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중국 영화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 대기업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영화 시장의 본토인 미국 할리우드에 직접 진출해 주요 제작, 투자회사와 배급회사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양광세븐스타문화그룹(陽光七星媒體, 이하 양광그룹)은 중국 영화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기업 중 하나다. 브루노 우(Bruno Wu, 吴征, 51) 회장의 총지휘 아래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투자와 텔레비전 방송, 애니메이션, 웹툰 등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한국 등 10개 국가에 진출해있다.
양광그룹은 산하에 크게 4개의 자(子)그룹을 두고 있다. 이 중 세븐스타엔터테인먼트는 인수하거나 합작 관계를 맺은 전 세계 60여개 영화 제작사를 통해 매년 20여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또 매년 30여개 드라마 제작 자회사를 통해 약 300시간 분량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으며 150여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 64개국에 방영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한국 기업인 세븐스타웍스(舊 티브이로직)를 약 28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2월 29일(현지 시각)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시의 한 호텔에서 브루노 우 회장을 만났다.
우 회장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프랑스와 미국, 중국에서 학사와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머리칼에 기름을 펴 발라 곱게 넘긴 전형적인 중국인 부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돼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중국어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며 문화 콘텐츠의 세계화를 이야기했다.
우 회장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느냐가 문화 산업에서 성패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적재산권(IP)을 사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IP란 창작 활동, 즉 원작에 대한 재산권을 의미한다. 원작 IP를 토대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를 영화로 만들려면 원작 소설의 IP를 사야 한다.
중국 부동산 기업인 완다(萬)그룹이 주로 극장을 사들여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문화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면, 양광그룹은 ‘콘텐츠가 힘’이라는 원칙 아래 IP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양광그룹이 보유한 문화 콘텐츠 IP는 약 500여개에 이른다. 우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규모라고 말한다. 양광그룹은 지난해 11월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영화 투자 펀드를 조성해 지적재산권(IP)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양광그룹에서 하고 있는 영화 사업은 무엇이 있나요.
“영화는 연간 20편 정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전 세계에서 5억달러(약 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대형 영화가 4편 정도이고, 수익성이 그리 높지는 않은 할리우드 영화가 10편쯤 포함됩니다. 이 외에도 중국어 영화 1~2편을 매년 제작하려 합니다.”
올해 제작할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조로(Zorro)’ 시리즈와 미국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맥시멈라이드(Maximum Ride)’, 그리고 ‘타이타닉(Titanic)’을 제작 중입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타이타닉이 남녀 간 사랑을 다뤘다면, 제가 만들 타이타닉은 사건에 숨겨진 음모를 주로 다룰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청룽(成龍)이 주연해 유명한 ‘러시아워(Rush Hour)’ 후속편도 올해 10월부터 촬영할 계획이고 수퍼 히어로(super hero)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IP에도 투자했어요.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10여개 제작사와 함께 만들 예정인데, 이 중 5~6개 회사와는 계약을 마친 상태입니다.”
주연 배우는 정해졌나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설령 정해졌다 해도 말씀드릴 순 없어요. 조로에는 한국 배우도 꼭 출연시키고 싶은데, 이병헌씨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병헌씨와는 좋은 친구(好朋友) 사이예요. 결혼식에도 갔었죠. 조만간 조로에 출연해달라고 직접 제안할 생각입니다.”
최고경영자인데,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 관여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회사에서 매년 영화를 20여편씩 만들다 보니 시나리오를 다 볼 수는 없지만, 그 중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소설책처럼 읽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이디어를 반영하라고 강요하진 않지만 가끔씩 조언은 해요.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2014년작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Grace of Monaco)’의 경우 제 아이디어가 반영된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애착이 더 큽니다.”
양광그룹 콘텐츠의 이용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지난해 미국에서 양광그룹이 저작권을 갖고 있거나 직접 제작 혹은 배급한 콘텐츠를 이용한 사람이 총 1억7000만 명입니다. 올해는 이용자 수를 2억7000만 명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국에서는 약 3억 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러면 미국과 중국에서만 약 6억 명이 보게 되는 것이죠.”
영화, 애니메이션 외에 최근에는 웹툰 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양광그룹은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의 웹툰 IP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웹툰 저작권을 중국으로 가져와서 현지화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원작 주인공이 박씨(朴氏)라면, 중국판 웹툰에서는 왕씨(王氏)로 바꾸는 식이죠.”
한국 웹툰에 투자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 웹툰의 소재와 이야기는 정서적으로 중국 사람들과 아주 잘 맞아요. 또 한국인들은 창의력이 뛰어나 콘텐츠 자체의 수준이 상당히 높죠. 현재까지 한국 웹툰 5개에 대한 저작권 인수를 협의 중인데, 어떤 작품인지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네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도 계속 중국에서 인기를 끌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추진과 중국 정부의 외국산 콘텐츠 수입 규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다소 불편해진 상황인데요.
“우선 사드 배치는 중국과 한국 간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 사이의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정치적 문제로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안 좋아진다 하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입니다. 한국 드라마 등 콘텐츠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는 지금도 굉장해요. 스토리를 구성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음악 편성 능력도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중국의 기획 능력, 자본력, 유통망과 결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 업체들의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는데, 반대로 약점은 무엇입니까.
