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두백미(一頭百味)’라는 옛말이 있다. 소 한 마리에서 백가지 맛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만큼 즐겨 먹어왔기에 현재 통용되는 한우의 고기 부위 이름만 120여가지다. 서울 삼청동의 고기구이집 ‘만정(萬井)’은 전남 담양에서 도축한 1++ 등급 한우를 당일 배송 받는다.
양현정 오너셰프는 197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해 한양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서 10년간 일했어요. 그리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중 ‘벽제도예’의 식기그릇 부문 일을 2003년에 맡았죠. 2008년부터 ‘벽제외식산업’의 디자인과 홍보업무까지 담당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외식업에 첫 발을 내딛은 셈이죠. 감상용 자기류와 식기는 달랐어요. 담길 음식을 잘 이해해야만 그에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음식연구개발팀 및 조리장들과의 협업 속에 새로운 메뉴와 그릇들이 탄생했어요. 최고의 가치창출이 목표인 고급식당 브랜드여서 가능했죠. 새로 출시할 2만5000원짜리 설렁탕에 어울릴 품격을 목표로 고심 끝에 탄생시킨 ‘벽제갈비 설렁탕’ 그릇은 큰 호평을 받았어요.”
집안이 고급 고기구이집을 해왔던 터라 어릴 적부터 좋은 고기와 귀한 음식을 먹으며 자랐기에 미각이 예민했다. 그런 덕분에 홍보실장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메뉴 개발에도 적극 참여했다. 자연스레 주방의 조리사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음식과 조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갔다.
기관 고객 타깃으로 음식, 서비스, 품격 고급화

“2014년 12월 만정을 열면서 오랫동안 품어 온 식당 창업의 꿈을 실현했어요. 식당업에 오래 종사했던 어머니가 큰 힘이 됐어요. 그릇과 음식만 알던 저에게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고 서투른 실력을 완성해 나가도록 조언을 아까지 않으셨어요.”
삼청동은 젊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곳이기에 양식당이나 단품 식사 종류의 식당이 주를 이룬다. 양 셰프는 그런 여건에서 맛과 품격을 갖춘 고급 한식 고기구이집의 가능성을 높이 봤다.
“외부 관광객들보다는 바로 옆 금융연수원과 감사원 총리공관 등 기관에서 찾아주시는 고객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와 품격 면에서도 노력했죠.”
고기 중심의 식단을 보완하기 위해 채소와 나물 및 절임으로 기본차림 음식을 구성했다. 제철 재료는 일주일에 네 번 새벽 경동시장에서 직접 구입한다. 요즘에는 섬초(겨울에 재배하는 재래종 시금치)에 발사믹식초와 사과식초, 올리브오일과 바질을 곁들인 ‘섬초 샐러드’가 연령, 성별 불문하고 환영 받는다. 가지는 과일 갈은 물에 재웠다 고기와 함께 굽는데, 달콤한 감칠맛으로 여성들에게 호평이다.
가장 고급스러운 메뉴는 ‘특상한우 프라임 생갈비’다. 눈송이 같은 지방질과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그 갈빗대를 써서 만든 ‘매운 해물갈비찜’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낙지와 가리비 등 해산물과 포실한 통감자가 매콤한 국물에 졸여진다. 씹는 재미를 즐기려면 ‘특상한우 숙성등심’이 좋다. 2주 이상 숙성한 등심을 2.5~3㎝로 두툼하게 썰어 한우 고유의 육즙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일반 고깃집들은 부위별로만 공급받기 때문에 가격이 비쌉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소 2마리를 도축해 모든 부위를 다 써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드실 수 있죠.”
여러 부위를 한 번에 즐길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인 메뉴가 ‘만정 스페셜컷 모둠’이다. 등심, 치마살, 갈비살, 차돌박이, 양지허리살, 제비추리, 토시살 등이 쓰이며 가격과 구성 종류가 다른 세 가지 선택이 있다. ‘해물된장전골’이 서비스로 곁들여진다.
큰 덩어리를 손질할 때 나오는 자투리 고기로 만든 양념구이도 맛과 가격 면에서 인기 있다. 고급육과 함께 주문하면 가격부담을 덜 수 있다. 육회는 신선한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달걀을 쓰지 않고 배채와 채소싹을 곁들여낸다. 선도가 생명인 육사시미(생고기)는 월요일 저녁에만 맛 볼 수 있다.
풍부한 고기와 뼈로 푹 고아 만든 진한 국물

‘고깃국이나 뼛국은 단품 전문점보다 고깃집 것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손질하며 생기는 자투리 고기와 뼈를 넉넉히 쓸 수 있어서다. 만정에서는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푸짐하게 쓰인 고기와 뼈 덕분에 국밥과 설렁탕의 국물이 깊고 진하다. 그 중 으뜸이 ‘한우안동국밥’이다. 대파와 무가 대부분이고 질긴 고기 몇 점이 다인 시중의 국밥 전문점과는 달리, 넉넉히 든 부드러운 고기와 뼈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이 남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맛보는 최고의 안동식 고기국밥으로 꼽는다. 설렁탕과 육개장도 여느 전문점보다 훨씬 낫고, 국산녹두로 부쳐낸 고소한 녹두전도 맛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백김치다. 짜지도 달지도 않으며 잘 익은 김치에서 톡 쏘는 탄산이 느껴진다. 식당들은 물론이고 가정집에서도 맛보기 쉽지 않은 솜씨와 정성이다. 그러다 보니 염치 불구하고 여러 그릇을 비우게 된다.
“한식은 싸고 맛만 있으면 허름해도 상관 않는 사회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피자나 스파게티 2만~3만원은 괜찮다면서 잘 만든 평양냉면이나 진국인 설렁탕이 1만원을 넘으면 불평하는 분들이 많았죠. 이제는 한식도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차림새와 서비스에도 신경을 써야할 때라 생각합니다. 외국인도 많이 찾는 삼청동에서 한우를 즐길 수 있는 품격 있는 한식 레스토랑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첫 돌을 갓 넘겼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매일 성장하며 고객을 맞도록 노력하겠어요. 특히,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겠습니다.”
고기구이에 어울리는 와인 라인업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갖춰나가는 중이다. 와인의 콜키지(반입료)는 테이블당 2만5000원으로 병수 제한이 없다는 점도 매력이다.
▒ 박태순
동국대 토목공학과, 주간조선, 주간동아, 베스트레스토랑 등에 맛집 칼럼 연재, NS홈쇼핑요리대회 심사위원.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24-2 2~3F
문의 : 02-733-1392
기타 : 와인의 콜키지(반입료)는 테이블당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