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약동하는 두 팔과 두 다리는 얼마나 눈부신가. 살아 있는 육체는 이러하구나! 살아서 절정으로 작동되는 머리와 등, 팔과 다리의 개별적인 기하학은 저러하구나. 육지가 아닌 해저에서 솟구쳐 오른 듯한 김주원의 고요한 제스처.

어쩌면 인간은 새가 되고 싶었다. 영화 ‘블랙 스완’에 나온 것처럼 희거나(백조) 검거나(흑조),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날고 싶었다. 그렇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황금비례와 라이트 형제의 비행의 꿈이 만나 발레리나가 탄생했다.

한국 발레계의 전설 김주원을 소개한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열 아홉살에 최연소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가 된 이후, 15년간 한번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현역 프리마돈나.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인 브누아 드 라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한 발레리나이자, 2012년 브누아 드 라당스 영예의 심사위원. 영국 로열 발레단 등 유명 외국 컴퍼니에서의 주역 스카우트를 끝까지 거절하고, 한국에 남아 춤을 춘 국립발레단의 영원한 지젤.

2012년 국립 발레단에서 나온 이후 김주원은 더욱 창조적인 몸의 언어로 무대를 누비는 융복합 예술가가 되었다(그녀가 교수로 있는 학부도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이다). 발레단 수석 시절부터 김주원의 실험정신과 융합의 에너지는 유명했다. 일찍부터 국립 무용단 수석 무용수 이정윤의 한국 춤을 받아들여, 세련된 허구에 바탕을 둔 발레에 영묘한 땅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중력을 거스르려는 서양의 춤과 부력을 다스리려는 한국의 춤이 김주원이라는 한 몸에서 만났다.

이제 ‘높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발레는 회전이나 도약으로 자웅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녀 자신, 비상의 탐욕을 자제한 이후 손끝 하나로 지구를 들어올릴 수 있다고 느꼈다. 날고자 하는 의지의 조급함이 사라지면서, 중력 속에 가려졌던 두 발의 보드라움이 드러났다.

한국 무용수 이정윤과 함께 한 춤 ‘the one’은 수많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대표 작품으로 올려졌다.

장르와 무대에 제한하지 않고 프로페셔널과 교류하려는 김주원의 시도는 흥미로운 커리어로 남았다. 그 유명한 뮤지컬 ‘컨택트’는 김주원이 주인공인 노란원피스 여인으로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됐다. 튀튀와 토슈즈를 신었을 땐 공기 방울처럼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녀가 담배를 피우고 힐을 신고 격하게 땅을 구르며 스윙과 자이브를 추자 종아리 근육마저 실물감으로 리듬을 얻고 살아났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10년 뮤지컬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KBS ‘댄싱 위드 더 나잇’ 심사위원을 하면서 만난 댄서이자 안무가 김설진과는 얼마 전 ‘발레리나의 방’이라는 실험적인 공연을 올렸다. 연습실처럼 차려진 무대에서 김주원은 바(bar)를 잡고 몸을 풀며 ‘인간’ 김주원의 귀여운 독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 허리 끊어질 거 같애.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랑 헤어지다니, 개XX!” 클래식과 꽁트를 오가는 1인 무대는 회화적이면서도 생기가 가득했다.

김주원은 이제 어떤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버들가지 같다. 무대에 서는 시간을 위해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10시간씩 연습을 해야하기에, 발레의 정의는 ‘리허설’이라고 말하는 김주원을 만났다. 갑자기 닥친 혹한에 붉어진 얼굴로, 하지만 소중한 발만큼은 한겨울 눈밭을 뛰는 사냥꾼 부츠 안에 완벽히 보호된 채였다.


- 발레리나 강수진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은퇴하고 국립발레단장이 됐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장 문훈숙도 마흔에 토슈즈를 벗었죠. 올해로 마흔인 김주원은 국립발레단 15년 주역 시절보다 더 다양한 무대에 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은퇴 안해요. 저는 이제 시작이에요(웃음). 살다보니 불혹(不惑),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안 흔들려요? 저는 마흔이 되니 더 뜨거워져요. 굉장히 더 빨리 뜨거워져요. 올해도 뮤지컬 ‘콘택트’를 올려야 하고, ‘오페라의 유령’에도 출연해요. 발레단 초청 무대도 계속 서야 하고요.”

