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년 전 대한민국 전역에 노점상 액세서리 가게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그 중 하나가 20년 동안 아주 잘 컸다. 그래서 지금은 액세서리 분야 1위 업체로 우뚝 섰다. 서울 한 복판에 명품브랜드가 시샘할 정도로 디자인이 멋진 사옥을 마련했다. 10대, 20대, 30대 여성들은 못된고양이 모르면 간첩이다. 이름도 못된고양이이고, 광고도 ‘나는 못됐습니다’라는 카피를 쓴다. 그러나 ‘싸지만 싼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까칠한 품질관리 원칙을 갖고 있다. 전국 핵심상권 요지에 120개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필리핀 등 해외 5개국에 진출했다.
‘못된고양이’를 운영하는 NC리테일그룹 양진호 대표의 창업 DNA는 무엇일까.
양진호 대표의 성공비결 1호는 농업적 근면성이다.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성실함을 흉내낼 수는 있죠. 하지만 17년, 20년간 한결같이 성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게 성공비결이죠.”
양 대표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문을 열고 더 늦게 문을 닫았다. 휴일이나 휴가도 거의 즐기지 않았다. 새벽에 휴가 가면 저녁에는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 오후 장사를 했다. 몸이 아파도 아픈 몸을 핑계 대지 않았다.
두 번째 비결은 스피드다. 현장에서 만나는 CEO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많다. 양 대표도 비슷하다.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인재를 만나 마음에 들면 바로 채용한다. 생각보다 실천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손해 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사업에는 긍정적이다. 유통업의 특성상 남보다 히트 아이템을 먼저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이 팔기 시작하면 유행이 지나기 전에 할인을 시작해야 한다. 종로에서 노점 매장을 얻어 운영할 당시 그의 큰 강점 중 하나는 경쟁자보다 유행을 빨리 파악했다는 점이다. 핸드폰 관련 액세서리들을 가장 먼저 판매했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그였다.
세 번째 비결은 솔직함이다. 사업하는 사람 중에는 너구리같거나 의뭉스러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양 대표는 다르다. 솔직담백하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한다. 직원들도 가감없이 대한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줄 때도 있지만 좋은 일에서는 인심을 빨리 얻는다.
양 대표의 솔직함은 투명경영으로 연결된다. 솔직한 성격은 품질관리에도 나타난다. 못된고양이 직원들은 입사하면 ‘안전’, ‘상생’, ‘정직’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싸지만 싼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품질철학도 솔직함에서 나온 원칙이다. 아무리 값이 싸도 사람 몸에 닿아 장시간 착용하는 제품인데 품질이 나빠서는 안 된다는 게 양 대표 생각이다. 못된고양이는 액세서리 업계 최초로 ISO9001인증을 받았다. KC마크인증, 무납·무니켈 도금으로 알레르기를 최소화하는 등 공산품안전관리법 준수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저가 액세서리지만, 알레르기에 민감한 중산층 커리어 여성 단골들이 많다. 솔직함은 신용과도 연관이 있다. ‘못된고양이’는 제조업자나 도매상들에게 인기다. 아무리 늦어도 2주 안에 대금결제를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비결은 상생이다. 가맹점주와 거래처, 회사와 조직원과의 상생을 중요하게 여긴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기업 규모에 맞춰 외부 인재 영입도 많이 했지만 핵심인재 중에는 10년, 15년 근무한 직원들도 많다. 엄청난 숫자의 제품을 취급하면서도 안정된 조직파워를 보이는 건 업무에 익숙한 경력직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 중에는 가족들이 못된고양이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갑질’이 종종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데 못된고양이는 가맹점주가 갑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전국 가맹점주들은 남대문시장에서 쇼핑하듯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맹본사를 방문해 필요한 제품을 쇼핑해간다. 전부 가맹본부가 엄선한 제품들이다.

점주들과 수시로 소통해
다섯 번째 비결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점이다. 20명의 전문디자인팀이 끊임없이 시장을 조사하고 연구하지만 여전히 양 대표의 현장 감각이 빛을 발휘할 때가 많다. “우리 회사에는 ‘이 정도면 적당하니까 넘어가자’가 없습니다.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이 지켜질 때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죠.”
조직이 커졌지만 지금도 양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현장 경영이다. 수시로 제품 동향에 대해서 점주들의 의견을 묻고 대화를 나눈다. 양 대표의 이런 꼼꼼함은 때로 가맹본부 직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맹점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경영자로서 제품의 완벽함, 시장 흐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 버릴 수 없는 원칙이라는 게 양 대표의 지론이다.
여섯 번째 투자마인드다. 노점에서 시작한 기업이지만, 단단한 중견기업을 향해 커나가는 비결 중 하나는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못된고양이 조직은 장기근속한 베테랑 직원과 큰 조직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쌓은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업체로서 직원들이 감성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 환경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못된고양이는 내년부터 ‘2020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매출 1000억원, 가맹점포 400개가 목표다. 지금까지는 핵심상권에만 점포를 입점시켰는데 이제는 B급 상권에 2억~3억원대 창업 가능한 가맹점도 개설한다. 손익 시뮬레이션 결과 임대료가 비싼 A급 상권보다 적정한 임대료의 B급 상권 손익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갈수록 잡화매출 비중이 커지는 만큼 주얼리에서 생활편의 리테일 전문기업으로서의 역량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파워도 잃지 않는 작고 강한 기업의 행보를 계속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