있었어요. 생생하게 살 수 있다는 에로스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슬픔 사이. 삶을 습관에 맡겨놓은 적이 없었고, 그것이 문학이 내게 준 축복이었어요.”

나는 그를 세 번 만났다. 2012년 봄, 영화 ‘은교’가 개봉할 즈음 정지우 감독, 여배우 김고은과 함께 강남의 스튜디오에서, 그리고 2013년 봄, 소설 <소금>이 나왔을 때 논산 탑정호수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소설 <당신>이 나온 2015년 가을에는 그의 자택이 있는 평창동 근처의 카페에서.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젊어지고 힘이 세진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