- 그 생명 연장의 비결은 뭔가요?
“저는 제 언어도 중요하고 누군가의 언어가 되는 것도 중요해요. 20대 때는 클래식 발레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사는 독선적인 아이였어요. 그러다 목마름을 느껴서 다른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을 시작했죠. 그게 생명 연장의 비결이었어요. 다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온전히 제물로 던집니다. 그래야 울타리를 넘었다 들어왔다 할 수가 있어요.”

-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언어가 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진 않습니까? 나를 지키고 나를 버려야할 때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가령 ‘천재’ 안무가 김설진이 처음 만나서 절더러 ‘그냥 누웠다 일어나 보라’고 주문했어요. 그런데 발레하는 사람은 그게 안돼요. 최대한 아름답게 코인을 세우고 얼굴 각도를 맞추고 몸의 질서를 생각하며 라인을 만들죠. 저는 그냥 자고 일어나는, 그 자연스러운 동작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즉흥이나 파격은 안합니다. 누웠다 일어나는 동작조차도 엄청난 연습으로 만들어내요. 전설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시나 이사도라 덩컨의 자유로움을 존중하지만, 저는 그런 자유를 싫어합니다. 손끝 마디 1cm까지 완벽하게 절제되고 통제될 때에야 안도감과 포만감을 느끼죠. 다행히도 김설진은 클래식이 가능한 사람이었어요.”

- 계속 춤추게 하는 창조의 원동력은 무엇이죠?
“호기심과 식지 않는 가슴이요. 저는 아직도 제가 ‘중 2병’에 걸린 사람 같아요. 러시아에서 매일밤 울던 중학교 2학년생. 한국에서 선화예중 다니다 볼쇼이 발레학교로 뽑혀갔는데, 외국인이라고 아무도 제 손을 안 잡아줬죠. 남자 파트너가 거절해서 파드되 상대도 없었어요. 매일 잠을 안자고 이를 악물고 연습했어요. 그때 버릇이 남아 아직도 저는 하루에 4~5시간 이상을 안자요(웃음). 그렇게 입학할 땐 문쪽에 서 있다가 점점 가운데로 들어가 졸업할 때는 주역으로 나왔어요. 밥 먹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빨래하고 다시 연습하고… 그때 단련된 일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몸이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날에 그녀의 춤을 본다. 날아가는 독수리나 헤엄치는 뱀장어처럼 무용수는 늘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예술가의 삶은 얼마나 고단하고 또한 정직할 것인가.

때론 고통을 덜 느끼기 위해 소고기 살점을 토슈즈 안에 넣고 연습한다지만, 발레리나의 발은 이미 구황작물의 뿌리처럼 기형적이다. 김주원의 발은 왼쪽 두 번째 발가락이 말썽을 부렸다.

- 척추 측만증, 족저근막염 등 온 몸에 병을 달고 사는데, 몸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시절보다 3배 이상 공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야 춤을 제대로 춘다는 느낌이 와요(웃음). 일단 아침 저녁으로 반신욕을 하면서 몸을 깨워요. 아침을 1시간 반 동안 먹으면서 장기가 살아나는 걸 느끼죠. 클래식이라는 뿌리를 놓지 않기 위해,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루마니아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고 있어요.”

- 30년간 춤을 추면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이 포즈에서 저 포즈로 가는 과정, 그 연결이 섬세하고 정교할수록 놀라운 파워가 생깁니다.”

- 슬럼프에 빠질 때는 언제인가요?
“아플 때 쉴 때 멈췄을 때예요. 달릴 때는 슬럼프가 없어요.”

- 성경의 욥기가 생각나는군요. 일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어찌하여 쉼을 원하는가?
“일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200% 쏟아내서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니까요. 순수예술은 그걸 사랑하지 않으면 안돼요. 불나방처럼 무대에 자신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죠(웃음).”

- 수많은 춤을 췄는데, 가장 사랑하는 작품 3가지를 꼽아본다면요.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마그리트와 아르망’이요. 죽기 전에 ‘오네긴’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셰익스피어가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호숫가에 흘러가는 물, 하늘을 향해 뿌리 내린 나무, 백조를 보고 시를 쓰는 시대가 아니죠. 그때는 신이 내린 시대였어요.” 세상이 각박해져서 러닝타임이 4시간 되는 대작 ‘백조의 호수’는 인기가 없다고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사람들은 이제 인터미션 없는 1시간20분짜리 공연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만들어 내는 것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서는 시간을 위해 1년 365일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씩 연습을 하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래요. 클래식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회가 클래식을 뛰어넘는 혁신도 할 수 있어요.”

▒ 김지수
이화여대 사회학과, 보그코리아 편집부장, 셀러브리티 편집장, 현 조선비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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