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선진(先進)편에 공자가 제자인 안회와 자공을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안회(顔回)는 도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나 늘 궁핍하였다. 반면 자공(子貢)은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산을 늘리는 일에 종사하였는데 그가 예측하면 거의 들어맞았다.”(부수명이화식언(不受命而貨殖焉), ‘억즉누(億則屢)’ 중)

이 말은 흔히 말하듯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고 자공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안회의 학문과 자공의 상업적 재능을 같은 반열에서 평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현실주의자인 공자는 자공이 세상의 평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난 상업적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도운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공자는 자공의 부의 축적행위를 ‘화식(貨殖)’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화식’은 재물을 늘리는 것, 즉 자원의 생산과 교환을 이용하여 재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사마천의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역사상 최초로 상품경제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저술한 경제서다. 화식열전을 읽지 않고는 <사기(史記)>를 읽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기>의 백미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춘추시대 말부터 한(漢)나라 초까지 상공업을 통해 부를 이룬 사람들인 51명의 화식가(貨殖家)와 71가지 종류의 직업군을 소개하면서 경제와 정치, 사회, 도덕, 풍속과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사마천은 백규(白圭)라는 대상인(大商人)의 입을 통하여 상인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인 이윤, 강태공, 상앙이나 군사가인 손자, 오자 등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당시 상공업을 천시하던 위선적인 도덕사회와 사농공상의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부(富)의 추구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며 빈부의 법칙은 어느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줄 수도 없다는 사마천의 주장은 자본주의 경제이론의 맹아가 되었다. 지금부터 2100년 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오기 1800여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인이야기를 역사책에 집어넣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80년대 이후가 아닌가 한다. 2100년 전에 돈 버는 법, 부자 되는 법, 장사꾼 이야기를 역사책에 집어넣을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사마천은 역사가이기 전에 인간의 심성을 꿰뚫는 탁월한 경제학자였다. 그 후 화식열전은(국가경제 정책을 비판한 <평준서(平準書)>와 더불어) <사기> 중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현대에는 기적과 같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화식열전’의 어원이 담긴 공자와 자공과의 관계를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공자를 모시고 다니며 도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부유한 대상인이다. 그가 사두마차를 타고 가마행렬을 거느리고 제후들을 찾아가면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와 예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사실 공자의 14년간의 망명생활도 자공의 상권(商圈)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공자 사후 자공이 사재를 털어 학단을 만들고 그 학단의 집단적 연구 성과가 <논어>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공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자공으로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스승 공자를 앞세움으로써 자신이 권위 있는 사업가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장사를 하고 있지만 자공 자신 또한 상당한 문화인, 지성인이라는 것, 저런 훌륭한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는 자신의 사업은 윤리적 도덕적 측면에서 훨씬 더한 신뢰를 가져도 좋다는 인식 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기업 및 브랜드 홍보전략으로 이용되는 유명인 광고효과를, 자공은 충분히 활용한 것이다. 공자는 공자대로 제자인 자공의 재력 덕분에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권력자들을 만나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피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윈윈전략의 대가들이라고 하겠다.

사마천은 사람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조정에서 모든 힘을 다하여 계책을 내고 입론(立論)하며 건의하는 현인들과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키면서 동굴 속에 은거하는 선비들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두 재부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청렴한 관리도 관직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부유해지고, 탐욕스럽지 않은 상인도 결국 부유해지는 법이다. 부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므로 배우지 않고도 모두 이루고자 하는 바이다.”(‘화식열전’ 중)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엔 부로 귀착이 된다는 사마천의 견해를 자칫 속물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선비가 명성을 얻으려는 것도, 강도가 사람을 해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부를 위한 것이라는 사마천의 주장은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속물주의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에서 나온 철학적인 전제라 하겠다. 니체는 “정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 자체가 주인이 되어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고 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부를 증식시키려는 정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를 늘리는 행위를 비천한 것이라 여기며 입으로만 도덕을 운운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마천은 아주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선비의 청고(淸高)한 품행도 없으면서 시종 가난하고 비천하며 그러면서도 고준담론 하기를 좋아하고 무슨 인의(仁義) 도덕을 계속 운위하는 것은 역시 진실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화식열전’ 중)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란 비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집안에 앉아 인의 도덕이나 따지면서 가족의 생계는 나 몰라라 하는 선비의 행동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것이라는 게 사마천의 생각이다.


▒ 이석연
전북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 박사, 28대 법제처장,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 대표,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주요 저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 한국견문록>,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