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화제가 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40대 중반(2차 베이비붐 세대)의 청춘을 다룬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연령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크게 3개의 베이비붐 세대가 존재한다. 1968~74년 출생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실질적인 중심축인데 이들 세대는 총 596만명으로 전체인구 중 약 12.4%를 차지하고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1955~63년생이고, 3차 세대는 1979~85년생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들(성덕선 외)은 현재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1년 주택가격 폭등,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경제 위기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굴곡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화 및 산업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산을 형성했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혜택도 받았다. 하지만 응팔 세대는 부동산이 오히려 짐이 된 경우가 많다. 또 자식에게 봉양을 받지 못하는 세대일 가능성도 크다. 응팔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허리’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설계 전략을 살펴보자.
오른 물가만큼 몸값을 높여라

응팔 세대는 70대까지 일해야 하는 세대가 될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흐름에서 다른 세대의 경우 이미 은퇴했어야 할 60대 이후에도 노동 현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재 응팔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잔존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4년 ‘실질 은퇴 연령과 공식 은퇴 연령’ 통계 보고서를 발표,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 연령은 71.1세라고 밝혔다. 실질적 은퇴 연령이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져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를 말한다. 공식적인 퇴직 연령은 60세이고 체감정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결국 핵심은 고용의 질(質)이다.
과거에는 일을 선택할 때 단순히 임금수준만을 따졌다면 이제는 일의 양과 시간대를 중요시 여긴다. 오래 일해야 하는 만큼 직업도 신중히 선택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한국물가정보 자료에 따르면 1988년 라면 한봉지 가격은 100원이었다. 현재 신라면 한 봉지는 634원으로 1988년에 비해 6.3배 올랐다. 자장면 한 그릇도 759원에서 4600원으로 6배 뛰었다. 교통비는 어떨까? 1988년 서울 시내버스 요금은 140원이었으며 지금 버스 요금은 1300원으로 9.2배 인상됐다. 지하철 기본요금은 200원에서 1250원으로 6.5배, 택시 기본요금은 600원에서 3000원으로 5배 올랐다. 집값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난다. 1988년 당시 5000만원이던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시세는 9억~10억원으로 20배 가까이 올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응팔 세대의 몸값은 어떨까. 은퇴를 10여년 앞둔 그들의 몸값이 오른 물가 만큼 껑충 뛰었으면 한다.
응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90학번, 현재 45세다. IMF 시절 대학을 졸업해 어렵게 취직한 후에 지금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세대다. 그들은 전세보증금 인상(IMF 시절), 집값 상승기(2008~2009년) 등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집이 ‘짐’이 됐다. 일반적으로 주택구입 연령대를 보면 초등학교 4~6학년 자녀를 둔 35~45세 부모가 중소형 주택을 구입한다. 이들은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평수를 넓혀나간다.
그런 측면에서 응팔 세대는 상당한 부채를 안고 집을 샀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70.1%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부채 보유액은 50대 가구(8376만원)가 가장 많고, 60세 이상 가구(7657만원), 40대 가구(7623만원)순으로 나타났다.
통계자료가 40~49세의 평균적인 수치임을 감안할 때 응팔 세대의 부채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집이 아닌 ‘짐’을 지고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응팔 세대는 자녀 교육도 중요시 여긴다. 대출 이자뿐 아니라 자녀 교육비라는 짐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맞벌이와 다운사이징(down-sizing)고려하라
응팔 세대는 지금이 노후준비의 마지막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부채가 부담이 된다면 보유 부동산을 적절히 줄여 다가오는 은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집값이 저렴한 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자녀교육 목적상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평수를 조금 줄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배우자가 경력단절 여성이라면 부부가 의논해 맞벌이를 한번쯤 고려해 봐야 한다. 기대 수명이 90세로 늘어나면서 ‘30년 벌어서 60년(부부 두 사람이 각각 30년)’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터넷상에서 회자됐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헬조선’이다. 헬조선이란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한국을 의미하는 조선을 합성한 단어다. 응팔 세대는 이미 IMF 시절 헬조선을 경험했고, 급등하는 부동산 시장에 막차를 탄 세대다.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노후준비자산은 ‘퇴직금’이다.
2012년 7월부터 확정급여형(DB) 제도와 확정기여형(DC) 제도에 가입한 근로자는 퇴직 시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 IRP를 통해 퇴직금을 계속 쌓아나가라는 의미에서 기획됐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대부분 근로자는 IRP로 퇴직금을 받은 후 바로 해지한다. IRP로 연금을 수령하는 가입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근로자 대부분이 중간정산이나 잦은 이직으로 긴 노후 동안 쓸 퇴직금을 충분히 모아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IRP 세제혜택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다.
IRP는 이직 시 수령한 퇴직급여를 적립해 노후에 활용할 수 있게 한 ‘통산(通算)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잦은 이직으로 인한 퇴직금의 소진을 막기 위해 도입된 IRP제도는 ‘과세이연(課稅移延)’ 즉 퇴직소득이 IRP에서 실제 인출될 때까지는 퇴직소득세(6.6~41.8%)를 과세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특히 퇴직소득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감면해준다. 때문에 연금으로 나누어 수령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이제는 응팔 세대가 집과 자녀가 아닌 자신의 노후에 응답할 때다.
▒ 김태우
경희대 경영학 석박사, 국제공인 재무설계사(CFP), 보험연수원 연금(은퇴설계) 전문가 양성과정 교수, 생명보험협회 사회공헌위원회 위촉 노후설계 전문 강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