“콘텐츠의 현지화가 약하다는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거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에 대한 얘길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요.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합니다. 반대로 영화 ‘트랜스포머’의 경우 일본에서 제작했지만 일본 색채가 전혀 묻어나지 않죠.”
CJ E&M은 어떤 회사라고 평가하나요.
“대단한 회사이고, 미키 리(이미경 CJ그룹 부회장)와도 개인적으로 좋은 친구 사이입니다만, 아직 할리우드에서 이렇다 할 성공 사례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CJ E&M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할리우드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중국에선 중국 영화를 찍어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CJ E&M에서 배급한 ‘설국열차’는 정말 좋은 사례입니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같은 미국 배우들이 출연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소재를 다뤘으니까요.”
양광그룹에서는 올해 1월 한국 기업 세븐스타웍스를 인수했습니다. 이 회사는 그룹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됩니까.
“애니메이션 제작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회사는 원래 TV 모니터를 만들던 회사인데, 한국 시장 점유율이 95%에 달해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세븐스타웍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산 애니메이션의 IP를 사고, 이를 토대로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 이 회사를 ‘아시아의 마블(Marvel,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키우는 것이 목표예요. 양광그룹은 현재 애니메이션 7편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2~4개는 올해 안에 완성될 텐데 그 중 2개 작품이 세븐스타웍스를 통해 제작되고 있죠.”
세븐스타웍스 인수 후 한국에는 자주 오나요.
“1월까지는 자주 갔는데 최근에는 못 갔어요. 4월에 한 번 더 갈 겁니다. 가상현실(VR) 사업을 위해서 한국 IT(정보기술) 업체 2곳과 합작 법인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VR 사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할 계획입니까.
“올해 6월 중국 상하이에 디즈니랜드가 문을 엽니다. 이미 표가 1500만 장 예약 판매될 정도로 중국인들의 반응이 좋아요. 이에 발맞춰 호텔 등 숙박업도 발전하고 있죠. 우리는 호텔 인근에 있는 건물에 VR 체험관을 만들 계획입니다. 디즈니랜드의 영업 시간이 끝나면 호텔 인근에서 놀 만한 시설이 필요할 테니까요.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내 10개 도시에 VR 체험관을 설립하기 위해 당국 등과 협의를 한 상태입니다. 이 외에도 회사가 보유한 IP 중 공상과학(SF) 소설을 VR 영화로 제작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VR 열풍이 불고 있지만 아직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이 분야를 우리가 선도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단순히 VR 사업만 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활용해 완구 등 유통 사업도 같이 전개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야죠.”
양광그룹의 공동 회장인 부인 양란() 여사는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리는 유명 앵커 출신입니다.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합니다.
“1995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뉴욕에서 미디어 투자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컬럼비아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어요. 때마침 중국 라디오 방송국의 한 국장이 뉴욕에서 열린 미디어 관련 회의에 참석 중이었는데, 그 사람이 우리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습니다. 이 얘기는 언론 인터뷰에서는 처음 하는 것 같네요(웃음).”
부인과 사업을 함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아내도, 저도 원래 사업을 따로 하고 있었어요. 아내는 양광TV라는 회사를 운영했는데 방송에 대한 통제가 워낙 많다 보니 어려움을 겪었고, 반면 톈디(天地)디지털 등 제가 창업한 케이블방송 업체 5개사는 사업이 잘 됐어요. 그래서 2003년 아내가 회사를 매각하고 제가 설립한 양광그룹에 합류했습니다. 케이블방송 사업체는 미국 시스코에 매각했고 지금 제 친동생이 관리하고 있어요.”
두 분의 경영 방식은 잘 맞나요. 맞지 않는다면 의견 차이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양광그룹이 크게 4개의 자그룹으로 나뉘는데, 아내는 토크쇼 등 TV 방송, 여성 관련 사업만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한 영화,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생길 일도 거의 없죠.”
양광그룹은 설립(1999년)된 지 1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전 세계에서 20~30개 기업을 인수할 생각입니다.”
한국 기업도 추가 인수할 생각인가요.
“한국 기업도 3~5개 인수할 계획입니다. 현재 2개 회사와 인수를 협의 중이에요.”
상장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그룹 전체가 아닌 콘텐츠 사업 부문만 상장할 계획입니다. 상하이 주식시장에 상장할 예정이고 상장 시점은 이르면 올해 6월이나 9월, 늦어도 내년 초가 될 것입니다. 콘텐츠 사업 부문을 상장하면 아마 상하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문화콘텐츠 회사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 될 것으로 봅니다.”
▒ 브루노 우(Bruno Wu, 征)
프랑스 사부아대(University of Savoie) 불어불문학 학사, 미국 미주리 컬버스탁튼칼리지(Culver-Stockton College of Missouri) 경영학 학사,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국제관계학 석사, 중국 푸단(復旦)대학 국제관계학 박사, 1998~99년 홍콩 아시아텔레비전유한책임회사 COO, 1999년 양광세븐스타문화그룹 설립, 2003년 제29회 국제 에미상(iEMMYs Festival) 의장, 2005년 양광문화재단 설립, 2007년 영국 찰스 왕세자의 국제열대우림보호위원회 소속 의원, 2009년 중국 유럽 글로벌비즈니스포럼에서 선정한 ‘올해의 중국 리더’.